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입국심사 때 10시간 억류됐던 노베르트 폴러첸 씨
[인터뷰] 입국심사 때 10시간 억류됐던 노베르트 폴러첸 씨
  • 미래한국
  • 승인 2004.12.09 00:00
  • 댓글 13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정치활동금지 경고장 받았다”
▲ 최근 입국하여 정치활동금지에 대한 항의 표시로 입을 검은 테이프로 가린 북한인권운동가 폴러첸씨 사진 이승재 기자fotolsj@
카프카스크(Kafkaesque) 라는 말이 있다. 소설가 카프카의 이름을 딴 단어로 영문도 모르는 채 정확히 실체가 안 드러나는 거대한 조직에 밀려 이리저리 압력을 받는 상황을 표현할 때 쓰인다. 거기에 또 조지 오웰의 이름을 딴 ‘오웰리안’ 또는 ‘빅 브라더’ 라는 말도 있다. 이는 개인의 사생활 하나하나를 감시하는 권력의 편집성을 묘사할 때 쓰인다. 20세기의 괴물이라고도 하는 관료주의와 전체주의의 성질을 묘사하는 이 두 단어를 얼마전에 인권운동가 노베르트 폴러첸은 하루에 다 실감하였다. 다만 카프카의 소설에서처럼 어둠침침한 밤도 아니고 오웰의 책에서 나타나는 가공의 영역도 아니었다. 훤한 대낮, 대한민국 부산의 출입국관리소에서 생긴 일이다. 지난달 30일 아침 체제기간 연장을 위해 일본에서 부산으로 배를 타고 들어 온 폴러첸은 갑자기 그곳 직원들에 의해 어떤 방으로 끌려갔다. 거기서 언제 나가게 될지도 모르고 전혀 외부와도 교신이 금지되어 있는 상태에서 반복적으로 계속되는 질문에 대답하여야 했다. 이런 절차가 왜 필요한 것인지 누가 무슨 목적으로 하는 일인지 도저히 알 수 없었다. 그런데 한 6~7시간이 지나자 이들은 ‘폴러첸 파일’을 가지고 나타났다. 놀랍게도 거기에는 자신의 활동에 대한 모든 것이 보관, 기록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카프카가 오웰로 바뀌고 거기서 언론의 개입으로 10시간 후에 풀려나기까지의 상황들에 대해 그가 자주 사용하는 서울 시내의 한 PC 카페에서 만나 들어 보았다.-그때 상황을 좀 말해달라새벽에 시모노세키에서 출발하여 아침 8시 30분에 도착하였다. (그는 외국인으로서 체류기간 3개월에 한번씩 출국했다가 입국하여야 한다.) 여행객들이 많지 않아 한 15분쯤 후에 출입국 심사대에 섰다. 입국 카드에 여행목적을 쓰는 난이 있는데 나는 거기에 ‘정치적’ 이라고 썼다. ‘관광’ 이라고 쓰라고도 하지만 거짓말을 하게 되는 것이 아니냐. 하지만 그와 관계없이 그 사람들은 이미 내가 들어온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준비를 다하고 있었다. 입국카드를 어떻게 작성하는가는 상관이 없었다. 기다리다 그들에 이끌려 사무실 방으로 들어갔다. 거기서부터 10시간 동안 억류되었고 심문을 당했다. -무엇을 묻던가?모든 것을 다 묻더라. 놀랄 정도였다. 나 개인의 생각에서부터 일본에서 출간될 책, 한국에서 나온 책 그리고 미국에서 나올 책 등. 거기에다 그전에 참가했던 행사. 놀라운 것은 마이클 호로위츠(Michael Horowitz: 기사참조) 방한에 대해서도 무슨 연관이 있느냐, 그의 한국에서의 계획은 무엇이냐, 참가한다는 심포지엄(‘북구원’ 심포지엄 기사 참조), 또한 그가 힐(Hill) 미국대사를 만난다는데 무슨 말을 할 것인가 까지도 물었다. 영어가 유창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은 자기들이 누군지에 대해 전혀 언급이 없었다. 하지만 나중에 가만 보니 서울에서 팩스를 받기도 하고, 한 명은 계속 법무부와 통화했다. 