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엔 민주주의가 없다"
"군대엔 민주주의가 없다"
  • 미래한국
  • 승인 2005.09.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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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기고/軍을 대상으로 한 革命的 정치실험을 우려한다 (월간조선 인터넷) <출처 : 기자 조갑제의 세상>
軍의 존재의의가 전쟁을 전제로 한 것임을 안다면 軍사법제도 개편은 즉각 중지되어야 한다. 「평양」을 즐겁게 하고 우리나라에 큰 죄를 짓는 일이기 때문이다. 閔丙敦 前 陸士교장1935년 서울 출생. 휘문高·陸士·陸?·국방대학원 졸업. 육사 전임 강사, 고려? 강사(독어독문학). 사단장, 육군정보참모부장, 특전사령관, 陸士 교장 역임.司改姜의 혁명적 정치실험月刊朝鮮 2005년 7월호에 「軍法의 목적은 지휘권 옹호와 軍紀확립이다」라는 제하에 軍사법제도 개편案을 비판했던 이 老兵이 다시 한 번 펜을 들어 軍사법제도 개편을 즉각 중지하라고 요구한다. 대통령직속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회」의 저돌성에 「걱정 半(반), 분노 半」의 심정으로….「아는 것만큼 보인다」는 말도 있지만, 지식과 경륜이 부족하거나 어떤 연유로 恰(한)이 맺혀 있는 「혁명가들」의 눈을 통한 피상적 관찰로 뒤엎거나 뜯어고친 법과 제도가, 실은 오랜 세월을 두고 시행착오도 겪으며 여러 차례 수정을 거쳐 오늘에 이른, 그리고 존재 이유가 분명히 있는 것들임을 당신들은 아는가?그들의 혁명적 정치실험이 잘못되었음을 스스로 깨닫기까지 오랜 세월을 요하고, 그동안 국민의 고통과 손실이 너무도 컸다는 것이 현대사의 교훈임을 알아야 한다.1917년, 러시아 절대?政을 폭력혁명으로 무너뜨리고 볼셰비키 정권이 들어선 후 공산주의자들은 「계급을 타파하여 모든 인민이 평등하고 평화롭게 사는 세상을 만든다」는 그들의 이상을 실현하는 일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다. 그 혁명 초기에 귀족들의 「莊園(장원)」을 몰수하는 일에「붉은군대」는 힘겨운 싸움을 했고, 적지 않은 희생을 치렀다.귀족들이나 교회들이 가지고 있던 莊園은 그 자체가 하나의 경제단위로서 사실상 그들의 領地(영지)나 마찬가지였는데, 이를 혁명정부(공산당)가 몰수하겠다고 하자 그들이 저항했던 것이다. 이를 평정하고 莊園을 몰수하는 싸움에서 「붉은군대」가 苦戰(고전)했던 것은, 그 귀족들의 私兵(사병)집단들이 강했기 때문이 아니라 「붉은군대」가 내부적으로 군기가 문란하여 제대로 전투력을 발휘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평등주의자(공산주의자)들이 가장 표본적 계급사회인 군대를 개혁하여 민주화한답시고 군대의 계급제도를 없애 버림으로써 소련의 「붉은군대」가 20세기 최초의 계급 없는 군대가 되었고, 그리하여 하급자(부하)들이 어떤 상관과도 「계급장 떼고 맞짱 뜰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되었다.이로써 공산주의자들은 「계급 없는 세상, 만인이 평등한 사회를 만들겠다」는 그들의 이상을 군대에서까지 실현하기는 하였으나, 그 결과 상관이 부하 앞에서 눈치를 보아야 할 만큼 지휘관의 권한(지휘권)이 약화되면서 부대를 제대로 지휘할 수 없어 부대가 전투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임무수행도 어렵게 되었다.스탈린이 軍계급제도를 부활한 까닭바로 이렇게 「민주화」된 군대, 상관이 부하 앞에서 눈치를 보아야 하는 군대의 실상과 그 문제점을 정확히 인식하고 있던 스탈린은 1924년 레닌 사망 후 정권을 잡으면서, 국방을 위해서는 강한 군대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스탈린은 1935년에 「붉은군대 현대화 계획」을 내걸고, 그 일환으로 군대에 계급제도를 부활시켰다. 비록 일부의 저항으로 여러 해가 걸린 작업이긴 했지만.그 후로 「붉은군대」는 오히려 위계질서가 더 엄격하고 군기가 엄정하여 강한 통제력을 가진 군대로 바뀌어 제2차 세계대전 때 나치 독일의 침공을 받고도 처절한 혈전 끝에 그들의 나라 소련을 지켜 낼 수 있었다.이렇게 해서 소련 공산주의자들은 「민주화」되어 지휘권이 약화된 군대는 유사시 그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므로 지휘권을 강화하고 위계질서를 확립해야 한다는 교훈을 그들의 실험을 통하여 얻게 되었던 것이다.20세기 두 번째 계급 없는 군대는 中共軍이었다. 國共內戰(국공내전)에서 중국대륙을 석권하고 1949년 10월1일 중화인민공화국의 출범을 선포한 중국공산당은 그때까지의 「인민전쟁 전략」을 뛰어넘어 그들의 군대(紅軍)를 현대화하겠다는 정책을 내놓았다. 그 구체적 내용 중의 하나가 군대에 계급제도를 도입하겠다는 것이었다.그러나 계급제도만은 공산당 내부에서 상당한 논란과 저항에 부닥쳐 몇 차례 존폐의 우여곡절을 겪다가(특히 10년간의 문화혁명기에) 뒤늦게 1988년 8월1일에야 비로소 도입이 확정되었다. 그나마도 최고 계급 중장(그들 계급으로는 상장)까지만으로.레닌그라드 攻防戰의 교훈공산주의 宗主國(종주국)인 소련과 중국의 공산주의자들까지도 군대에는 민주주의도 평등도 없음을 결국 인정하고 말았다. 그들의 그 「터무니없이 고귀한」 이상에도 불구하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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