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을 사랑한 老신사 대천덕 신부
한국을 사랑한 老신사 대천덕 신부
  • 미래한국
  • 승인 2002.08.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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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과 기도 강조 겸손·사랑·청빈 실천
▲ 대천덕 신부 영결식이 8일 오전 서울 종로 성공회 대성당에서 치러졌다
진정한 신앙은 자기행복만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남을 위해 기도하는 것입니다”한국인보다 한국을 더 사랑해 이 땅에 뼈를 묻은 故 대천덕(戴失德·84·미국명 루벤 아처 토리) 신부가 우리에게 남긴 말이다. 평생 사랑과 겸손, 청빈을 실천했던 대신부는 15세 때 미 장로교 선교사인 아버지를 따라 한국에 왔고 평양 외국인학교에서 고등학교 과정을 마쳤다. 할아버지가 설립한 무디성경학교와 하버드대·프린스턴 신학대학원에서 수학, 12년간의 안정된 목회를 버리고 불혹의 나이에 폐허 속에 허덕이는 한국 땅을 찾아왔다. 1965년, 성도 열두 명(여섯 명은 건설노동자, 여섯 명은 농부)과 함께 해발 920m의 강원도 태백 산골에서 예수원을 시작, 건축비는 커녕 생활비가 없어 며칠 동안 호박을 먹으며 지내야 할만큼 어려운 시절을 보냈다. 대천덕 신부는 무엇보다도 더 이상 공동체 생활을 못하겠다고 떠나는 사람들 때문에 가슴이 아팠지만 “그 사람이 눈앞에서 멀어질 즈음 주님은 또 다른 사람을 보내주셨다”고 생전에 말했다. 범죄소년, 깡패, 목사지원자, 많이 배운 자, 못 배운 자, 시골사람, 도시사람… 다양한 사람들이 찾아왔다.이제 연간 일만여 명이 찾아오는 예수원은 교파와 종파를 떠나 모든 사람들을 포용하는 기도의 집이 되었다. 하루 3시간의 기도, 7시간의 노동, 3시간의 침묵을 지키며 매일 점심식사전 30분과 월요일 저녁 2시간은 남을 위해서만 기도한다. 전 세계 난민들, 수감자, 수재민, 정치지도자들을 위해…. 예수원 홈페이지에는 영면소식을 들은 사람들의 숱한 추모 글로 가득하다. “생전에 한 번도 뵌 적이 없는데 왜 이렇게 눈물이 나는지 모르겠다” “당신을 바라보면 주님이 생각난다” “당신의 발자취를 따라 가겠습니다” 아프리카, 중동, 미국에서도 대천덕 신부의 삶을 회고하며 안타까움을 전한다.한국을 ‘우리나라’라고 부르고 한민족과 교회를 위해 몸부림치며 기도했던 대천덕 신부, 그 분은 진정한 사랑과 섬김이 무엇인지를 알고 몸소 실천했던 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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