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자유 보장이 북한인권보호의 최우선”
“종교자유 보장이 북한인권보호의 최우선”
  • 미래한국
  • 승인 2005.08.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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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난민보호·북한인권활동가 릴레이인터뷰⑫ 이민복 기독탈북인연합 대표
▲ 이민복 기독탈북인연합대표
북한주민과 탈북난민들의 인권문제가 국제사회의 주요 이슈로 떠올랐다. 유엔인권위원회 등 국제인권기관과 국제언론은 물론이고 미국, 영국, 프랑스 등 국가들은 국가적 차원에서까지 북한인권문제 해결노력에 나서고 있다. 본지는 북한인권·탈북난민보호 활동가들을 릴레이인터뷰 형식으로 소개한다. 이번 순서는 기독탈북인연합의 이민복 대표- 기독탈북인연합의 취지와 주요활동내용은 인권 중에서도 가장 기본적인 부분이 종교의 자유이다. 인간의 본연에 종교성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종교자유에 대한 탄압은 가장 중대한 인권탄압이 된다. 북한주민들의 종교자유를 위해 북한의 복음화가 최우선 돼야 한다는 것이 우리의 생각이며 활동 목표이다. 이에 북한의 지하교인에 대한 지원과 직접선교, 전도풍선보내기, 탈북신앙인의 양성 등의 활동을 펼치고 있다.- 단체의 설립계기 및 시기는 단체의 전통은 1994년 모스크바에서 시작한 탈북난민협회로 거슬러 올라간다. 94년 벌목공 문제를 조선일보를 통해 특종화하여 국내외에서 처음으로 탈북민인권문제를 여론화시켰으며 개인적으로는 유엔고등판무관실(UNHCR)에 의해 최초로 난민지위를 인정받음으로써 탈북민 입국의 국제법적 길을 개척하기도 했다. 1998년부터는 국내 탈북민들을 규합 자유북한인협회의 이름으로 활동하면서 입국 탈북민에 대한 조사과정에서의 가혹행위 근절, 탈북민들의 해외여행 금지정책해제, 정착정책의 개선 등의 성과를 이뤘다. 그러다 2004년부터 북한복음화의 중요성을 절감하고 기독탈북인연합을 만들어 활동하게 된 것이다. - 북한선교는 어떻게 이뤄지나 북한에 대한 선교의 우선 원칙은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도록 하라’는 것이다. 공개적으로 하는 선교는 무자비하게 종교인들을 처형하는 북한체제 하에서 헛된 것일 수 밖에 없다. 또한 선교의 우선 대상을 잘 선정해야 하는데 북한주민, 제3국의 탈북민 그리고 국내에 입국한 탈북민들이 대상이다. 조선기독교연맹 등 현 북한정권을 대상으로 하는 선교는 불가능하며 막대한 헌금을 낭비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평양방문을 선교라고 착각하는 일부의 행태는 ‘헛된 꽹과리를 울리는 것’과 같다. - 북한주민들에 대한 직접선교도 가능한가 우리는 풍선보내기를 통해 그 일을 하고 있다. ‘바람따라 물결따라 복음전하자’라는 찬송가 273장의 가사와 같이 풍선에 전도지를 매달아 북한주민들에게 날려보낸다. 북한정권은 인민군을 총동원해도 바람 따라 전해지는 전도지는 막을 수 없다. 문제는 전도지의 내용인데 북한주민들이 저절로 관심을 가지도록 그들의 수준에 맞게 작성하면 된다. 또한 중국으로 나오는 탈북민들을 전도해 북한에 들여보내거나 조선족을 통해 자금 등 지원품과 말씀을 전달함으로써 북한주민들에 대한 직접선교를 할 수 있다. - 활동자금은 어떻게 조달하나 한국교회가 ‘북한교회’를 지원한다고 선전하고 있어 어려움이 있다. 하지만 그것은 99%가 북한주민이 아닌 조선그리스도교연맹 등을 통한 북한정권 지원으로 유용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잘못을 깨우치고 지하교인들에게 지원이 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 홍보책자나 CD 등을 만들어 배포하고 모금도 하고 있다. 풍선전도 등의 실질적인 북한선교는 큰 돈이 들어가지 않아도 관심만 있으면 가능하다. - 탈북과정에서 겪은 인권유린실태를 소개한다면 남한에 입국해 조사 받던 수 개월의 ‘무자유’ 기간까지 포함시킨다면 중국, 북한, 러시아, 한국 등 도합 4개국의 감옥에서 갇히는 경험을 했다. 그 경험은 죽음의 문턱에 선 가혹한 것이었지만 각국 감옥의 실태와 인권상황을 비교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북한은 ‘완벽한’ 공산주의국가이고 중국은 개혁 개방된 공산주의국가이다. 러시아는 공산주의에서 민주주의로 전환중인 국가이다. 한국은 자유민주주의국가이다. 체험해 보건대 이중 가장 인권상황이 열악한 나라는 유감스럽게도 ‘지상낙원’으로 믿었던 북한이었다. 나는 북한에서 ‘쌀은 곧 공산주의이다’라는 김일성의 교시를 받들어 농업연구를 평생과업으로 삼을 정도로 충실한 ‘정수분자’였다. 하지만 나의 감옥살이는 ‘식량난 해결은 개인농(農)을 통해 가능하다’는 편지를 김부자 앞으로 보낸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나는 개인농이 권력유지를 위한 김부자의 정치본성때문에 허용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고 어버이수령에 대한 우상화가 무너지면서 북한에서 살 의미를 잃고 탈북하게 됐던 것이다. - 탈북민·북한인권개선을 위한 과제는관건은 우리의 해결의지에 달려 있다고 본다. 인권의지를 새롭게 가지고 우리의 인권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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