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인권을 외면하는 한국문학
북한인권을 외면하는 한국문학
  • 미래한국
  • 승인 2005.07.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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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하 (서울시립대 국문과 교수)
이동하 서울시립대 국문과 교수가 한국문학에서 북한인권을 다루지 않는 것에 대해 비판하는 입장의 글을 <시대정신> 여름호에 게재했다. 북한인권문제를 다루지 않는 이유에 대한 작가들이 할 수 있는 답변을 크게 여덟 가지 유형으로 설정, 이를 분석 비판하고 있다. 비단 문학 뿐 아니라 우리 사회에서 흔히 나올 수 있는 북한인권문제에 관해 잘못 알고 나올 수 있는 답변이기에 요약 정리해 소개한다. 기본적 인권을 진지하게 생각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우리 시대의 현실을 볼 때 참으로 절실한 고민을 야기하는 중요한 주제 가운데 하나로 북한문제를 들지 않을 수 없다.이런 생각을 가슴속에 품은 채 우리 시대의 한국 문학을 관찰해 보면 북한의 강제수용소에 수용되어 있는 사람들, 수백 만에 달하는 아사자와 그 가족들, 그리고 탈북자들―이런 사람들의 삶에 대하여 조금이이라도 진지한 관심을 표명한 본격 문학작품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어찌하여 한국의 문학인들은 그러한 북한 사람들의 삶에 대하여 철저한 침묵 혹은 외면으로 일관하고 있는 것일까? 이것은 한 번쯤 던져 볼 필요가 있는 질문임에 틀림없다. 이에 대한 여덟 가지 정도의 잘못된 유형의 답변을 설정하고 하나씩 검토해 보겠다.첫째, 북한주민의 인권을 문제 삼는 것은 남한의 역대 독재정권이 상투적으로 취해 온 태도이다. 독재정권 자신의 정당성 결여를 호도하기 위한 수단으로 북한주민의 인권문제를 들먹여 온 것이다. 우리 문학인들이 북한주민의 인권을 문제 삼는 것은 그러한 독재정권의 태도에 동조하는 일이 된다. 그들이 아예 존재하지도 않는 인권문제를 ‘날조’한 것이 아닌 한 독재정권 자체에 대한 비판의 문제와는 별도로 인간 본연의 양심이라는 차원에서 북한주민의 인권문제를 놓고 고민하며 그 개선을 촉구해야 한다는 당위는 엄연히 살아 있는 것이다. 더구나 수용자, 아사자, 탈북자의 문제는 모두 1990년대에 들어와서야 제기된 것이니 만큼, ‘남한의 독재정권’이라는 것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문제들이다.둘째, 남한에서 독재정권은 없어졌지만 그 독재정권과 이념적 방향을 같이하는 민간의 극우·파쇼 세력은 엄연히 살아 있다. 우리 문학인들이 북한 주민의 인권을 문제 삼는 것은 그러한 극우·파쇼 세력에게 도움을 주는 일이 되므로 바람직하지 않다. 이러한 대답 역시 타당한 것으로 성립될 수 없다. ‘독재정권과 이념적 방향을 같이하는 극우·파쇼 세력’이라는 것이 지금 남한에는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다. 설령 많은 자칭 진보주의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극우파 혹은 파시스트가 이 땅에 실제로 존재하고 있다 치더라도 인간 본연의 양심이라는 차원에서 볼 때 북한주민의 인권문제를 놓고 고민하며 그 개선을 촉구해야 한다는 당위는 극우파 혹은 파시스트의 존재 여부와는 별도로 엄연히 그것 자체의 생명을 지니고 살아 있는 것이다.셋째, 현재 우리는 통일이라는 과제를 달성하기 위하여 북한 당국과 적극적인 대화를 벌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주민의 인권문제를 거론하는 것은 북한 당국의 비위를 거스르는 일이다. 통일이라는 과제를 달성하려면 북한 당국의 비위를 거스르는 일을 자제해야 한다. 우리가 통일이라는 과제의 달성에 방해가 되는 행동을 할 수는 없지 않은가?정치인들이나 경제인들은 언제나 현실적인 효용의 문제를 첫 번째 자리에 놓고 생각해야 하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경우에 따라서는 위와 같은 투의 발언도 전략적인 고려의 산물로 이해되고 수용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문학인들조차 정치인들이나 경제인들을 흉내 내어 현실적인 효용만 앞세우는 태도로 나간다면 진정한 자유의 문제 진정한 인권의 문제가 현실적 효용에 대한 고려에 밀리어 짓밟힐 때 도대체 누가 인간 본연의 양심에 입각하여 그 문제들을 제기할 것인가.넷째, 많은 북한사람들이 강제수용소에 갇혀 있거나 굶어 죽었거나 생존의 위험을 느끼며 제3국을 떠도는 중이라고 하지만 그런 것을 소재로 삼아서 실제로 작품을 쓰는 데까지 나아가기에는, 구체적인 정보가 나에게 너무나 부족하다. 그러나 이에 대해 ‘당장 손에 잡히는 구체적인 정보가 부족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조금만 관심이 있다면, 한국까지 오는 데 성공한 탈북자들을 찾아가 만날 수 있다. 그런 사람들이 쓴 수기나 언론매체에서 그런 사람들을 인터뷰한 기사를 정독할 수도 있다. 연변에 가 볼 수도 있다. 탈북자들의 삶을 다큐멘터리 필름으로 기록한 사람들을 찾아가 면담하고 조력을 구할 수도 있다. 이와 같은 다양한 방법들 가운데 단 하나도 실천에 옮겨 보지 않은 채 덮어놓고 정보 부족만 탓하고 있으면 되는가’ 라고 반박할 수 있다. 특히 시인의 경우에는 ‘구체적인 정보’가 결코 풍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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