道德的 等價怯의 함정
道德的 等價怯의 함정
  • 미래한국
  • 승인 2005.08.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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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가성’ 콤플렉스 극복해 좌파 당당히 맞서야
▲ 2005년 8월5일 바그다드에서 작전수행중인 미군 병사들
"6`25는 민족해방전쟁이고 미군은 침략군”이라고 한 강정구와 강희남 같은 좌파들의 언동은 새삼스러울 것이 없다. 놀라운 것이 있다면 이들이 공개적으로 거리낌 없이 그런 말을 한 것인데, 사실 그것도 예견된 일이다. 명색이 대한민국의 대통령이라는 김대중 씨가 2001년 10월1일 ‘국군의 날’ 기념식에서 ‘6`25 전쟁은 성공하지 못한 통일’이라고 했으니 어찌 두 강씨의 발언이 놀랄 일이겠는가.여기서 우리는 레이건 행정부의 유엔 주재 미국 대사이던 진 커크패트릭(Jean Kirkpatrick)이 미국과 소련간에 긴장이 팽팽하던 1984년 4월에 런던에서 행한 유명한 연설을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조지타운 대학 교수를 지낸 커크패트릭은 마르크스-레닌주의가 구사하는 중요한 전략의 하나가 ‘의미 조작’(semantic manipulation)이라면서, 공산주의자들은 미국 사회를 미국의 기본적 가치를 적용해서 공격해서 큰 성공을 거두었음을 지적했다. 소련과 이에 동조하는 좌파들은 미국의 국내 및 대외정책이 미국이 지향하는 민주주의와 평등원칙을 달성하는데 실패했다고 여론을 조작하는데 성공했다는 것이다. 소련의 이런 캠페인은 대단한 성공을 거두어서 제3세계 국가들은 물론이고 유럽과 미국의 언론인과 교수들마저 미국과 소련은 다를 것이 없다는 식의 ‘도덕적 정치적 대칭’(moral and political symmetry)이란 함정에 빠져 버렸다.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한 것과 미국이 그라나다를 침공한 것이 다를 것이 없다거나, 팔레스타인 테러조직의 테러와 이스라엘의 군사작전이나 다를 것이 없다는 주장이 공공연하게 나온 것도 모두 이러한 ‘도덕적 등가성’(moral equivalence)의 오류(誤謬)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커크패트릭은 말한다. 그리고 이런 결과로 미국의 정통성은 와해되었고, 미국과 소련은 ‘동등한 강대국’(superpower equivalence)으로 취급받게 되었다는 것이다. 커크패트릭은 미소 양국을 ‘수퍼 파워’라고 규정하는 것 자체가 미국과 소련이 갖고 있는 심각한 차별성을 부정하고 도덕 개념을 무시하는 것이라고 경고했다. 미소 냉전에서 미국은 승리했지만 ‘도덕적 등가성’의 망령은 여전히 기승을 부리고 있다. 2005년 1월 콜로라도 대학 교수인 워드 처칠은 9`11 테러로 세계무역센터에서 죽은 사람들은 미국의 재정금융을 움직여서 미국의 군사적 팽창을 조장한, 나치 전범 아돌프 아이히만 같은 존재라고 주장했다. 2005년 7월7일 런던에서 폭탄 테러가 발생하자 좌파 의원인 조지 갤러웨이는 영국이 이라크에 군대를 파견했기 때문에 런던 사람들이 대가를 치렀다고 말했다. 그런가 하면 인권단체라는 앰네스티 인터내셔날은 이라크의 아부 그라이브 포로수용소에서 일어난 몇몇 경비병의 인권유린 사례를 두고 스탈린과 폴포트의 대학살과 같다고 주장했다. 좌파논객 이영희의 ‘전환시대의 논리’가 1980년대 대학가를 풍미한 이래 ‘도덕적 등가성’은 우리나라에서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다. 노근리 사건을 두고 (사실 노근리 사건은 아직도 진상이 분명치 않다) 미군과 한국군이 북한군과 다를 것이 없다던가, 박정희 전두환 시절의 인권침해를 두고 남한과 북한이나 다를 것이 없다던가 하는 것도 모두 그런 식의 논리가 범하는 오류이다. 노무현 정권이 들어서서는 두 강씨 같이 북한이 더욱 민주적인 사회라고 대놓고 주장하는 사람이 판을 치게 되었다. 그런가하면 우리나라의 이른바 보수 내지는 우파라고 하는 사람들은 ‘도덕적 등가성’의 콤플렉스에 빠져 있다. 노근리 사건이 있었던 것 같고, 한국군이 베트남 전쟁에서 월남 민간인들을 죽게 한 일도 있었던 것 같고, 또 미군 장갑차가 한국 여학생들을 치어 죽였으니 피장파장 다 나쁜 놈들이다 하는 식의 무력감이 폭넓게 퍼져 있는 것이다. 하지만 커크패트릭이 지적하듯 바로 이것이 공산주의자들이 노리는 것이다. 노근리 사건이든, 장갑차 사건이든 간에 우리는 자유민주주의라는 높은 기준을 적용하고 있는 것인데, 어리석게도 우리 사회의 많은 사람들은 그런 기준 자체가 없는 북한과 우리를 대등하게 보고 할말을 못하고 있다. 맥아더 동상의 철거를 주장하는 시위대와 맥아더 동상을 사수를 주장하는 시위대가 몸싸움을 벌인 일이 최근에 있었다. 신문과 방송은 양측의 입장에 똑같은 비중을 두고 보도했다. ‘전환시대의 논리’를 읽고 자란 기자들은 그렇게 보도하는 것이 공정한 자세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도덕적 등가성’의 함정에 깊숙이 빠져서 선(善)과 악(?)을 동일한 비중으로 보도한 것이니, 공산주의자들의 전략이 우리나라에서 멋지게 성공했음을 잘 보여준다. 지금부터라도 우리가 ‘등가성’의 콤플렉스에서 빠져 나와 좌파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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