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동포 해방은 시대적 사명"
"북한동포 해방은 시대적 사명"
  • 미래한국
  • 승인 2005.08.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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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관희 前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원 인터뷰...재향군인회 `코나스` 보도
▲ 홍관희 前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원
"정동영, `한미공조`아닌 `민족공조` 택해" "북한은 평화적으로 핵을 개발할 의사가 없는 나라다. 북한의 `평화적 핵 활동`발언은 앞으로도 핵 개발을 계속하겠다는 의도다. 이를 두고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북한의 평화적 핵 개발을 허용해야 한다는 발언을 했다. 이는 `유사시` 琅 정권이 한미공조가 아닌 민족공조로 미국이 아닌 북한의 편을 들겠다는 의도로 봐야 한다." 학자의 생활은 남의 눈에도 별로 멋이 있어 보이지 않는다. 젊어서 화려하고 활달한 기질을 뽐내던 사람도 학자 생활 30년 만 하면 초췌한 영감으로 변한다. 그러나 학자의 모습이 남의 눈에 멋있어 보일 때가 있다. 바로 그의 학문이 한갓 전문적 지식에 머물지 않고, 세상과 인간을 바라보는 깊은 통찰이 그를 확고한 세계관 또는 인생관의 고지로 안내했을 경우다. 특히 여러 사람들의 비난을 두려워하지 않고, 소신대로 말하고 행동하는 학자의 모습은 감동을 자아낸다. 백만 대군을 지휘해 적진으로 돌진하는 장군의 모습도 멋이 있지만, 총칼 앞에서도 자신의 소신을 굽히지 않는 학자의 용기는 더욱 멋있다. 이 같은 인물이 바로 홍관희(洲官憙·52) 전(前)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원이다. 홍 박사는 올해 5월과 6월 보수성향의 월간지 `민족정론`에 `6·15선언의 반(反)민족성과 무효화를 위한 과제`라는 제목의 논문을 기고해 "6.15 선언의 무효화와 당위성을 국민들에게 인식시키고, 이를 확산·보편화하기 위한 범국민운동을 전개해 나가야 한다"고 주장한바 있다. 이에 정권최고위층은 그동안 여러 채널을 통해 불쾌감을 표시했으며 이것이 직접적으로 홍 박사에 대한 사퇴 압력으로 이어져, 그는 최근 통일연구원에 사직서를 제출했다. 그는 지난 1일 오전 정부종합청사 1층 로비에서 가진 퇴임 기자회견에서 "사직을 결심하게 된 배경은 연구와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현(琅) 조직체계 하에서는 더 이상 전문가로서 본연의 임무와 역할을 다 할 수 없다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는 또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국책연구기관에서 이뤄지는 정책연구는 5년마다 교체되는 특정 정부를 위한 것이 아니라 국민전체의 입장에서 행해져야 하는 것이 상식이지만 이는 실제에서 통용되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연구원 사퇴 후 인터넷을 통해 북한 핵문제, 주한미군 재배치 문제와 관련해 활발한 의견을 제시하고 있는 홍 박사는 12일 <코나스>와의 인터뷰에서 최근 교착 상태에 빠진 6자 회담과 관련 "북한은 (절대) 핵을 포기할 의사가 없는 나라"라고 밝힌 뒤 "북한 핵은 대남 적화전략의 핵심요건으로 남한에 대한 군사적 우위 확보를 포함해 김정일 정권의 생존 문제와 직결되어 있다."고 주장했다. 홍 박사는 최근 한창 진행되고 있는 주한미군 재배치 및 감축 문제와 관련해 "주한미군 감축 및 재배치의 원인은 한국의 반미(反美) 감정 때문"이라고 지적한 뒤 "만일 2007년 또 다시 좌파 정권이 들어서고 그럴듯한 이유를 들어 한국 정부가 미국 정부에 주한미군의 철수를 공식 요청할 가능성도 있다"고 우려했다. 퇴임 후 현재 `안보전략연구소장`(www.khhong.com)·`미래한국신문` 주필로 활동하고 있는 홍관희 박사는 향후 활동 계획과 관련해 "한민족의 자유민주통일과 질곡(桎梏)으로부터의 북한동포의 해방이야말로 우리에게 주어진 시대적 사명이라고 확신하고 있다"며 "향후 자유수호*애국운동의 큰 물결에 합류하여 이 나라 역사와 민족을 다시 일으키는 위대한 과업에 헌신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다음은 홍관희 `안보전략연구소장`과의 일문일답-지난 1994년 10월 미봉(彌縫)된 채 끝났던 제1차 북핵 위기와 현재 진행되고 잇는 북핵 위기는 어떤 차이가 있는가? 94년 1차 핵 위기 당시는 북한 핵 개발의 초기 단계로 미국이나 한국에서 이에 대한 정확한 분석이 가능했다. 따라서 미국은 영변 핵 개발단지에 대한 `정밀 폭격`(surgical strike)이 가능했다. 이 때문에 당시 북한은 미국의 협상요구에 굴복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현재 북한의 핵 개발은 과거처럼 `플루토늄방식`이 아닌 `우라늄방식`을 병행하고 있기 때문에 이에 대한 정확한 위치 포착이 어렵다. 특히 당시는 김영삼 대통령이 미국의 대북 선제 공격을 반대하긴 했으나 한미동맹 자체는 매우 확고한 시기였다. 그러나 현재는 한미동맹이 심하게 균열 되어있는 상태로 북한의 핵 시설에 대한 정밀 폭격도 불가능하게 됐다. 이외에도 한국 정부가 북한에 대한 초기 제재에도 반대하고 있다. 이 때문에 미국은 효과적으로 북한을 다루기 어렵게 되어 버렸다. 바로 이것이 제1차 핵 위기와 현재 진행되고 있는 핵 위기의 차이점이다. -북한은 지난 2월 공식적인 핵무기 보유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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