틸리 스미스의 경고
틸리 스미스의 경고
  • 미래한국
  • 승인 2005.01.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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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용린의 이런생각 저런생각]
   
 
  ▲ 문용린(서울대 교수·전 교육부 장관)  
 

지난해 12월 26일은 재앙의 날이었다. 인도네시아 수마트라 섬 인근의 해저에서 엄청난 지진이 일어났다. 그 결과로 상상키 어려운 강도의 해일이 만들어졌고, 이는 인근 여러 나라의 해안가를 덮쳤다.

수십만에 이르는 사상자가 발생했다. 신의 노여움으로 밖에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어 보인 이 재앙은 전세계를 놀라게 했다.

이런 일이 도대체 어떻게 가능한가? 눈 깜짝할 순간에 그토록 많은 사람이 죽을 수 있는 것인가? 자연의 재앙 앞에 인간은 이렇게 무력할 수밖에 없는 것인가?

재앙에 대한 수습이 시작되면서 사상자수는 엄청나게 많을 것으로 예측했다. 한 마을이 완전히 물에 잠기고, 커다란 배가 언덕 위로 끌어 올려지고, 아름드리 큰 나무들을 뿌리채 뽑아 올린 이 엄청난 괴력의 해일을 과연 누가 피할 수 있었을까?

누구든 이렇게 절망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하루 이틀 시간이 지나면서 재앙의 상황이 목격자들에 의해서 구체적으로 밝혀지기 시작했다. 이 괴력의 쓰나미가 덮친 모든 해안가가 동일한 피해를 입은 것은 아니었다. 시간과 장소와 대처 방식에 따라 재앙은 다른 방식으로 그곳의 사람들에게 다가 간 것이었다.

어떤 이는 요령 있게 대처해서 자신과 가족의 생명을 구하기도 했다. 같은 장소 같은 시간에서 같은 방식으로 움직인 사람들 중에도 재앙은 다른 방식으로 다가 갔다. 하느님의 노여움이라고 보기에는 대피요령의 효과가 크게 나타났다. 하느님의 벌이라면 대피요령의 숙지만으로 피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이번의 쓰나미 피해는 동물들에게는 그리 크지 않았다고 한다. 하나님이 동물을 구한 것이 아니라, 쓰나미를 예측하는 본능에 붙박힌 육감(肉感)이라는 능력이 발휘된 때문이 아니던가? 쓰나미의 속성을 알고 요령 있게 대처한 사람은 이번 재앙을 비켜갈 수 있었다. 지식이 힘이었던 것이다.

쓰나미가 몰려오던 그 시각에 10세 짜리 영국인 소녀 틸리 스미스는 태국 푸켓 지역의 한 해안가인 마이카오에서 파도를 즐기고 있었다. 엄마 곁에서 파도를 응시하던 그녀는 거품을 일으키며 점차 거세지는 파도, 그리고 떠밀려오는 죽은 물고기를 보면서 얼굴이 파래졌다.

휴가를 떠나오기 2주 전 고향의 학교에서 배운 쓰나미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아 차렸기 때문이다. 틸리는 엄마에게 알렸다. 이제 곧 무시무시한 쓰나미 해일이 덮치리라는 것을… 누구든 이에 맞설 재주는 없고 오로지 높은 곳으로 피하는 것이 유일한 대책이라는 것을… 그 엄마는 이를 호텔 종업원에게 급히 알렸고, 호텔 측은 온갖 방법으로 해안가의 모든 관광객을 높은 곳으로 대피시켰다.

그래서 그 호텔 주변의 해안가에서는 희생자가 생기지 않았다. 10세짜리 틸리 스미스의 귀띔으로 목숨을 구할 수 있었던 관광객 수 100여 명이 넘었다. 결국 틸리의 쓰나미에 관한 지식이 그들의 생명을 구한 것이다.

지식은 사람을 살리는 힘이었던 것이다. 그 쓰나미 재앙 이후 일주일이 지나서 로이터 통신을 통해서 세상에 알려진 틸리 스미스의 이야기는 몇 가지 경이심(驚異心)을 불러 일으킨다.

첫째는 10세 짜리 틸리가 2주 전에 영국에서 배운 쓰나미 학습내용을 태국 푸켓의 파도와 어떻게 그렇게 확신을 가지고 연결시킬 수 있었는가 하는 것이고, 둘째는 10세 짜리 틸리의 말을 액면 그대로 믿고 호텔 종업원에 전한 엄마의 딸에 대한 신뢰심이다.

셋째는 해변가에서 자유분방하게 즐기던 관광객들이 어떻게 그렇게 일사분란하게 호텔의 대피지시를 따라줄 수 있었는가 하는 것이다. 틸리 스미스는 인터뷰에서 “쓰나미에 대해서 배웠다”고 말하지 않고, “쓰나미와 관련된 프로젝트를 마쳤다”는 표현을 썼다.

그녀가 급박한 상황 속에서 보여준 쓰나미에 관한 해박한 지식과 예민성은 듣고, 읽고 외운 지식이 아니라 프로젝트를 통해서 몸으로 생생하게 체득한 경험의 집적물인 것처럼 보인다. 학교수업이 삶의 현실과 이렇게 직결될 수 있다는 것이 다시 한번 더 경이롭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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