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병행론(東西竝行論)
동서병행론(東西竝行論)
  • 미래한국
  • 승인 2005.01.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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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용린의 이런생각 저런생각]
▲ 문용린(서울대 교수·전 교육부 장관)

중체서용(中體西用), 화혼양재(和魂?才) 그리고 동도서기(東道西器)라는 “서양의 과학과 기술을 받아들이되 정신은 동양적인 것을 고수하자”는 구호가 제대로 작용하지 않은 중요한 이유는 무엇일까?

서양문명이 몰고 오는 ‘과학과 기술’의 결과에 대한 동양적 수용자세에 대한 형이상학적 지침이 없었기 때문에 구호는 공허했다.

몇 년 전에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는 논지를 용감하게 편 사람이 있었고, 이에 대한 반론으로 “공자가 살아야 나라가 산다”는 주장을 펼친 사람도 있었다.

공자의 역할이 부정적인가 긍정적인가 에서만 차이가 있을 뿐, 이들의 논지들 역시 공허하기는 마찬가지다.

우리 문화와 역사 속에 배어온 공자를 빼내버릴 방도가 도대체 없기 때문이며, 공자의 가르침만으로 지구촌 시대와 IT시대를 잘 헤엄쳐 나갈 수 있다고 보기 또한 어렵기 때문이다.

그 간 동양과 서양의 접목을 보는 관점은 배타적이었고 부정적인 게 사실이었다. 서양의 압도적인 힘(군사력과 경제력)이 동양을 정복해오는 양상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21세기부터는 달라지지 않을까? 국가 간에, 문명 간에 상호의존성이 심화되어 어느 한 문명의 독주가 아니라 공존이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21세기 국제사회의 경쟁력은 ‘다문화 공유능력’으로 결판난다. 다시 말하면 서양적 가치와 동양적 가치를 조화롭게 공유하고, 병존시킬 수 있는 문명권, 국가, 개인이 경쟁력을 갖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중체서용, 화혼양재, 동도서기론은 이제 동서병행론(東西竝行論)으로 대치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즉 서양적 가치인 합리성(rationality), 공평성(fairness), 정의(justice)라는 덕목을 우리의 전통적인 덕목인 삼강오륜과 병존시킬 수가 있지 않겠는가 하는 것이다.

우리는 그간, 서양의 개인주의와 합리주의는 유교의 삼강오륜과는 배타적일 것이라는 선입관을 가지고 살아왔다. 삼강오륜에 철저한 사람은 합리적 사고를 못하는가? 개인주의자는 삼강오륜을 지키기가 원래 어려운가? 삼강오륜을 지키려면 공평성과 정의성을 포기해야만 되는가?

이러한 질문에 선뜻 그렇다고 대답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런 잘못된 선입관을 계속 가지고 왔다. 한 가지 예로 뇌물과 부패를 유교적 전통과 관련 짓는 사람들이 많다. 삼강오륜의 전통이 뇌물과 부패의 관행을 부추기고 강화시켜왔다는 주장인 셈인데, 의외로 이를 의문 없이 그대로 수긍해버리는 사람이 많다.

삼강오륜의 심리적 구조 그 자체 속에 뇌물과 부패 관행이 기생하고 있는 것이 결코 아니다. 오히려 삼강오륜에 대한 과잉 기대가 뇌물과 부정부패에 대한 방지체제의 설치를 게을리 하고 등한하게 해왔다.

서양의 선진국들을 보라. 그들의 합리적인 의식이 부정과 부패를 막고 있는 것이 아니라, 제도의 곳곳에 마련해둔 부정부패의 방지체제가 그것을 막고 있는 것이다. 동서병행론은 서구적인 합리성의 덕목과 동양적인 삼강오륜의 덕목을 상황에 맞게 적절히 병행시키자는 것이다.

예컨대 공적인 업무(business)는 서양적 덕목인 합리(rationality), 공평(fairness), 정의(justice)에 입각해서 추진하고 사적(가족, 친척, 친지)인 업무는 동양적인 덕목인 삼강오륜에 입각해서 해결하자는 것이다.

한 개인의 경우를 보더라도 동양과 서양의 가치와 삶의 방식을 동시에 지혜롭게 병존시키는 사람이 결국 성공하고 출세도 한다. 우리 주변의 성공한 사람들은 결국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동양과 서양의 가치를 병존시키면서 살고 있는 사람들이다.

이러한 동서병행의 생활 문화가 시민들의 삶 속에 정착될 때 전반적인 국가 경쟁력도 증대된다. 만약 한국이라는 사회가 삼강오륜과 같은 전통적인 인간관계의 미덕이 흘러넘치면서 동시에 서구적인 합리성과 정의와 공평의 원칙이 잘 지켜지는 사회라고 가정해보자.

모든 바이어들은 한국에서의 정 넘치는 인간관계를 잊지 못할 것이고, 국제적인 사업가들은 한국을 중심으로 사업을 펼치길 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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