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戰犯者 김일성은 독립운동가 김일성 아니다”
“戰犯者 김일성은 독립운동가 김일성 아니다”
  • 미래한국
  • 승인 2005.07.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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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언-김허남 金許男 전 함북도민회장
▲ 김허남
필자는 1920년 함경북도 명천군 아간면 허의동 백상촌이란 조그마한 마을에서 태어났다. 용정(龍井)에서 중학교를 졸업한 후 길림성 명월군 도무거이 촌에서 소학교 교사로 만3년 간 근무하다가 해방되던 1945년에 고향인 허의 소학교로 전임해와 근무했다. 필자는 이곳에서 우리 민족에게 분단의 아픔을 준 김일성에 대한 이야기를 듣기 시작했다. 북간도 일대서 가장 존경받던 독립군 장군이애숭이 소련군 소좌로 나타나 시민들 어리둥절30대 애숭이 戰犯者 김일성 독립운동가로 변신독립군 장군의 허상 일순간 산산이 깨져“김일성이 아닌데” “입 꽉 다물고 있어” 그 당시 북간도 일대에 산재한 한국 사람들의 관심사와 분위기를 설명하기 위해서 과거의 삶을 밝히는 것이다.북간도에 살던 사람들은 드러내 놓고 내색은 않았지만 대부분 독립운동에 관심을 갖고 있었다. 도울 수 있는 일이면 무엇이든지 돕겠다는 마음가짐을 갖고 있었기에 독립운동가들의 동태에 관심이 많았다. 그리고 독립운동에 관한 이야기들이 입에서 입으로 널리 전해졌다.항일 전사 김일성 장군 및 소련군 환영 시민대회를 10월 14일 10시에 평양 모란봉 운동장에서 개최한다는 벽보가 나붙고 선전 삐라가 산골 동네까지 흩날렸다. 나는 만사를 뒤로 미루고 평양 시민대회에 참가하기로 작정했다. 함경북도에서 평양까지 교통과 숙식의 불편함을 감수하면서까지 평양 시민대회에 참가하기로 작정한 것은 내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다.나는 아주 어려서부터 내 나이 또래의 아이라면 누구나 그랬듯이 독립운동가들의 활약상에 관심을 가졌고 또 갖가지 풍문을 들으면서 자랐다. 특히 김일성 장군에 대한 것은 좀 남달랐다. 소학교 때는 김일성 장군이 백전 백승의 영웅적 인물로 부각되었고 때로는 도술마저 자유자재로 부리는 초능력자로 믿었고 또 흠모하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 당시 어린 우리들에게 존경받는 독립군 장군은 홍범도 장군, 김좌진 장군, 김일성 장군, 김구 선생이었다.그 당시 내가 4학년을 담임했는데 학생의 학부형 중 한 분이 여자 몸으로 김일성 부대에서 활동하다가 부대가 해체되니 이상하게도 일본군에 투항하여 협조한 여성이 있었다.그녀는 나와 동성동본이면서도 항렬도 같아 누님 아우로 호칭하면서 인간적인 정분과 교분을 쌓고 흉허물 없이 지냈다. 그녀가 김일성 부대의 실체에 관해 속 마음을 털어놓은 것은 거의 1년이 지난 후의 일이었다.그녀가 처음 김일성 부대에서 조국 독립을 위해 활동하게 된 동기는 아주 사소한 일이었다. 그의 오빠가 김일성 부대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그 부대에 오빠의 심부름으로 몇 차례 오고 가다가 활동에 참여하게 될 것이라 했다.“누님, 김일성 장군을 보신 적이 있습니까?”“봤어.”“연세는 얼마나 되셨습니까?”“정확히는 몰라, 아마 60은 조금 넘었을 거야. 그런데 김일성 장군이 어디 한 두 사람이어야지…” 그녀는 내 물음에 답하다가 말끝을 흐렸다. 나로선 무슨 뜻인지 몰라 다시 물었다.“그게 무슨 말입니까? 그럼 김일성 장군이 또 있단 말입니까?” 환영시민대회의 사회자가 긴장된 쇳소리를 내며 빠른 어조로 말했으나 군중들의 반응은 냉랭했다. 어정쩡한 박수 속에 사람들이 수군거렸다. 나로선 김일성 장군이 20대 후반이나 30대 초반이란 사실이 의외였다. 내 학부형의 말로는 60세가 넘었다고 해서 나도 그렇게 기대했는데 아주 새파란 젊은이가 나와서 내가 김일성이요 하니 할 말이 없었다. 내 우상이 와르르 무너졌다. 세상 온갖 풍상을 다 겪은 백발이 성성한 백전노장을 기대했는데 전혀 의외의 사람이 나섰으니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김일성 장군이라는 사람은 30대 초반에 165cm가 조금 넘게 보이는 키에 살집이 약간 붙었고 좀 작아 보이는 듯한 감색 양복을 입고 있었다.얼굴은 햇볕에 그을렸는지 검게 보였는데 감색 양복과 묘한 조화를 이루었다. 뒷머리를 버쩍 치켜 그 사람은 몸 어느 구석에서도 산전수전을 다 겪은 백전노장의 티를 찾아 볼 수가 없었다. 그런데다가 미리 써 가지고 나온 원고마저 제대로 소화하지 못한 채 더듬거리자 운동장에 모인 사람들은 한층 더 실망했다.
▲ ◇김정일은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에 자신의 유격대 활동 상상도를 그려 넣기까지 했다
나는 이 사건 이후 나보다 10여세 연장이고 9촌 숙부가 되는 김동철이라는 사람에게 김일성 장군의 정체에 대해 물었다.내가 그 사람에게 김일성 장군의 정체를 물은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그 연령이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1920년생이고 모란봉 운동장에 나타난 김일성은 1913년생이다. 그렇다면 나보다 7살이 더 많은 김일성이 그런 큰 독립활동을 할 수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설령 그렇다 해도 내가 소학교 1학년 땐 7~8세 정도였는데 그 때 당시의 김일성 나이가 14~15세 정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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