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의 666
김정일의 666
  • 미래한국
  • 승인 2005.10.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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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와 김정일의 숙명적 대결
뒤에 기독교의 탄압자라는 ?名을 얻었지만 金日成은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김형직은 1911년 미국의 기독교 단체가 만든 미션 스쿨 숭실중학교에 입학하였다. 어머니 강반석은 창덕학교 교장 강돈욱 장로의 둘째 딸이었다. 반석이란 이름도 성경(베드로가 盤石이란 뜻)에서 따온 것이다. 강반석은 고향인 칠골교회의 집사로 봉직했다. 金日成은 어린 시절 어머니를 따라 매주 교회에 나갔다. 북한 정권을, 주체사상이란 종교를 믿는 신도집단으로 해석하여 신도수 기준 세계 제10위의 종교단체로 올린 통계가 있다. 김일성을 聖父, 金正日을 聖子, 주체사상을 聖靈, 10계명을 「유일사상 10대 원칙」으로 해석하는 신학자도 있다. 초대 대통령 李承晩 박사는 원래 전주 李씨 양녕대군(태종의 장자로서 세종대왕에게 왕위를 양보한 사람)의 후손으로서 끈질기게 과거 시험에 도전, 낙방을 거듭한 사람이다. 갑오경장으로 과거 시험이 없어지자 좌절해 있을 때 친구의 소개로 배재학당에 나가면서 미국인 선교사들과 접촉하기 시작했다. 李承晩이 수구세력에서 급진 개화세력으로 바뀌는 매개 역할을 기독교가 수행한 것이다. 남북한의 두 지도자의 공통점은 여기서 끝난다. 김일성은 만주로 가서 공산주의와 만나고 李承晩은 태평양을 건너 미국에 가서 자유민주주의와 만나기 때문이다. 1945년 해방 직후 두 사람은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귀국했다. 김일성은 증오의 과학(공산주의)으로 무장한 스탈린의 꼭두각시가 되어 돌아왔다. 李承晩은 사랑의 종교(기독교)에 바탕을 둔 인권의 이념(자유민주주의)을 신념화한 지도자가 되어 돌아왔다. 李박사는 조국을 기독교 사상에 기반을 둔 민주국가로 만드는 꿈을 지녔다. 김일성은 인간생명을 하나의 물건으로 보는 유물사상에 젖어 학살의 시대를 열고 외세를 끌어들여 동족을 치는 민족반역의 남침전쟁을 준비한다. 1948년 5월31일 제헌 국회 제1차 회의, 즉 개원식에서 임시의장으로 추대된 李承晩은 李允榮 의원을 불러내어 하나님께 기도해달라고 부탁한다. 대한민국은 기도로 시작한 나라가 되었다. 그 뒤 한반도는 두 개의 이념, 두 개의 종교 대결 시대로 들어갔다. 공산주의 對 자유민주주의, 주체광신교 對 기독교, 즉 증오와 사랑의 대결시대가 열린 것이다. 많은 한국의 신학자들은 김일성 김정일을 `사탄의 세력`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두 사람은 하나님을 참칭하고 기독교인들을 학살, 말살했기 때문이다. 성경적으로도 사탄의 세력은 제거 대상이지 설득이나 용서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신약성경 마가복음 9장40절은 `우리를 반대하지 않는 자는 우리를 위하는 자니라`라고 했고, 누가복음 11장23절은 `나와 함께 아니하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요`라고 했다. 나는 이를 `대한민국에 반대하지 않는 사람은 다 우리 편이다. 그러나 김정일 정권을 제거하고 동포들을 구출해야 하는 싸움에 함께 하지 않는 자는 하나님을 반대하는 자이다`라고 해석해보기도 한다. 요한계시록 13장엔 이런 귀절이 있다. <저가 모든 자, 즉 작은 자나 큰 자나 부자나 빈궁한 자나 자유한 자나 종들로 하여금 그 오른손에나 이마에 표를 받게 하고 누구든지 이 표를 가진 자 외에는 매매를 못하게 하니 이 표는 짐승의 이름이나 그 이름의 數라 세어보니 666이더라> 金正日의 생일은 2월16일, 「216절」이라 줄여 부른다. 6×6×6=216이 아닌가. 1998년 7월에 치러진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선거 때 金正日은 666구역에서 당선되었다. 김정일은 성경을 경멸하는 장난을 친 것이든지 사탄의 제자됨을 자임한 셈이다. 오늘날 한국의 기독교는 규모나 영향력 면에서 主?종교가 되었다. 한국 기독교의 숙명적 과제는 증오의 이념으로 무장한 주체광신도들과 대결하여 북한동포들을 구원하는 것일 수밖에 없다. 역사적으로도 주체광신도와 한국기독교는 死?을 건 투쟁을 계속해왔다. 한국 기독교는 지난 100년간 한국사회가 발전해가는 흐름의 한복판에 있었다. 기독교는 개화기의 등불이었고, 독립운동시대의 중심세력이었다(3.1 독립선언 서명자 33인중 16명이 기독교인이었다). 기독교는 또 李承晩을 중심으로 뭉쳐 대한민국의 건국과 護國을 주도했고 산업화 시기에는 근면하고 정직한 자본주의의 윤리를 제공했다. 민주화투쟁期에 기독교는 야당, 학생, 언론과 함께 4대 중심 세력중 하나였다. 다가오는 자유통일기에 기독교는 김정일 제거-북한동포 구원의 신학적 사명을 다해야 할 것이다. 이미 기독교인들이 중심이 되어 탈북자 구출, 북한인권 문제 제기에 앞장서고 있다. 기독교 신도가 학살자 김정일에 분노하지 않고 맞아죽고 굶어죽어가는 북한동포들을 동정하지 않는다면 그런 사람은 국민도 아니고 기독교인도 아니다. 우리는 북한동포와 대한민국을 사랑하기 때문에 김정일과 그 하수인들을 미워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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