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의 권리를 위협하는 좌파적 개혁법
개인의 권리를 위협하는 좌파적 개혁법
  • 미래한국
  • 승인 2004.12.11 00:0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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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칼럼] 개인의 권리를 위협하는 좌파적 개혁법 강위석 경제평론가*시인12월 10일은 세계 인권 선언(Universal Declaration of Human Rights) 기념일이다. 여기서 ‘universal’은 ‘세계’ 보다는 ‘보편적’이라고 번역하는 편이 뜻을 더 분명하게 할 것이다. 모두 30개조로 구성된 이 선언은 그 가운데 29개조가 ‘모든 사람은(all human beings, everyone, no one)’으로 시작하고 있다. 여기서 ‘모든 사람’은 자유와 인권의 성(怯), 연령, 신앙, 국적, 문화, 신분. 직업 등을 막론한 ‘보편성’을 밝히기 위한 말이기 때문이다.이런 보편주의(universalism)의 대척(對蹠) 가운데 하나가 상대주의(relativism)다. 상대주의는 어떤 문화에서는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공동체의 정체성이나 집단적 공리(功利)를 위하여 희생시키는 것이 정당하다고 말한다. 또 하나의 대척으로는 계급의 이익 때문에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반드시 희생시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회주의가 있다.인권은 자유민주주의와 같은 의미자유는 인간의 천성(失怯)이다. 천성이므로 보편적일 수밖에 없다. 서양에서 온 것도 아니고 기독교에서 온 것도 아니다. 어떤 문화도 사회도 인간의 천성을 짓누른 채 남아 있을 수 없기 때문에 전통적 전제체제는 와해되었다. 현대의 문화적 상대주의와 사회주의도 이 운명을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자유는 생존과 번식 등 인간의 생물적 욕구, 미(美)에 대한 추구 등 문화적 욕망, 수월(秀越, preeminence) 추구 등 사회적 욕망을 이루는데 필수적인 사회 환경과 거기에다 그 욕망을 이루는 데 필요한 개인의 능력을 합한 것이다.이런 욕망은 전부 개인의 것이므로 자유의 기초는 개인주의다. “산중에 귀물은 머루나 다래, 인간의 귀물은 나 하나라” 라고 5박자의 슬프고도 경쾌하며 청승맞으면서도 낙관적인 강원도 아리랑의 노래 말과 같이 개인만이 인간의 귀물이다.이런 개인주의적 자유는 엇비슷한 것을 욕망하는 개인들을 서로 충돌하게 한다. 17세기의 영국 철학자 토마스 홉스는 이런 충돌이 ‘만인의 만인에 대한 전쟁(war of all against all)`을 반드시 불러 온다고 보아 평화적 질서를 유지하기 위하여서는 자유를 철저하게 억압하는 전제 군주제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다.홉스의 생각이 너무 비관적이었다는 것은 그 후 전개된 역사가 증명한다. 사람들은 자신의 자유가 귀중하면 다른 사람의 자유도 귀중하다는 것을 인류역사 전 기간을 통하여 지식의 근간으로서 축적해 오고 있었다. 그래서 서양에 먼저 시대의 햇볕이 들자 자유로운 시민 사회적 질서와 평화를 만들 수 있게 되었고 이 시민 사회적 자유와 질서는 온 세계 인류 역사에 공전의 번영을 가져 왔다.존 로크는 법의 지배 아래 있는 작은 정부를 생각하였고 개인은 다른 개인이나 사회와 국가로부터 자기의 생명, 재산, 자유를 보호 받을 권리가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리고 생명과 자유는 개인의 재산과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였다.19세기 사람인 J. S. 밀은 “모든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위해(危害)를 가하지 않는 한 무엇이나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라는 이른 바 위해의 원칙(harm principle)을 선포하였다. 위해라는 것은 로크적 의미에서는 남의 것(생명, 재산, 자유)을 침해하는 것이다.권리 또는 인권이라는 것은 자연이나 신이 준 것이 아닐 수도 있다. 사람들 사이에 ‘내 것은 내 것, 네 것은 네 것, 그의 것은 그의 것’이라는 약속이 이루어지면 각자는 자기의 영역 에서는 아무 방해를 받지 않는 대신에 남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인권이란 것은 모든 사람이 상호간 위해원칙을 엄격하게 준수하면서 누리는 그런 개인의 자유 이외의 아무것이 아니다.그런데 공자는 이미 2천 5백 년 전에 이 위해원칙을 유교의 최고 도덕 항목으로 역설했다. 다름 아닌 인(仁)이 그것이다. 공자와 그의 제자들은 논어에서 “자신이 남에게서 당하고 싶어 하지 않은 짓을 남에게 행하지 않는 것(己所不欲 勿施於人)이 인(仁)이다.”라고 반복해서 말하고 있다. 이를 공자의 인의 원칙이라고 부른다면 인은 곧 개인의 자유이고 인의 원칙은 밀의 위해 원칙과 일치하는 것이 된다.18세기 스코틀랜드의 계몽사상가들은 국가의 역할은 시민의 자유를 보호하는데 두어야 하고 그 이상도 그 이하도 해서는 안 된다고 못 박았다. 그들이 무정부주의로 흐르지는 않았던 것은 국가가 없으면 국내외의 무법자들로부터 시민의 자유를 보호할 법을 집행할 주체가 없어진다는 이유에서였다.철저하게 밀의 위해 원칙에 따라서 법이 만들어지고 그런 법이 지배하는 나라만이 자유민주주의 국가다. 그러므로 위해원칙은 자유민주주의 원칙이라고도 부를 수 있다. 인권과 자유민주주의는 그 뜻하는 바가 서로 일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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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수 2005-01-09 00:00:00
분배가 먼저냐? 성장이 먼저냐?
