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려가는 것이 탈북여성들의 숙명”
“팔려가는 것이 탈북여성들의 숙명”
  • 미래한국
  • 승인 2005.10.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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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리NK...권정현 특파원 hyj@dailynk.com
굶주림을 피해 중국으로 탈출한 탈북자들 가운데는 여성들이 많다. 지금 넓은 중국대륙에는 청춘을 잃어버린 북한여성들의 한 맺힌 눈물이 뿌려져 있다. 다년간의 중국생활에 그들은 서서히 중국인화 되어가고 있다. 그런데 무엇보다 큰 문제는 그들로부터 태어난 자녀들의 교육문제다. “우리애가 조선말을 못할까봐 걱정이다.” 중국 헤이룽장(黑龍江)성 무단장(牧丹江)시에 살고 있는 박은주(21)씨는 이렇게 걱정을 털어놓는다. 지금부터 6년 전, 굶어 돌아가신 아버지를 묻고 어머니와 함께 두만강을 건넌 은주의 올해 나이는 21살. 같이 사는 중국인과 사이에 아들도 하나 낳았다. 아들은 임시 호구(戶口)에 이름을 올렸지만, 그의 어머니 은주씨는 아직 국적도 없다. 다음은 은주씨와의 일문일답.- 여자가 중국에 오면 꼭 시집가야 하나? 팔려가는 것은 조선(북한) 여자에게 있어 숙명(宿命)이다. 듣기 좋게 ‘시집’간다고 하지만, 사실은 돈에 팔리는 것이다. 조선에서 듣던 바대로 중국에 오니 배고픈 걱정은 없다. 대신 자기 몸 하나 지키기가 어렵다. 여자들이 물건처럼 팔리는 것은 중국에 여자가 귀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불법이니, 운명에 맡길 수밖에 없다. - 중국에는 혼자 들어왔는가? 처음에는 어머니와 함께 왕칭(汪靑)현의 한 산골에서 17살까지 살았다. 조선족 주인은 내가 17살 되던 해, 우리 모녀가 함께 있으면 붙들리기 쉽다며 나를 딴 데로 보내지 않으면 어머니까지 (집에서) 나가라고 말했다. 당시 중국공안은 탈북자들을 고용하는 중국집의 경우 한 사람당 5천원(한화 80만원)의 벌금을 물렸다. 며칠 후 우리를 처음 그 집에 소개했던 중국사람이 다시 찾아왔다. 엄마에게 “안쪽(중국 내륙지방)에 딸의 일자리를 구해두었다”며 나를 데려가려고 했다. 엄마는 눈물을 흘리며 “은주야, 우리 조금만 더 고생하자”며 말을 잇지 못했다. 철없던 나는 오히려 “내가 먼저 자리를 잡고 엄마를 데리러 오겠다”며 헤어지게 되었다.- 처음 시집간 곳은 어떤 곳이었는가? 그 중국인을 따라 하얼빈(哈爾濱)을 지나 흑룡강성에 갔다. 사흘 밤 사흘 낮, 기차와 버스를 갈아타며 도착한 곳은 수염이 시커멓게 난 서른이 넘은 한족(漢族) 사람의 집이었다. 연변에서 조선족만 보아온 나는 중국말로 벙글거리는 그 한족이 무서웠다. 한족과 안내자는 중국말로 무슨 말을 주고받더니, 그 날로 그곳을 떠나갔다. 그 사람은 서른이 되도록 장가를 가보지 못한 홀아비였다. - 팔렸다는 걸 알면 왜 도망하지 않았나? 그날 난 무서워 하루 종일 방구석에서 오돌오돌 떨었다. 중국사람이 먹을 것을 들고 와서 뭔가 말했지만, 무슨 말인지 몰랐다. 도망치자 해도 3일 동안 무슨 차를 타고 왔는지조차 생각나지 않았다. 설사 어떤 차라고 해도 무슨 소용이 있는가. 말도 모르고 돈도 한푼 없는 신세인데…….그 한족은 하루 종일 내 곁을 떠나지 않았고, 키를 넘는 담장은 도망칠 엄두도 못 내게 했다. 닭둥지처럼 갇힌 마을에서 뛰어야 벼룩신세였다. 훗날 조선족이 와서 말해주어서야 내가 중국돈 만원(한화 130만원)에 팔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 폭행은 하지 않던가? 쪼그리고 앉은 채 잠이 들어 얼마나 지났을까, 갑자기 온몸이 허공에 뜨는 느낌과 함께 뭔가 몸을 더듬는 촉감에 나는 “으악!”하고 소리쳤다. “안돼요, 엄마야!”하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주먹으로 벽을 두드렸다. 한족 주인이 쪽잠이 든 내가 불쌍해 눕히려고 했던 것이다. 다행히 그 한족은 나를 때리고 행패까지는 하지 않았다. 그 사람은 담배만 뻑뻑 빨며, 방 한가운데서 밤을 지샜고 나는 한숨도 자지 못하고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몸은 바짝 여위고, 두 눈은 퉁퉁 부어있었다. - 지금도 그 한족과 살고 있는가? 다음날, 이웃에 살고 있는 조선족 아줌마 한 명이 왔다. 말이 통하지 않으니 인근의 조선족을 통역으로 청해온 것이다. 조선족 아줌마는 불쌍한 눈길로 나를 바라보며 “어린애가 팔려왔구나”고 혀를 찼다.“팔려오다니요?” 난 억장이 막혔다. “아줌마, 난 열일곱 살밖에 안됐어요. 무서워요!” 나는 아줌마의 발에 동동 매달려 사정했다. 지금 내 맘을 알아줄 사람은 이 아줌마밖에 없어 보였다. 아줌마도 내가 팔려왔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 밖에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이다. 어딜 가서 돈 만원을 얻어오겠는가. 그 후 기회를 봐서 도망치자고 했던 것이 차일피일 미루어져 지금은 마음을 붙이고 산다. 작년에는 아들애도 낳았다.탈북 여성들은 헤이룽장, 산둥(山東), 후난(湖南)성 등 내륙지방은 물론 멀리는 남쪽 광둥(廣東)성까지 팔려가기 때문에 이제 연변지역에서 탈북자들의 숫자를 추정하기가 어렵다. 지금도 어머니가 보고 싶어 밤이면 눈시울을 적신다는 은주씨. 몇 년이 지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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