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천의 바른 국가관 -민족공조론과 동북아균형자론을 비판함
크리스천의 바른 국가관 -민족공조론과 동북아균형자론을 비판함
  • 미래한국
  • 승인 2005.07.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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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신학교 교장 석원태 박사
오늘처럼 국가와 국제관계가 복잡해지는 때는 없는 것 같다. 고대 애굽이나 앗수르, 바벨론, 페르시아, 헬라와 로마나 중세의 로마 카톨릭의 국가 위에 교회관, 근세에 와서 독일의 나치주의, 그리고 맑스와 레닌주의로 말미암는 유물론적 공산주의 국가 등은 사실상 정상적인 국제정신이나, 국제관계가 성립되지 못하였다. 그 이유는 저들은 모두 하나만의, 오직 하나만의 세계를 지향하는 패권주의, 이른바 단일국가 지상주의적 세계관을 추구했기 때문이다.그러나 세계 2차대전의 종식과 함께 이른바 데땅뜨 시대를 맞으면서 세계는 국가들 사이에 종교적,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독립성과 상호관련성의 필연성과 중요성을 느끼게 되고 보다 유효한 국제적 관계조성이 이루어져 가고 있다.현하, 한국에 있어서의 국제관계는 그 미묘성이 특이하게 나타나고 있다. 한국은 일본 식민통치하에서 받은 우리의 해방이 미, 소 양국이 개입된 타의적 국제관계가 연관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남북양단이라고 하는 국가적 비운을 맞게 되고, 떠한 이 비운은 이데올로기적 차이에서 성립된 이질적 대립관계를 가져왔다. 그것이 유물론적 공산주의 사상에 기초한 북한정부수립이고, 또한 자유 민주주의 사상에 기초한 남한의 정부수립안건이었다. 그 결과 북한은 구 소련과 국제적 동맹관계를 맺고, 지금 중공과도 그 관계성이 전례 없이 두터워가고 있다. 남한도 남한대로 미국과 국제적 동맹관계를 맺고, 자유민주주의를 국시로 하는 자유우방들과 깊은 유대관계를 맺고 온 것이다.현 정부가 들어서면서 이질적 이데올로기 시대의 혼선을 빚고 있다. 그 중의 하나가 ‘민족공조론’이다. 민족공조론의 사상적 배경은 민족주의에서 그 뿌리를 찾는다. 기독교적 입장에서 보는 민족주의는 사상상 반 기독주의다. 그것은 역사상에 나타난 유대주의이고, 독일의 나치주의이고, 일본의 군국주의 등이다.6*25동란의 남침은 이러한 민족주의를 넘어선 맑스와 레닌주의를 추종하는 무신론적 공산주의와 공산국가주의자들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의 민족공조론의 정체가 무엇인가? 북한이 국시를 민주주의나 민족주의로 바꾸었단 말인가?또한 현 정부는 동북아균형자론을 제창하고 있다. 원래 ‘균형’이란 ‘어느 한쪽으로 치우침이 없이 쭉 고름’이란 사전적 의미가 있다. 물리학적으로 균형이란 축(구심력)을 중심한 좌우의 무게를 기울임 없이 조정, 조율하는 의미이다. 이것이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국제적 관계성을 띠고 적용될 때 그 의미는 실로 복잡하다.폐일언하고 우리 정부(국가)가 과연 동북아 정세의 균형자로 자처할 수 있겠는가? 하는 문제이다. 과연 우리 정부가 미국과 일본과 중공과 러시아 사이에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으로 균형자의 축(구심력)이 될 수 있는 힘의 우위권에 있단 말인가? 우리 정부는 지금에 와서 한국의 동북아균형자론은 어디까지나 한미동맹관계의 굳건한 터전 아래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변질적 후퇴의 표현마저 하고 있으니 우스운 일이다. 위와 같은 두 류(민족공조론, 동북아균형자론)의 우론은 급기야 한미공맹관계와 자유우방국가와의 유대관계를 흐려놓음은 물론이고 국론분열의 양상마저 자아내고 있다.그리스도인들은 국가(정부)의 기원은 전대하시고 주권자이신 하나님께로 말미암는다고 믿는다. 그리고 국가권세의 원천이 하나님께로 말미암는다고 믿는다. 북한은 민족주의마저 뛰어넘어 맑스와 레닌주의 국가주의를 지향하면서 세계의 공산화를 위해 남침한 역사의 전범자라고 생각할 때, ‘민족공조론’이 참 우습게 여겨진다. 그러한 북한의 국가관은 하나도 변한게 없지 않는가?동북아균형자론이야 말로 한미동맹을 파기할 뿐 아니라 나아가 반미주의운동을 조장하는 결과를 낳게 될 것이다. 이로 말미암아 국론분열은 말할 것도 없고.무신론적인 유물론적 공산주의와 그 국가주의가 상존할 동안 민족공조론이나 동북아균형자론은 사실상 국가 위기를 초래하는 해와 공기를 어둡게 하는 연기가 되어 그 연기 가운데 나는 황충이가 되고 말 것이다.‘고려신학’ 2005년 제12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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