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리 당신이 그만 두시죠”
“차라리 당신이 그만 두시죠”
  • 미래한국
  • 승인 2005.08.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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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복 북한민주화포럼 상임공동대표<출처: 기자 조갑제의 세상>
노무현 대통령의 갈지자 횡보(橫步)가 황당한 지경을 벗어나고 있다. 노 대통령의 소위 ‘지역구도(地域構圖)’ 운운 발언은 그가 자랑하는 그의 현란한 화술로 휘갑을 쳐서 듣는 사람들을 어지럽게 만들고 있는 부분이 있기는 하지만 거기에 감추어진 그의 의도는 간단해 보인다. 결국 “‘여소야대(與小野?)’ 국회를 가지고는 대통령을 하지 못 하겠다”는 비명이고, 그러니까 “‘여소야대’ 국회의 출현을 막을 수 있는 내용의 선거제도를 어떻게 해서든지 만들어 내라”는 주문이며, 정치권의 반응이 이에 부정적이거나 소극적일 때는 “제2의 탄핵 파동을 일으켜서 거리의 힘으로라도 이것을 정치권에 강요해 달라”는 요구를 가지고 그의 대통령직을 걸면서 정치권과 국민을 협박하고 선동하는 것 외에 다른 아무 것도 아니다. 그러나, 민주국가에서 이 같은 노 대통령의 행보는 결코 용납될 수 없는 궤도이탈이다. ‘결과’가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방법’이 정당해야 하는 것이 민주주의의 본질이다. ‘결과’가 아무리 좋더라도 ‘방법’이 정당하지 않은 일은 하지 않는 것이 민주주의인 것이다. 노 대통령은 헌법 제69조에 의거하여 취임식 석상에서 “헌법을 준수”할 것을 ‘선서’한 사람이다. 그러나, 지금 소위 ‘연정(聯政)’ 문제를 가지고 그가 보여주고 있는 행보는 누가 보아도 헌법을 무시하고 법의 테두리 밖에서 그의 ‘의지’를 정치권과 국민들에게 강요하고 있는 것이다.민주국가라면, 더구나 ‘권력’에 관한 문제일 경우, 모든 일은 법이 정한 방법과 법이 허용하는 테두리 안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그것이 민주주의의 필수 요소인 ‘due process’(합법적 절차)이다. ‘due process’가 부정되는 곳에는 민주주의는 없는 것이다. 노 대통령이 말하는 ‘임기단축’이니, ‘권력이양’이니 하는 것들은 우리 헌법체제 안에서는 법에 없는 일들이다. 그는 일본의 고이즈미 수상과 독일의 슈뢰더 총리가 ‘국회해산’의 승부수(勝負手)로 난국을 정면 돌파하는 것을 부러워하고 이들의 ‘승부수’를 ‘모방(模倣)’하려 하는 것 같지만 내각책임제의 일본과 독일에서는 고이즈미도 슈뢰더도 법이 허용하는 일을 하는 것이지 노 대통령처럼 법에 없는 일을 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을 ‘모방’하려면 노 대통령은 우리나라의 정치제도가 헌법개정을 통해 내각책임제로 바뀔 때까지 기다리는 ‘인내’의 ‘미덕’을 대가로 지불해야 하는 것이다. 노 대통령의 ‘말’을 들어 보면, 그는 그가 말하는 ‘지역구도’ 타파만 되면 그가 불평하는 모든 상황이 일거에 운산무소(雲山霧?)되는 것처럼 사람들로 하여금 믿게 만드는 데 혼신의 힘을 쏟아 붓고 있다. 그러나, 사람들이 그렇게 믿게 된다면 그것은 한마디로 ‘오해’에 불과하다. 문제는 그러한 내용의 ‘지역구도’ 타파 방안이 과연 있을 수 있느냐는 것이다. 어쩌면, 그의 머리 속에는 “이러한 내용의 선거법이면 내가 말하는 지역구도 타파가 이루어질 수 있겠다”라는 ‘구상(構惻)’이 자리하고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에게 아무리 그러한 ‘구상’이 있더라도 만약 그가 헌법과 관련 법에 의거하여 허용되지 않은 방법으로 그 ‘구상’을 관철하려 든다면 그는 그렇게 함으로써 아돌프 히틀러나 조세프 스탈린, 또는 그가 “존경하는 인물” 중의 하나로 꼽았던 마오쩌둥(毛澤東)이 갔던 길을 가겠다는 것 외에 다름이 아니다.그는, 말로는, 한나라당을 상대로 ‘대연정’을 운운 하면서 선거제도 개선을 위한 ‘여야협상’을 거론하고 있다. 그러나, 그의 이 말 역시 한국 특유의 정치문화와 현실을 완전히 도외시한 무리한 착상(着惻)이다. 동서고금(東西古今)의 민주주의 역사는 국회의원 선거구의 획정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웅변해 주고 있다. 우리나라의 선거사도 예외가 아니다. 선거구의 획정 문제는 그만큼 각 정당은 물론 정치인 개개인의 이해관계뿐 아니라 선거구민들의 이해관계가 복잡다기(複雜夢岐)하게 얽혀 있기 때문에 이것을 획일적으로, 노 대통령이 원하는 내용으로, 이루어지게 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수없이 반복되었던 우리나라의 선거법 개정사(改正史)가 바로 이것을 웅변해 주고 있다.사실은, 엄격하게 말한다면, ‘지역구도’가 되었건, ‘여소야대’가 되었건, 그러한 현상이 민주주의적 방법으로 실시된 선거의 결과라면 그 결과 역시 ‘국민의 선택’이기 때문에 여기에 승복하는 것이 민주주의이기도 하다. 최근의 미국 대통령 선거와 의회 선거 결과를 보더라도 우리는 ‘지역구도’와 ‘여소야대’를 발견한다. 그래도 미국의 민주주의는 모범적으로 운영된다. 왜냐 하면, 거기에는 ‘승복’의 문화가 있고 ‘due process’의 문화가 있기 때문이다. ‘지역구도’와 ‘여소야대’ 속에서도 미국 정치는 정상적으로, 원만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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