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재정권 걷어내는 희망이 되자
독재정권 걷어내는 희망이 되자
  • 미래한국
  • 승인 2005.08.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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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필의 평양공연에 부쳐...대북정책은 북한 민주화와 궤를 같이 해야
역시 조용필은 힘이 넘쳤다. 은하계, 태양계, 지구, 한반도, 그리고 평양으로 좁혀지는 영상이 펼쳐질 때, 그러한 무대연출을 접해본 적 없었을 평양 관객들은 순간 어리둥절한 듯 했다. 이윽고 조명이 조용필에게 모아지고 영화 <실미도>에 삽입된, “어두운 도시에는 아픔이 떠있고 / 진실의 눈 속에는 고통이 있고”라는 가사로 시작되는 ‘태양의 눈’이 울려 퍼졌다. 관객들의 어떠한 동요도 인정하지 않겠다는 듯, 조용필은 1980년대 대한민국을 뒤흔들었던 ‘단발머리’와 ‘못찾겠다 꾀꼬리’를 연달아 불러 완전히 그 자리에 얼어붙게 만들었다. 경직된 관객들의 태도에 약간 당황했다고, 공연 후 조용필은 말했다. 평양관객 휘어잡은 조용필의 노래그러나 역시 조용필의 서정성은 위대했다. ‘친구’ ‘허공’ ‘돌아와야 부산항에’ 등 그 동안 북한 주민들이 숨죽이며 듣고, 남몰래 가사를 외우고, 조용히 흥얼거렸던 노래로써 얼어붙은 가슴을 강타했다. 놀란 얼굴 근육이 풀리기 시작했다. 뻣뻣한 어깨와 허리가 들썩이기 시작했다. 의자 밑에서 발을 까딱거리며 박자를 맞추었던 사람도 있었으리라. 조용필은 또한 구슬펐다. “가수 생활 37년에 이렇게 떨려본 적이 없다”며 대(?)가수다운 겸손을 보이고, “박수 한번 쳐주세요” 하면서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관객들을 웃기고 울렸다. 북한 노래 100여 곡을 들어보고 골랐다는 ‘자장가’와 ‘험난한 풍파’를 구성지게 이어갔고, ‘봉숭아’와 ‘황성옛터’에 다다르자 급기야 눈물을 훔치는 이들도 있었다.관객들의 ‘앙코르’에 다시 무대에 오른 조용필은 ‘홀로 아리랑’으로 희망을 전했다. 그날 집으로 돌아가면서 “아리랑 아리랑 홀로 아리랑”을 흥얼거렸을 사람들이 많았으리라. 지금 평양 곳곳에, 조용필의 노래 테잎을 구하려는 은밀하고도 바쁜 흐름이 거세게 일렁이고 있으리라. 필자 개인이 조용필을 좋아하기도 하거니와, 북한 주민들이 좋아하는 조용필의 노래가 평양 한복판에서 울려퍼진다고 생각하니, 더구나 그것이 북한 텔레비전을 통해 전국에 중계된다고 하니, 며칠 전부터 가슴은 설?다. 그것을 기다리는 평양관객들의 마음인들 오죽했을까. 그리고, ‘역시’라는 표현을 남발하지만, 역시 조용필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독재정권과 야합하는 것이 후퇴이고 타락조용필의 평양공연이 있던 날 열린우리당 전병헌 대변인은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의 대북정책인 햇볕.평화번영 정책이 우리 사회, 문화 곳곳의 분야에서 가시화된 성과를 보여주고 있다”면서 그 사례로 조용필의 공연과 민주노동당의 조선사회민주당 초청 방북을 들었다. 이런 감격적인 이야기를 전하는 글에 굳이 인상 찡그릴 이야기를 하고 싶지는 않지만, 전 대변인의 말은 일견 옳고 일견 그르다. 필자는 햇볕정책, 평화번영정책이라고 불리는 ‘대북포용정책’을 반대하지 않는다. 다만 그것은 원칙을 지키고 북한민주화운동과 함께 나아가야 가운데 ‘정도껏’ 이루어져야 한다. 궁극적인 목표는 북한의 민주화이며, 대북포용정책 역시 그러한 큰 그림 아래 실행되어야 한다. 그러나 지금껏 대북포용정책은, 북한민주화에 기여하는 측면이 ‘앞으로 20보’라면 북한민주화에 역행하는 측면이 ‘뒤로 50보’이다. 결과적으로 대북포용정책은 북한 주민의 인권을 실현하고 체제를 민주화하는데 30보 정도 거역하고 있다. 조용필의 평양 공연 성사가 ‘앞으로 30보’라면 민노당의 사민당 초청 방북 같은 것은 ‘뒤로 70~80보’다. 각종 남북공동행사가 ‘앞으로 10~20보’라면 거기에 일방적인 대가를 지불해주는 것은 ‘뒤로 40~50보’다. 이산가족 상봉이 ‘앞으로 30~40보’라면 “만경대 정신”이나 “6.25는 통일전쟁” 발언은 ‘뒤로 70~80보’다. 비록 선발된 사람들이라 하더라도 북한 주민들에게 남한 방문의 기회를 확대토록 하는 것이 ‘앞으로 10~20보’라면 김정일을 “통크고 결단력있는 지도자”라고 추켜 세우면서 아양떠는 기자회견을 했던 통일부장관은 ‘뒤로 80~90보’ 후퇴시킨 장본인이다. 어느 것이 전진이고 어느 것이 후퇴인가. 그 기준은 무엇인가. 칠흑 같은 어둠 속에, 접촉의 수단이 용이치 않은 북한 주민들을 대상으로 어떻게든 외부세계의 실정을 알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것이 전진이다. 민주화의 희망과 용기를 심어주고 생의 활력을 불어넣어주는 것이 바로 전진이다. 반면, 독재정권의 목숨줄을 연장해주고, 체제유지의 기반을 만들어주고, 그에 야합하고, 부역하고, 아부하고, 연대하는 것이 후퇴다. 타락이다. 대북포용정책, 북한민주화에 초점을 맞춰야어찌보면 정부의 정책은 어느 정도 후퇴적 성격이 많을 수도 있다. 요는, 그것을 최소화해야 하며, 정부가 약간 후퇴한 영역을 민간단체와 국제사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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