온누리 청소년 쉼터대표 김영준
온누리 청소년 쉼터대표 김영준
  • 미래한국
  • 승인 2002.07.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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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외된 자 50여명 돌보는 가장
▲ 소년원에서 출소한 청소년과 근로 학생 등 50여명의 소외된 이웃을 돌보는 김영준 온누리청소년쉼터 대표. 그는 “환경이 어려운 청소년에 대해 무조건적인 지원보다는 한 사람의 책임있는 사회인 육성이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 사진/ 박지영 기자 photoi@futurekorea.co.kr
자립할 수 있는 사회인으로 돌려보내궂은 일 마다않고 동분서주 운영비 조달“뭐하노, 해빠지겠다. 퍼뜩 하그래이”대구에서도 외곽인 북구 태전동. 이미 주인을 떠나보낸 을씨년스런 공장터에 새로 입주해 정리하는 손길이 분주하다. 이곳은 김영준 목사(55·대구 온누리 교회담임, 온누리 청소년 쉼터 대표)가 소년원에서 출소한 청소년과 근로학생 등이 함께 보금자리를 마련한 ‘사랑의 울타리’이다.2만여평 덩그런 부지에 새로운 보금자리에 여념이 없던 체육복 차림의 목발을 짚은 건장한 중년 남자가 반갑게 인사를 하며 안으로 들어갈 것을 청했다. “이곳은 단순히 문제아들이 모인 곳이 아닙니다. 교화와 선도는 물론 재능에 따라 공부는 물론 예체능, 기술 등을 배울 수 있도록 하는 곳입니다. 여기서는 떳떳한 사회인, 자립할 수 있는 사회인으로 다시 되돌려 보내는 것이 목표입니다. 이미 많은 식구들이 그렇게 사회에 진출해 건실한 사회역군으로 살고 있습니다.”이렇게 말하는 김 목사 역시 어려서 가정이 어려워 미국인이 경영하는 메노나이트 재단의 실업학교에서 중학교과정을 마치는 등 힘든 청소년기를 보냈다. 매노나이트 재단의 학교에서는 공부는 물론 기술까지 가르쳐주었고, 미국의 독지가와 1대1로 연결해 후원케 하는 제도를 운영해 어려운 청소년을 사회인으로 만드는데 역점을 두었다. 김 목사는 이미 그때부터 지금의 ‘대구 온누리 청소년 쉼터’의 구상이 머릿속에 있었다고 한다. 이런 구상을 실천에 옮긴 것은 여고에서 음악 선생님으로 있던 지난 86년 김 목사는 본격적인 사회봉사활동과 신학공부를 위해 대구신학교 3학년에 편입했고, 총신대 대학원 시절인 89년 10월 드디어 같이 성경공부를 하던 7명의 동역자와 함께 ‘대구 온누리 교회’를 개척했다. 그리고 지금은 그가 꿈꿔왔던 것처럼 출소자, 고아와 같이 오갈데 없는 청소년,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을 포함해 50여명의 식구의 가장이 됐다. 이중 중고등학생이 14명, 대학생이 6명이다. 얼핏 계산해도 한 학기에 500만원이 훨씬 넘을 학비가 궁금했다. “생활비는 차치하더라도 한 한기에 800만원 정도 학비가 듭니다. 물론 아이들에게는 돈걱정하지 말고 공부나 열심히 하라고 이야기 하죠. 하지만 막막할 때가 많았습니다.”김 목사는 ‘온누리 청소년 쉼터’의 재원을 마련키 위해 화물운수를 비롯해 김, 녹차, 유자차, 건강식품 외판 등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았다. 그리고 김 목사는 모든 문제의 근본적 해결은 하나님께 있다고 궂게 믿고 있다. “3년 전이죠. 99년에는 저희 딸 정인이를 비롯해 3명이나 대학에 합격해 등록금이 900여만이 필요한 적이 있었습니다. 참 막막했죠. 그러다가 저마저 덜컥 심장병으로 쓰러지게 됐습니다. ‘엎친데 덮친 격’이란 말이 꼭 들어 맞던 순간이죠. 하지만 하나님이 어떻게 역사하셨나 들어보세요”.“제가 입원한 사실이 대구시내 여러 교회에 알려져 성금이 한 푼, 두 푼 들어오더니 100만원, 200만원 성금을 보내주시는 분들이 함께하면서 한 900여만원 정도 성금이 모였죠. 내심 이것으로 병원비 내고 몇 명은 등록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퇴원하는 날 병원장께서 병원비를 받지 않겠다는 겁니다. 그래서 모든 아이들이 등록할 수 있었습니다. 기적같은 일이죠.”김 목사는 ‘온누리 청소년 쉼터’의 운영에 대해 걱정하지 않는다고 한다.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필요하실 때마다, 일할 때마다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역사를 간증으로 말하면 하룻밤이 모자랄 지경이죠.”김 목사는 아이들에 대한 특별한 교육철학이 있다. 바로 자립심과 자긍심이다. 무조건 아이들을 지원하는 것은 청소년 범죄를 낳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소년원을 방문해 빵을 가져다 주는 것으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자립심과 자긍심을 가지도록 하는 것이 큰 관건입니다. 아이들과 함께 살 집을 꾸미고, 자기가 머무를 공간에 못질 한 번, 톱질 한 번하면 애착심도 생기고 나중에 자기가 살아갈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나중에 알게된 사실이지만 김 목사가 목발신세를 지게된 것도 아이들과 함께 살 보금자리를 꾸미다 다친 것이라 주위에서 전했다.또 김 목사는 대학에 입학한 아이들에게 1년동안 학비를 마련케 한다고 했다. 그리고 자신이 모은 돈을 등록케 하고 나머지 학기의 등록금은 지원해 주고 있는데 이것 역시 자립심을 키워주기 위한 것이라 했다. 다시 밖으로 나왔다. 아직 정리하지 못한 짐들 사이로 새로운 짐들을 차에서 내리느라 다들 분주하다.“음악하는 아이들이 많습니다. 이 아이들이 모여서 미국의 줄리어드 같은 명문 음악학원을 만든 것이 작은 소망입니다. 아이들이 모여서 ‘자선음악회’를 하는 모습도 그려봅니다.” 김 목사는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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