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난민보호·북한인권 활동가 릴레이 인터뷰 ⑦
탈북난민보호·북한인권 활동가 릴레이 인터뷰 ⑦
  • 미래한국
  • 승인 2005.06.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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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국한 북한인권국제연대 한국대표
북한주민과 탈북난민들의 인권문제가 국제사회의 주요 이슈로 떠올랐다. 유엔인권위원회 등 국제인권기관 및 주요언론과 인권단체들은 물론이고 미국, 영국, 프랑스 등 국가들은 국가적 차원에서 북한·탈북민인권문제의 해결노력에 나서고 있다. 본지는 북한인권·탈북난민보호 활동가들을 릴레이인터뷰 형식으로 소개한다. 일곱번째 순서는 북한인권국제연대의 문국한 한국지부 대표. - 북한인권국제연대는 어떤 단체인가 2002년에 설립됐다. 법인단체는 아니고 각국의 실무 책임자들로 구성돼 있다. 미국에서는 디펜스포럼의 수잔숄티 대표, 일본에서는 북한구원기금의 카토 히로시 사무총장, 그리고 한국에서 내가 책임을 맡고 있다. 재미 건축가 남신우 씨가 국제대표의 타이틀을 가지고 단체를 총괄한다. 우리의 중심 프로젝트는 북한인권관련 전시회를 개최하는 것이다. - 전시회는 어떤 취지와 내용으로 구성되는가90년대 중반 북한에서 3백만명이 아사했는데 그것은 단순한 아사가 아니고 의도적인 학살이었다고 본다. 이러한 사실과 북한내부의 실상을 국제사회에 알리고 고민하도록 하는 것이 전시회의 취지이다. 북한의 실상을 효과적으로 알리기 위한 방편으로 동영상, 사진, 북한주민과 탈북민들의 글 등의 자료들을 접할 수 있도록 한 것이 전시회였다. 전시물품은 10년 동안 모아온 것인데 전시회 장소가 비좁다 보니 늘 일부만 소개해 왔다. 도움을 요청하는 북한주민들의 편지, 그들의 옷가지에 비밀리에 적어온 메시지, 장길수 가족이 쓴 일기와 그림 그리고 북한실상을 전하는 사진과 영상 자료들이다. - 그동안 전시회활동을 소개하면 지난해 11월 8일부터 10일까지 여의도 국회에서 첫 번째 전시회를 개최했다. 이전에도 소규모로 여러 차례 탈북민 장길수 그림 등을 전시했지만 대규모 행사로는 국회전시회가 처음이었다. 국회에서 하다 보니 일반인들이 좀더 쉽게 접하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남아 이후 부천 등지에서도 개최했다. 지난 4월과 5월에는 미국 워싱턴의 연방의회 건물, 워싱턴지역 한인교회, LA 한인타운내 갤러리아에서 개최했다. 다음달 워싱턴 프리덤하우스대회 전시회를 열고 이후에도 텍사스, 시애틀, 캐나다 등지에서 순회전시회를 계속할 예정이다. - 전시회에 대한 반응과 성과는한국이나 해외나 관람객들의 반응은 거의 한결같다. 한마디로 북한주민이나 탈북민들의 실상을 이전에 어디에서도 접해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더러 글로는 조금 봤지만 눈으로 직접 확인하는 것은 대부분 처음이었다. 그동안 미디어들이 그런 역할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워싱턴의회 전시회에는 존 매케인 상원의원, 프랭크 울프 하원의원 등 주요 인사들이 다녀가면서 깊은 관심을 표명했다. 5월 8일부터 14일까지 열린 LA전시회는 한인교민들의 반응이 상당히 높았다. 지역방송에서 홍보를 하고 또한 입 소문을 통해 하루 2,000~3,000명의 관람객들이 다녀가는 등 성공적이었다. -북한·탈북난민인권 문제에 전념하게 된 개인적 계기는 1994년에 문구류 관련 개인 사업차 중국에 갔다가 연변지역에서 우연히 탈북민들을 만나고 그들의 처참한 현실을 목격하면서 이 일에 빠져들게 됐다. 본격적으로 전념하게 된 것은 1997년 15명의 길수가족을 만나면서부터였다. 길수 가족을 만난 계기가 신기했는데 당시 나의 사업 파트너가 꿈에서 도움을 호소하는 한 소년의 꿈을 꾸고 그날 연변시내에서 실제로 한 소년을 만났는데 그가 길수였다. 나는 15명의 길수 가족과 3년여 동안 중국에서 함께 생활하면서 처참한 탈북난민들의 실상을 세상에 알려야겠다고 결심하게 됐다. 탈북자들을 만나면 일단 그들을 비참한 생활에서 탈출시켜야겠다고 생각하게 되는데 당시 활동하던 탈북난민보호운동본부(CNKR) 등의 자문을 받아 중국내 유엔난민고등판무관(UNHCR)사무소를 통해 도움을 요청했다. -활동을 하면서 어려운 점은 길수가족이 한국에 오기까지 많은 과정이 있었다. 주머니에 돈이 전혀 없어 꼼짝할 수 없는 상황에서 유엔을 생각하게 된 것이었다. 전시회를 하면서도 가장 큰 문제는 전시장을 마련하기 위한 재정을 확보하는 일이다. 처음에는 나의 가족에게 폐를 많이 끼쳤다. 집에 살림을 보태주기는 커녕 축 내는 일을 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이해를 하고 도와주고 있다. 또한 좋은 일을 한다하여 개인적으로 말 없이 생활비를 도와주는 고마운 선배가 있다. 하지만 이러한 재정적 문제보다 가장 큰 어려움은 탈북민들과 함께 울어야 하는 마음고생이다. 중국에서 탈북민들이 비참한 생활을 하면서 자유를 그리워하고 있는데 나는 그들과 동행하지 못하고 옆에서 지켜보는 것이 가장 큰 어려움이었다. - 북한인권문제의 해결점은많은 사람들이 이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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