그 사람이 서울에서 온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 사람들이 심문한 목적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모른다. 이상한 것은 한참 말하고 난 후에 나에 대한 ‘파일’을 가져오더라. 거기에 보니 나의 활동에 대한 모든 것이 다 나와 있더라. 농담인가 생각했다. 정보를 다 가지고 있으면서 같은 질문을 반복적으로 한 것이다. 그 후에 나보고 다시는 정치적 활동을 안하겠다고 서약서에 사인하라고 했다. 당연히 거절하였다. 그랬더니 화를 내고 나갔다. 내보내 줄 생각도 않고…-가혹 행위 등은 없었나? 외부와 전화는 할 수 있었는지 10시간 동안 배가 고프지 않았는지…가혹행위는 없었는데 10시간 동안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외부와도 전화를 못하게 하였다. 중국과 비슷하였다. 나는 독일 대사관에도 전화도 못하고 변호사나 그 누구에게도 전화를 못하게 하였다. 그들이 식사를 주었지만 먹지 않았다. 내가 어디 있는지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는 상황에 음식에 독을 넣어 죽으면 바다에 버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는 바로 격리로 인한 두려움 유발인데 이는 심각한 인권침해이다.)-어떻게 나왔나?내가 서약서에 사인을 안하겠다고 버티자 그들이 화를 내고 나가버렸다. 한 5분쯤 시간이 있었는데 구석에 사무실 전화가 있더라. 그것으로 내선 9번을 누르니 외부로 전화가 통했다. 타임지 기자에게 전화를 하였다. 전화를 끊자 바로 그들이 들어왔다. 그들이 들어오고 2분 있으니 조선일보에서 전화가 오더라. 여기저기서 확인 전화도 오고… 그래서 나올 수 있었다. 안 그랬으면 결과가 어떻게 되었을지 나도 모른다. 저녁 7시 반 정도에 사진 기자들이 들이 닥친 것이다. 언론이 없다면 인권도 없을 것이라는 것을 느꼈다. 언론이 나를 구하였다.- 한국정부에서 당신을 쫓아내면 모든 문제가 풀릴 것?
본 기사는 시사주간지 <미래한국>의 고유 콘텐츠입니다.
외부게재시 개인은 출처와 링크를 밝혀주시고, 언론사는 전문게재의 경우 본사와 협의 바랍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13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인권 2004-12-14 00:00:00
이사람이 어떤 명분으로 인권운동가라는
칭호를 받는 지 이해가 안가는군 단지 북한의
치부만 들춰내고 폭로한다고 인권운동이 되는지 가르쳐 주시길

김상연 2004-12-11 00:00:00
이 노무현집단들 하는 짓거리가 이 모양이다..빨갱이 한테는 굽신거리거...

반대중 2004-12-11 00:00:00
당신같은 한분이 더 훌륭합니다...존경스럽습니다...

자유인 2004-12-10 00:00:00
우리나라에도 인권의 사각에 있는 사람들이 많소 북한보다는 적지만 말이오

그런 사람들을 위해서 일해볼 마음은 없는가요

그럼 얼마든지 진짜 일할 수 잇소

그러나 북한에 있는 사람들을 위해서는 전쟁을 하는 것 말고는 없는데 어떻게 생각하시오

한국의 한국민을 위한 인권을 위하여

인간말종정이리타도 2004-12-10 00:00:00
폴러첸 박사는 의인이다. 친북반미세력이 정권의 핵심을 장악하고 있는 지금, 북한주민들의 인권향상 및 해방을 위해 투쟁하는 폴러첸 박사는 의인이다. 김정일 정권이 무너지는 날, 한국내 친김정일 세력의 정체가 드러날 것이다. 그 때까지 기다리며,투쟁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