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전쟁납북인사가족협의회 이미일 이사장
6·25전쟁납북인사가족협의회 이미일 이사장
  • 미래한국
  • 승인 2002.08.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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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만3천명 납북자 명단 발굴 <b>특별법 입법청원 정부 직무유기 규명 노력</b>
“국민은 자신을 소중히 여기는 나라를 위해 충성을 다할 것입니다. 6·25전쟁납북자는 대한민국의 국민입니다. 정부는 이들을 끝까지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2000년 11월 6·25전쟁납북인사가족협의회를 설립하고 지난 3월 자료수집 1년 3개월 만에 82,959명의 납북자들이 실명으로 기재된 ‘6·25 사변 피 납치자 명부’를 발견해 공개한 이미일 이사장. 그녀의 노력은 그동안 역사의 미아(迷兒)가 돼버린 8만여명의 6·25납북자문제를 공론화(公論化)하는 계기가 됐다. 이씨가 발견한 ‘6·25 사변 피 납치자 명부’는 52년 10월 대한민국 정부의 실사(實査)에 의해 작성됐다. 이 명부에는 8만여명의 인적사항이 성명, 성별, 연령, 직업, 소속, 납치일, 납치장소, 주소의 8개항으로 기록돼 있으며 국회의원, 공무원, 학자, 의사, 언론인, 사업가, 반공청년단원, 변호사 등 지식인들을 비롯하여 인력조달을 위해 10대 소년까지 납치해 간 사실이 기록돼 있다. 이 명부가 발견됨으로써 그 동안 400여명에 불과하다는 납북자는 허수(虛數)가 됐고 8만여명 이상이 6·25남침 중 납북됐다는 사실이 공식적으로 확인됐다. 이미일씨가 명부를 발견한 후 찾았던 첫 번째 이름은 그녀의 아버지였다. 이씨의 가족은 6·25남침 당시 서울 청량리 근방에서 놋쇠공장을 하고 있었고 그녀의 아버지는 1950년 북한의 서울 점령시 강제 납북됐다. 변란이 터지자 그녀의 가족은 밀려드는 피난인파를 뒤로 하고 서울에 머무를 수밖에 없었다. 2살이었던 자신은 유모의 실수로 척추를 다친 상태였고 할아버지와 할머니 그리고 어머니는 만삭이었다. 아버지도 “죄진 것이 없는데 나를 해치겠냐”며 집에 머물렀다. 그러나 50년 8월초 당시 소아과의사였던 큰아버지가 납북된 후 인민군들이 집안에 들이닥쳤고 평북 박천 사람인 이씨의 아버지에게 “김일성이 싫어 내려왔느냐?”며 정치보위부로 끌고 갔다. 그것이 마지막이었다.“아버지를 잃은 어머닌 딸 셋을 데리고 몇 번이나 죽으려 했습니다. 그러다 친지 한 분께서 아버지가 자강도 포로수용소에 있다는 말을 전해줬습니다. 그리고 언젠가는 가족들이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으로 여기까지 살아온 것입니다.”납북 후 50여 년. 이씨는 아버지의 이름을 명부에서 만나볼 수 있었다. 그러나 그 50년은 이씨를 비롯한 납북자 가족들에게 순탄하지 못했던 삶이었다. 대부분 가장(家長)이 납치돼 경제적으로 곤궁하게 살 수 밖에 없었고 납북과 월북의 구분이 백과 흑처럼 명확했음에도 납북자 가족들은 감시와 경계의 대상이었다. 남한의 남은 식구들은 북한에 납치되어 있는 가족들이 불이익을 당할까 염려돼 납북자 문제를 적극적으로 제기하기도 어려웠다. 그러나 현 정부의 남북화해정책이 진행된 이후에도 납북자 가족들의 고통은 치유되지 못했다.“현 정부의 햇볕정책이 진행되면서 납북자들에 대한 진상이 밝혀지기를, 적어도 생사만이라도 확인해주길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북한은 그들의 조직적인 범죄를 숨기기 위해 납북자는 한명도 없다는 말만 되풀이 하고 있습니다. 우리 정부도 ‘남북 화해의 걸림돌’이라는 말을 하며 이 문제를 피하려고만 합니다.”정부의 무관심 속에 방치돼 온 8만 여명의 6·25납북자는 결국 민간단체인 가족협의회에 그 명단이 발견, 공개됐고 이들 명부의 DB작업도 지난 20일 가족협의회에 의해 이뤄졌다. “납북자 문제는 정치적인 문제가 아닙니다. 관료들은 북한과 화해 협력이 이뤄지다보면 납북자 문제도 해결될 것이라며 침묵을 강요합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화해 협력도, 납북자 문제도 해결된 것이 없습니다. 63명의 비전향 장기수 송환이 이뤄졌을 뿐입니다. 국민의 기본적 인권문제를 무시한 채 정권의 업적에 연연한다면 어떤 쪽도 좋은 결과를 얻어낼 수 없는 것입니다.”이미일씨는 현재 납북자 관련 특별법 제정을 위한 입법청원과 정부의 역사왜곡과 자료보존 등 직무유기에 관한 법적대응을 고려 중이다. 9월 2일은 단체 차원에서 ‘납북자의 날’을 선포하고 9월 26일에는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로 ‘전쟁체험 납북 길 따라 걷기’행사를 계획하고 있다. 정부는 자국민을 끝까지 보호해야할 의무가 있다. 6·25전쟁 중 납북된 사람들의 상당수는 해방 후 대한민국을 건국하고 초석을 다지는데 기여한 이들이다. 이미일 씨는 “이들을 접어둔다면 대한민국의 정통성도 바로 세울 수 없다”고 말한다. “역사를 바로잡아 진실을 후손들에게 전하기 위해서 정부의 적극적인 전쟁납북자 문제 해결책이 필요합니다. 또한 한 가족을 송두리째 파괴하고 수 십 년간을 살지도 죽지도 못하게 만드는 반문명적 납치사건의 재발을 막기 위해서라도 이 문제는 결코 묻어둬선 안 될 것입니다. 국민과 정부가 6·25전쟁납북자에 따뜻한 관심을 가져 준다면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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