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프로필> 대만독립주창자 천수이벤
<인물프로필> 대만독립주창자 천수이벤
  • 미래한국
  • 승인 2002.07.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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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거유세 중의 천수이벤
지난 2000년 한국의 16대 총선에서 당선된 386세대의 한 초선 국회의원은 자신의 경력을 대만의 천수이벤(陳水扁)총통의 경력과 대비하는 선거전략을 써서 좋은 성과를 거뒀었다. 천총통의 경험과 그가 대만에서 이뤄낸 정치적 ‘혁명’의 과정은 그만큼 드라마틱했으며, 이는 또한 우리나라에서도 종종 볼 수 있는 가난했던 수재의 역경과 성공, 그리고 그가 일궈낸 정치적 민주화의 스토리이기도 하다. 천수이벤은 소년시절 한 번도 1등을 놓친 적이 없는 수재였다. 그는 어머니를 기쁘게 해 드리기 위해 미친 듯이 공부했으며 국립 대만 대학에 진학했다. 계엄령 하에 있던 대만의 70년대, 천수이벤은 이웃에게 빌린 학비로 공부하며 법대3학년 재학중 사법시험에 수석 합격했다. 반정부 민주운동이 일어나기 시작하던 때였고 그 중에 10여명의 반체제 인사가 구속된 사건이 일어났다. 천수이벤은 이 사건에 변호인단으로 참여했고 이 사건을 통해 처음 만났던 그의 부총통 파트너 뤼수롄(呂秀蓮)은 이때 징역 12년의 형을 선고 받았다. 천수이벤은 1981년 타이페이의 시의원 선거를 통해 정치에 입문해 2000년 총통으로 당선되기까지 반체제 운동으로 투옥되는 등 많은 정치적 역경을 거쳤다. 반세기의 국민당 집권사에 종지부를 찍고 정권을 교체한 2000년 대만 국민의 선택은 혁명이라고 까지 얘기된다. 민진당 후보로 나선 천수이벤 후보가 당선될 수 있었던 데에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있다. 집권 국민당 후보가 둘로 갈라져 각각 국민당과 무소속 후보로 출마한 국민당의 분열이 있었고 천수이벤이 중국 본토 출신 외성인(?省人)이 아닌 대만출신의 본성인(本省人)이라는 사실, 선거 막바지에서 ‘대만의 양심’이라고 하는 노벨화학상 수상자 이웬저(李遠哲)의 지지, 그리고 국민들의 성원을 받은 민진당의 초강경 대중국 정책 등이 그것이다. 천수이벤 총통에 대한 국민의 지지도는 취임 때 80%였지만 6개월이 지나선 40% 그리고 다시 25%까지 떨어졌었고 지금은 50~60%로 회복됐다. 천수이벤의 측근 중 한 사람으로 2000년 선거를 곁에서 도왔던 황칭웬(黃?源)씨는 정권초기의 지지도 하락은 천수이벤 총통이 다른 사람의 의견을 잘 듣지 않는다는 평가 때문이었다고 한다. 도전성이 강하고 모든 분야에서 1등이 돼야 하는 천총통은 곧 야당과 국민의 소리를 듣는데 전심을 쏟았으며 다시 지지도를 상승시키는데 성공했다. 천수이벤 총통을 곁에서 오랫동안 지켜 봐온 황칭웬 전 선거본부장은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천총통의 인간적인 면을 강조했다. 알려진대로 천총통의 부인 우슈쩐(吳淙?)은 지난 85년 정치테러의 의혹이 짙은 사고를 당해 장애자가 됐다. 천 총통은 매일 밤 우씨를 안고 소변을 보게 한다. 그는 늘 이 같은 심정으로 나라를 관리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려울수록 원망하지 않고 오히려 이를 도전과 축복으로 생각하며 모든 일을 하나님이 이끌어가심을 믿는다. 2000년 선거에서 대만 독립을 당론으로 삼았던 천수이벤 총통은 취임 후 양안의 평화적 공존을 임기 중 최우선 목표로 놓았다. 중국과의 관계에 대한 그의 견해와 목표를 밝혔던 6월1일의 한 인터뷰에서 천 총통은 중국과 대만 양측은 “논쟁의 여지가 있는 정치 문제를 제껴 놓아야 한다”고 하며 “경제적 통합과 문화적 통합이 정치적 통합이라는 새로운 구조를 구축하기 위한 상호 신뢰와 대화의 기본이 돼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유럽연합(EU)이 대만과 중국의 통합의 모델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천수이벤 총통의 민주화를 위한 정치적 투쟁과 대만의 현 상황을 한국의 경험과 상황에 비추어 이해하려고 할 때 착각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대만에는 최근 한국이 겪고 있는 친북세력에 의한 이념적 갈등이 없다. 과거 장개석 정권은 반공의 기초 위에 세워졌고 그 전통은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지만 현재 80%이상의 대만 사람들은 중국과 더 많은 교류를 원하고 있다. 천수이벤 총통은 지난 이십여년 동안 반체제 민주 운동을 벌였지만 늘 누구보다도 강경한 대중국 정책주장의 선봉에 있었으며 대만 독립의 주창자였고 반공론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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