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존슨 대통령 - ‘깨끗한 은퇴’를 보여준 털털한 지도자
미국 존슨 대통령 - ‘깨끗한 은퇴’를 보여준 털털한 지도자
  • 미래한국
  • 승인 2002.08.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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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원 李東元
외무부 장관시절인 1965년 3월, 월남파병과 관련된 문제를 협상하기 위해 미국 길에 올랐다. 도착일인 18일저녁, 백악관을 방문해 존슨대통령을 만났다. 린든존슨(Johnson, Lyndon Baines, 1908.8.27 ~1973.1.22)대통령의 첫인상을 난 아직도 기억한다. 한마디로 ‘카우보이 역의 존웨인’을 연상시키는 전형적인 거구였다. 게다가 길게 잡아끄는 남부 특유의 말투와 느슨한 행동은 은근히 상대를 압박하는 마력이 있었다. 그러나 좋은 느낌은 오래가지 못했다. 인사를 마친 그가 곧 탁자에 그 긴 다리를 쭉 뻗어 올려놓는 게 아닌가.‘이렇게 무례할 수가…’나는 속으로 울화가 치밀었지만 큰 일을 두고 냉정해야 했다. 더구나 그는 미국의 대통령이 아닌가. 그래서 난 꾀를 냈다. 마침 탁자 위엔 접대용 ‘말보로’가 놓여 있었다. 나는 담배를 한 개비 빼손가락에 낀 채 입을 열었다. “각하, 실례하지만 불 좀 빌릴 수 있을까요.”다리를 쭉 뻗은 자세로 내 담배에 불을 붙이긴 너무 먼 거리. 할 수 없이 존슨은 자세를 고쳐 앉으며, 내게 라이터를 내밀었다. 혹 내 행동이 존슨의 심기를 건드렸을 지 몰라 그를 비행기를 태워주기로 했다. “각하, 사진으로만 보다 막상 실물을 대하니 생각보다 훨씬 복잡한 수식어가 필요할 정도로 멋지시군요.”“하하하, 고맙소, 사실 나도 잘 보이려고 노력하는데 기자들은 취미가 고약해, 꼭 묘한 포즈의 사진만 찍어대니 난들 당하겠소.”존슨은 의외로 털털하고 큰 인물이었다. 언제 묘한 분위기가 있었냐 싶도록 농담을 받으며 즐거워한다. 얘기를 꺼내기가 한결 부드러워졌다. “각하, 전 월남에서 곤경에 빠진 우방 미국을 돕기 위해 이곳에 왔습니다. 미국은 어떤 도움이 필요한지요?”존슨은 얼굴이 단호해지며 “단도직입적으로 월남파병입니다. 많으면 많을수록 좋습니다.”“그러나 각하, 월남전은 전세계적으로 반대 여론이 높고, 그건 한국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다 아직 한국은 미국을 도와줄 만큼 경제, 군사적 여건을 갖추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한미 양국은 필히 최선의 도움수를 찾아야 할겁니다.”“옳은 말이오. 동감입니다.”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를 쳤다. 내가 말을 이었다.“미국을 호랑이에 비유하면, 월맹은 산고양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이 둘은 원래부터 서로 가까이 하려 하질 않아 문젭니다. 더욱이 월맹은 미국을 요즘엔 종이호랑이로 보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때문에 미국은 하루 빨리 진짜 호랑이의 모습을 보여줘야 할겁니다.”“뼈아픈 지적이군요. 그러나 우리 미국은 일단 말려든 전쟁이니 만큼 반드시 이겨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소. 지난 달부터 북폭을 시작한 것도 그 이유 때문이지요. 또한 그렇기에 우린 한국에 군대파병을 요청한 겁니다.”어느새 존슨은 진지한 표정이었다. 나는 이때쯤 내 의도를 풀어놔야겠다고 생각했다. “각하. 그래서인데… 우린 몇 가지를 미국에 요청하는 바입니다. 우선 파병소요비용은 미국이 부담하고 물품의 제조와 수송은 우리가 맡았으면 합니다. 또 미국군과 한국군을 동등하게 대우해 주길 바랍니다. 덧붙여 한국군의 현대화와 경제발전에 도움을 주셨으면 합니다.”존슨은 “이 장관 말 충분히 알겠군요. 하긴 뒷짐지고 앉아 월남전을 비판이나 하는 일본에 이익이 돌아가선 안 되겠지요, 실무협상을 통해 한국측 요구사항을 최대한 받아들이겠소.”이 결과 한국의 기한부 현대화, 휴전선방위문제, 파월군의 처우개선 및 장비교체, 기배정된 1억 5천만달러의 AID차관 조기사용, 주월연합군 군수물자에 한국상품 우선구매 정책 등의 약속을 받아냈다. 이 내용을 기초로 후에 박정희 대통령과 존슨대통령은 공동성명을 채택했다. 1969년 존슨은 대통령 직에서 은퇴한 후 평범한 시민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자신이 졸업한 텍사스대학에서 학술 및 연구 문화사업에 기여하며 여생을 보냈다. 정계를 떠나도 다른 자리를 넘보는 한국의 상황에서 존슨의 멋진 은퇴는 큰 귀감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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