이것은 네티즌 여러분께서 너무 잘아시니까
그냥 넘어 가 거두절미하고,필자는 조국광복을 어린나이에 중국 동북 지방에서 맞이하고 소위 국,공 합작 이 실패하여 고 장개석 총통이 이끄는 국민당 정부는 대만으로 패퇴하였고,모택동 이 이끄는 공산당 은 드디어
1949년 10월1일에 중화 인민 공화국을 건설
하였읍니다.그런데 여기서도 분배가 먼저이고 성장은 후순위로 하였던것 같다.그들이 가장 증오 하는 부루조아(부유 하고 가?으며 인테리겐챠) 들을 지금까지 살아온 경과 를 낱낱이 대중(이런 행사 때는 당시 많은 조선 사람을 전부동원 호출해서 큰 공원에서 자신의 과거행적 하나 빠짐 없이 고하고 부모나 형제중 부정(부정은 마약장사,공장을 운용 하면서 노임 착취) 등등 뒤집어 씌우고,거기에도 붉은 완장을 두른 선동자들이 있어가지고 대회를 진행 하는자가 이런 동무는 어떻게 하면 좋겠오----하면 극형을 처하면 어떻소, 라는말 떠러지기무섭게 그 프락티 들이 군중속에서 옳소-----하면 피고소자는 거기서 끝장, 그의 재산은
압수하여 공동분배(共産分配)를 받는데 숟가락 몇자루 가저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세수대야,밥그릇, 가정상비약품인 위장약 위활 이라는 것을 받아 오는데 더욱 무서운것은 않
가저면 후환이 있을까 무서워 아무짝에도 못쓰는 살림 찌꺼기를 가저 올뿐이 였읍니다.
어린나로서는 판단력도 없어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저 이것이 공산주의로구나! 하고
마음속에 지녔을뿐, 아무리 어린 나이지만
한사람의 재산을 청산하여 누구든 똑같이 나누는것이 공산 주의구나.....한사람은 타의에
의해 파산되고 목숨까지 잃는반면 이것도 저것도 아무것도 안되는 분산된 한사람의 살림을
이렇게 차지 하면 되는것인지 참으로 암담
했읍니다 그후 1948년 부모따라 정치배경이 불안정한 한만 국경을 넘고 원한의 38선을 야밤중을 틈타 고지능선을 타고 월남 하여 곰을 피하면 호랑이 만난다는 식으로 6.25 를 죽도록 맞이 했다. 그이후 부터는 북쪽을 향해서 소변도 않보았으며 지금도 그렇다.
과일나무를 한그루 심고 비료주고 철따라 기지치기를하고 잘 가꾼후에 열매를 따먹는것이
순서 인줄로 알고 있는데 뭐이 어드레? 분배가 먼저이고 성장은 차후문제로 미루는 머리를 소유 하신 어르신 들께서 뭐가 잘못돌아 간다고 생각하시지 않습니까? 지금 우리 사회는 가진자 를 부도덕 한 시각으로 보고, 재벌들의 산업투자 상한 액을 정해놓고 하니 마음 놓고 사업을 할수 없고 노조는 초강경 일변도로나오고 심지어 외국 투자자 조차도 한국 노사 문제가 투자 의욕을 꺽는다고 하는 말 비일비재한데 국내 중소 기업들이 3~4만개공장이 해외로 해외로...... 나의유치한 시각과 마리로는 도저히 판단 못하갔쇠다.기업하기 좋은 풍토같으면 외국인들 투자가 많을것이요 해외로
나갔던 기업이 돌아 오지 않겠읍니까?
기업이 기를 펼수 있도록 하루 빠삐 고치지
않으면 제2의 일본식 장기 불황이 않온다는
보장을 과연 누가 할수 있읍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