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교육·봉사 활동에 一生 바쳐
선교·교육·봉사 활동에 一生 바쳐
  • 미래한국
  • 승인 2005.08.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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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우승 서울 YMCA 이사장 (온양 한올중 ·고등학교 이사장)
▲ 박우승 서울 YMCA 이사장
日 동경 한국 YMCA 내에 독립기념관 건립 목표고희(古稀)를 넘긴 연령에도 불구하고 왕성한 선교·교육·봉사활동으로 억척 인생을 산 하나님의 일꾼이 있다. 박우승 서울YMCA이사장(71)은 거의 매일같이 서울-온양을 오간다. 자신이 설립한 온양 한올중·고교와 서울 종로 2가에 자리잡은 서울YMCA의 모든 업무를 책임져야 하기 때문에 매일매일 피곤에 지친 몸을 기차에 맡긴다.이런 힘든 가운데에도 그는 지인들과 협력해 지금까지 5개의 교회를 개척하는 등 왕성한 외부활동도 벌이고 있다. 목숨을 다할 때까지 하나님 사업을 하겠다는 게 그의 목표다.고교 시절 ▲농촌 교육(계몽)운동 ▲어려운 사람을 돕겠다는 사회봉사운동 ▲기독교 선교운동에 일생을 바치겠다는 꿈을 품은 박 이사장은 농촌봉사를 위해 자신의 고향 예산을 찾은 연세대 신학과 학생들을 만난다. 그들이 다니는 학과에 입학하면 꿈을 달성할 수 있다고 판단, 1953년 대학에 진학했다.대학시절, 중학교 설립 참여농촌 교육 운동에 관심이 많던 그는 연세대 신학과 2학년 때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농지를 부여군 홍산면 인명중학교 설립에 내놓았다. 농촌 어린이들의 교육이 절실했기 때문이다. 그 농지에서 나오던 소출을 팔아 학교등록금을 충당하던 박 이사장은 그 땅을 기증한 후 당장 다음 학기부터 학교등록금이 걱정이었다.그런데 신기하게도 그 시기에 연세대에서 현재의 근로장학금과 비슷한 자조장학회 제도가 생겼고 박 이사장을 포함한 200여 명의 학생은 대학교재를 만들고 교내 매점에서 책을 팔며 학비를 충당했다. 이때 백낙준 연세대 총장과 연을 맺게 됐다.그는 교내 기독학생회(SCA) 서클에 참여하고, 또한 교내서클인 사회사업연구회를 창설해서 고아원, 부랑아수용소, 빈민굴 등 어렵게 사는 이웃을 찾아가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군대 최초 信友會 조직대학졸업과 함께 군 입대를 한 그는 당시 논산 훈련소 측이 훈련병에게 교회를 가는 것을 금지하자 기독교인인 훈련병들을 모아 신우회를 최초로 창설했다. 이것이 우리 나라 군대 최초의 신우회라고 한다.한발 더 나아가 훈련병들에게 신앙강좌를 해 줘야겠다는 마음에 그는 당시 군목을 설득시킨 후 백낙준 총장에게 훈련소에 와서 신앙강좌를 해 달라는 편지를 썼다. 백 총장은 그의 편지를 보고 한태동 신학과 교수를 내려보내 훈련소 차원에서 3일간 신앙강좌가 열리기도 했다.그는 제대 후 서울 하왕십리 금호동에 위치한 부랑아수용소 ‘천우육영’에서 무보수 직책인 총무로 일하면서 빈민들을 위해 봉사하고 폐병환자를 돌보다가 폐병에 걸려 죽을 고비를 넘기기도 했다.靑年(?) 長老로 피선되기도이런 어려움 속에서도 선교운동에 나서 지인들과 함께 청량리역 뒤에 위치한 샛별교회(신성교회)를 개척했다. 이런 신앙적인 노력과 기도로 그는 28세란 젊은 나이에 교회 장로로 피선되기도 했다. 이후 3곳의 교회 개척에도 앞장 선 박 이사장은 현재도 불신자들을 모으고 물질적인 지원을 통해 또 하나의 교회 개척을 지원하고 있다.그는 대학 시절의 학교설립을 생각하며 지난 1970년에는 자신 고향 근처인 온양에 삼화중학교가 폐교된다는 소식을 접하고 그 학교를 인수, 한올중·고교를 설립해 지금까지도 학교 수장으로서 인재 양성에 앞장서고 있다. 교육·봉사·선교 指導者 양성 꿈지난 1966년 YMCA총회 서기로 발을 들여놓은 그는 현재 이사장이 되기까지 YMCA 발전을 위해 이바지해 왔다. 특히 교육·봉사·선교 운동에 관심이 많은 그는 “교육, 봉사, 선교 운동 등을 이끌 수 있는 ‘YMCA운동’ 지도자를 양성하는 서울YMCA대학원 대학교를 설립하는 것과 동경에 있는 한국YMCA 건물 안에 독립기념관을 세우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1903년 동경에 세워진 한국YMCA가 한일합방 후 2·8독립선언의 중심지였고, 3·1운동의 중심인물인 33인 중 9명이 YMCA와 관련이 있는 인물”이라고 소개한 박 이사장은 “이 같은 의미를 지닌 독립기념관을 동경YMCA 내에 세우면 재일한국인들에게도 귀감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한편 박 이사장은 지난 1966년 몇 명의 친구들과 함께 초원봉사회를 조직해 청소년 가장들에게 등록금을 지원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 사업이 씨가 되어 현재는 초원봉사회에 전국에서 수 천 명의 회원이 동참하고 있으며, 독거노인 지원 등 봉사대상도 계속 확대하고 있다. 그밖에 ‘초아(超我)의 봉사’를 모토로 하는 ‘로타리 3620지구’ 총재를 역임하면서 연해주 고려인 돕기 활동을 펼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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