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천보전투, ‘김일성’이라는 이름 널리 알린계기
보천보전투, ‘김일성’이라는 이름 널리 알린계기
  • 미래한국
  • 승인 2002.08.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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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천보전투(普失堡戰鬪)는 백두산 일대 조선과 중국 간의 국경지역인 장백을 중심으로 항일투쟁활동을 벌이던전설적인 김일성 장군이 이끌었던 병력중 90명이 1937년 6월 4일 박달·박금철 등이 이끄는 갑산군 내 ‘조국광복회’소속 조직원들과 함께 압록강을 넘어 함경북도 혜산진에서 20㎞ 떨어진 보천보 일대를 점령한 사건이다. 그들은 일제치하의 경찰주재소·면사무소·우체국 등의 관공서 등을 공격하고 ‘조선민중에게 알린다’‘조국광복회 10대 강령’ 등의 포고문과 격문을 살포했다. 이때 일경 7명이 죽었으며 여러 명의 중상자가 발생했다. 일제탄압이 극심했던 시기에 일어난 이 사건은 ‘동아일보’ ‘조선일보’등에 크게 보도되어 조선인의 사기를 진작시키고 김일성이라는 이름을 세상에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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