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하지만 행동으로 실천했던 젊은 의인 장세환
조용하지만 행동으로 실천했던 젊은 의인 장세환
  • 미래한국
  • 승인 2002.08.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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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의 죽음은 우리사회에 하나님이 주신 선물
▲ 지난달 23일 고대 안암병원에 마련된 장세환씨의 빈소를 후배 학생들이 찾아 조의를 표하고 있다
“내 생명 조국과 같이 하려고 나 여기 왔노라”(이은상의 시 ‘그대 왜 거기 가 섰나’중)지난 7월 22일 서울 성북구 안암동 고려대 교우회관 앞길에서 소매치기를 잡으려 길을 건너다 승합차에 치여 숨을 거둔 장세환(26·고대 행정4)씨의 수첩에 적혀 있던 글귀다.행정고시를 준비해 오던 그의 의로운 죽음과 의사자 선정, 장학재단 설립과 같은 이슈가 보도되며 고(故) 장세환씨는 유명해졌다. 하지만 고대 도서관에서 공부하는 학생이면 그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만큼 장씨는 유명했었다.작은 키에 커다란 더블백과 같은 가방을 메고 가끔은 선글라스와 ROTC 장교용 제식 칼을 차고 다녔던 적도 있으면서도 특이했던 그의 언행 때문이었다.그러나 그의 이러한 언행과 특이한 모습은 누구에게 보이기 위한 쇼맨십이 아니었다. 친구 손기훈(27·고대농생물대학원)씨는 “세환이는 삼풍백화점 붕괴 당시 사고현장에서 보름간이나 밤을 새며 구조작업을 했지만 가까운 친구조차 뒤늦게 알 정도로 말없이 행동으로 실천하는 청년이었다”며 고인에 대한 오해에 안타까워했다.장씨의 빈소에 찾아왔던 많은 그의 친구들과 인척들도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실제로 행동으로 옮기는 의협심이 강한 친구”였다고 입을 모았다.이런 진실한 그의 모습이었기에 드문 범죄도 아닌 새벽시간의 소매치기를 보고 택시를 타고 범인을 쫓다 무심한 승합차에 유명을 달리한 것이다.세환씨의 죽음을 가족들이 받아들이기에는 아직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무역업을 하는 아버지 장기효(60)씨는 “동생들에게 야단을 못 칠 정도로 여린 구석이 있는 아들이었다”며 “선한 성격이라 친구가 특별이 많고 불쌍한 사람들을 보면 눈물을 흘리는 아들의 모습이 선하다”고 덧붙였다.어머니의 아들에 대한 애잔함은 주위 사람들의 마음을 더욱 애타게했다.사고 뒤 식음을 전폐하고 매일 아침 성당의 새벽 미사와 저녁 미사를 드리며 슬픔을 달래고 있는 어머니 허지희(53)씨는 “하나님의 계획하심과 그 뜻이 선하심을 믿을 뿐”이라며 “아들의 죽음은 우리 가족뿐만아니라 사회에 작은 희생의 선물을 주고 갔다”고 소리없이 흐르는 눈물을 애써 감추려했다. 세환씨의 의로웠던 짧은 생을 지켜보면서 가족들과 그를 알던 교우들의 삶은 변화되고 있다. 장씨의 동생 장석환씨는 “도서관에서 나오며 씩 웃는 형의 맑은 눈과 순수한 모습이 기억해 남는다”며 “부정적으로 보던 세상에 대한 편견을 접고 도움이 필요한 곳에 몸을 아끼지 않겠다”고 말했다. 친구 김태진(26·무직)씨는 “네가 의인이 아니라 내 옆에 있는 친구였으면 좋겠다”며 “네가 사랑한 조국에 대한 몫까지 열심히 살아 기쁘게 만나겠다”고 덧붙였다. 이수현씨에 이어 또 한명의 동문을 잃은 고려대 자유게시판에는 그동안 자신의 개인적이고 이기적이었던 삶을 반성하며 이제는 우리라는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겠다는 글들이 많이 올라와 있다.심심치 않게 보도되는 부패와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는 공직자들의 모습과 불의를 보아도 제몸만 사리는 세상에서 그의 죽음은 많은 사람들을 부끄럽게 한다.자기 책임을 다하며 남을 먼저 배려하고 불의를 보면 바로잡으려 애쓰는 정신이 확산돼 아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기를 바란다는 가족들의 말은 이 시대를 향한 외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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