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년간 ‘집 없는 아이들’의 아버지
43년간 ‘집 없는 아이들’의 아버지
  • 미래한국
  • 승인 2005.04.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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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소망의집 노주택 원장
▲ ◇ 새소망의 집 노주택 원장
“집이 없다고 해서 이름이 노(NO)주택입니다.”새소망의집 노주택 원장은 자기 이름에 붙은 별명으로 첫인사를 건넨다. 그런데 이름이 예사롭지 않다. 집 없는 아이들에게 집이 되어 주었던 그가 막상 자기는 ‘No주택’ 이라니. 별명이 아니라 사실이란다. 지난 1966년부터 지금까지 39년간 ‘새소망의집’은 아이들의 집일 뿐 아니라 노 원장의 집이기도 했다. 실제로 노 원장은 지금껏 ‘새소망의 집’에 있는 사택에서 살고 있다.부천에 위치한 새소망의집은 갈 곳 없는 아이들을 양육하는 아동복지시설이다. 현재 130명의 아이들이 살고 있다. 노 원장이 처음 아동복지사업에 뛰어든 건 1962년 대구 성광보육원 총무를 맡으면서다. 1966년 부천에 있는 새소망의집으로 옮긴 후 평생을 아동복지활동에 바쳤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 2003년에는 아산사회복지대상을 수상한 바 있다. 지금까지 새소망의집을 거쳐간 아이들은 모두 1,200여 명.“요즘엔 애들 키우는 게 더 어려워졌어요. 예전엔 밥 세끼만 먹을 수 있으면 됐지만 요즘엔 결손가정이 많아서 아이들의 상처도 크고 어른들에게 마음을 잘 열지 않습니다.”처음 일하기 시작할 때야 전쟁고아가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요즘은 가정불화로 인해 부모가 있어도 시설로 들어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한다. 그래서 노 원장의 관심은 아이들의 정서를 가꾸는 데 쏠려 있다.꽃가꾸기도 그 중 하나다. 새소망의집에는 아이들이 직접 기른 자그마한 꽃들이 빨강 노랑으로 피어 있다. 풀밭에선 여자아이가 쪼르르 달려와서 노 원장에게 손바닥 안에 새끼 메추라기를 내밀어 보인다. “공부보다도 아이들의 정서를 길러야 한다”는 노 원장의 철학은 아이들의 밝은 표정에서 먼저 확인할 수 있다.새소망의집에서 일하는 복지사는 18명. 노 원장은 “아홉가정”이라고 표현했다. 아닌 게 아니라 5년 전부터 새소망의집은 전원 부부교사로 운영되고 있다. “혼자 일하다보면 경제적으로도 불안정하고 1년 이상 일하지 못합니다. 아이들은 부모에게 버림받았다는 상처가 큰데 이렇게 되면 정서적으로 불안정해집니다.”한 쌍의 부부가 열 두 명의 아이들을 맡아 양육한다. 교사부부 중 세 쌍이 새소망의집 출신이다. 노 원장이 직접 중매한 경우도 많다.아이들이 잘 되려면 먼저 안정적인 분위기가 우선인데 부부교사제를 통해 아이들이 정서적으로 안정될 수 있었다고.여기까지 오는 데 고비도 많았다. 86년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정부에서 국내 사정을 외국에 알려 모금활동을 벌이는 선교사들을 제지하기 시작했다. 당시 새소망의집도 외국인선교사가 운영하고 있었다. 초대 원장 잭 홈 선교사가 떠나게 되면서 새소망의집도 문을 닫을 위기에 처했다. 당시 노 원장은 “선교사가 떠나도 하나님은 떠나지 않는다”며 새소망의집을 지켰고 재정을 마련하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부천시내에 있는 교회마다 편지를 돌려 후원을 부탁했지만 쉽지 않았다. “이러다 아이들 모두 굶어죽겠구나 싶었습니다. 그래서 밤마다 하나님께 도와달라고 아이들과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새소망의집을 오늘날까지 이끌어왔다.지금까지 1,200여 명 양육 목사 30명, 박사 7명 배출“목사가 30명이 나왔고 박사도 7명이 나왔습니다. 예전에는 학교 보내기도 쉽지 않았는데 잘 된 경우가 많죠. 13명이 지금 스위스에서 공부 중입니다.”지금까지 거쳐간 아이들의 이름을 모두 기억한다는 노 원장은 아이들을 추억할 때마다 꼭 “똑똑한 아이”라는 말로 시작한다. 말썽부렸던 아이도, 미국에서 컴퓨터 박사가 되어 돌아온 아이도, 운동을 좋아했던 아이도 모두 “똑똑한” 녀석들이다. 새소망의집에서 꼭 해야 되는 것 세 가지가 있다. 첫째 ‘성경 한 번 읽기’, 둘째 ‘태권도 유단자 되기’, 셋째 ‘대학 들어가기’다. “태권도를 가르치면서 2008년 올림픽 금메달을 기대했는데 아직까지는 잘 모르겠다. 태권도 금메달도 나오고 행정고시 합격한 사람도 나왔으면 좋겠다”며 갈 곳 없는 아이들을 받아서 돌보는 복지에서 끝난 게 아니라 그 아이들을 신앙으로 기르고 아동복지를 통한 선교와 사회에 필요한 일꾼 만드는 것이 그의 목표다. “아이들 키우는 게 적성에 맞고 즐겁다”고 43년간이나 힘든 일을 즐겁게 해올 수 있었던 힘은 아이들이 가진 가능성을 보고 키우는 데 있었다.새소망의집 한 켠에는 한창 공사 중인 건물이 있다. “법적으로 시설에서 아이들을 기를 수 있는 기한은 만 18세 까지입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아이를 바로 사회로 보내려니 적응하기도 힘들고 막막하더군요. 그래서 일정기간 더 돌보면서 완전히 독립할 때까지 지원하는 ‘자립관’을 만들고 있습니다.” 아이들 키워서 좋은 학교 보내고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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