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시킹`으로 불리며 50만 그리스 집시들의 친구
`집시킹`으로 불리며 50만 그리스 집시들의 친구
  • 미래한국
  • 승인 2005.08.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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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영삼 그리스 집시 선교사
▲ 손영삼 그리스 집시 선교사
그리스 집시촌에 빵과 복음을 들고 나타난 190센티미터 장신의 한국인 선교사. 쉽게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데 집시들에겐 친근한 존재다. 외부인에게 배타적인 집시들 사이에서 ‘집시 킹(Gypsy King)’이라는 별명으로 불린다. 손영삼 선교사는 한국인 최초의 집시 선교사로 18년째 그리스에서 집시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있다. 원래 한국에서 목회하면서 유럽선교의 꿈을 가지고 있었다. 그의 방향을 바꾼 건 87년. 유럽선교를 위해 그리스에 체류하던 중이었다. 아내가 첫째 딸아이를 낳기 위해 무료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 집시들을 처음 만났다. 그들이 복음에 무지하다는 것을 알고 집시선교사로 방향을 바꾸고 집시에 대해 공부하기 시작했다.“집시는 인도북서부에 사는 아리안족의 후손입니다. 11세기부터 이동을 시작해서 지금까지 천년을 떠돌아다닌거죠” 전 세계에 집시종족은 4천만 명. 그 중 그리스에는 50만 명이 산다. “그리스정교가 국교로 지정되어있어 95%가 정교회신자입니다. 집시들에게 물어봐도 거의 대부분이 그리스정교를 믿는다고 대답합니다” 인도 힌두교의 뿌리를 가진 집시들은 어느 나라에 가든 그 나라의 종교를 받아들인다. 범신론의 영향이다. “그리스정교 자체가 박제화 되어있기 때문에 뜨거움이 없습니다. 그러다보니 집시들은 뭐가 기독교인지 잘 모릅니다. 그들에게 본질에서 벗어난 부분을 복음으로 바로잡아 주는 것이 저의 사역입니다”천막생활을 하며 떠도는 집시들에게 처음부터 그리스도를 전하면 받아들이기 어렵다. 손 선교사는 복음을 전하면서 구제, 교육, 의료 사역을 병행한다. 식료품을 사들고 집시들이 사는 천막촌을 찾아가는 일부터 시작했다. “처음에는 동양인 선교사에게 다들 적응하지 못했습니다. 한번 찾아가서 빵을 주고 돌아오고 그렇게 반복해서 가다보니 점점 경계심이 무너지고 ‘저 사람은 우리를 도와주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갖게 되더군요. 지금은 여기저기 들어가서 먹고 자고 할 정도로 가까워졌습니다”“선교한다고 아무데나 들어갔다가는 순교 당할지 모른다”고 할 만큼 아무나 자기 천막에 들어오는 것을 싫어하는 집시들도 손 선교사에게는 마음을 열게 된 것이다. 한국인 최초 집시선교사. 18년간 집시촌에서 천막교회 열어손 선교사가 개척한 집시교회는 매주 천막에서 열린다. 수확철마다 이동하는 집시촌을 따라 순회사역을 하고 있다. “집시들은 다산하기 때문에 보통 한 천막에 10명 넘는 가족이 삽니다. 열에서 열다섯 천막이 모인 집시촌을 찾아 가운데 천막을 치고 예배를 드립니다”집시교회에는 집시들과 동구권에서 내려온 난민들이 모인다. 예배 후에는 빵과 음료수를 나누어 준다. 손 선교사는 “우리 교회는 헌금시간이 없습니다. 헌금 드리면 다들 시험 들어서 안나올 겁니다”라며 웃는다. 한 끼 식사를 먹을 수 있다는 기쁨도 교회를 찾는 고단한 집시들에게 위로가 된다. 예배는 그리스어로 드리고, 평소에는 집시어로 대화한다. 이제는 그리스어도 집시어도 능숙해졌다. 지난 아테네올림픽 때 중계방송 자막 번역을 그가 맡았다. 한국에서 의원들이 방문하거나 무역협상을 하러 오면 통역도 그의 몫이다. “18일 잠자고 일어난 것 같은데 18년 세월이 지났습니다. 지금까지 하나님 은혜로 재미있게 해왔습니다”손 선교사는 힘들었던 일도 덤덤하게 말했지만 처음엔 집시들과의 문화적인 차이로 어려움을 겪었다. “집시어에는 감사라는 단어가 없습니다. 감사를 모르는 의식구조다보니 훔치고 사기치는 것을 비도덕적으로 생각하지 않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 선교사가 아닌 일반인으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부분도 있을 것입니다”언젠가는 집시교회 천막을 도난당한 적도 있다. 교회를 통째로 가져간 것이다. “사랑의 눈으로 바라보지 못하면 그때부터는 선교사로서 자격상실입니다. 그리스도처럼 다 내어주고 생명까지도 주겠다는 게 선교사인데 도둑맞을까봐 마음이 좁아지지 않기로 했습니다”“이제는 도난에 대해서는 초월했다”는 그는 이젠 도난을 당해도 “내가 바빠서 못 나누어 주니까 스스로 알아서 가져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스 선교를 시작한 후 만난 아내 이희경 선교사는 그의 든든한 동역자다. 만난지 2시간 만에 결혼을 약속했다는 이야기도 예사롭지 않다. 손 선교사 부부는 지금 5명의 아이들을 키우고 있다. 그 중 두 명은 집시 아이를 입양한 것이다. “정상적인 가정에서 자란 아이들도 사춘기 시절에 얼마나 많은 문제를 겪습니까. 하물며 들에서 뛰놀던 아이를 데려다 학교에 보내고 가르치려니 우여곡절이 많았습니다” 16년 전 입양한 아들 발란디스는 차를 훔쳐 가출하기도 하고, 손 선교사의 속을 어지간히 ?였다고. 지금은 결혼도 하고 신학교에서 목회자의 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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