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 ‘정치’ 올림픽, 최후의 승자는?
평창 ‘정치’ 올림픽, 최후의 승자는?
  • 한정석 미래한국 편집위원
  • 승인 2018.01.15 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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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의도는 한미관계 분열, 北이 주도권 행사하려 들 것,

“북한은 국제스포츠 행사 때 평화에 기여했다.” 지난 해 12월 20일 문재인 대통령이 KTX 경강선 시승식 중 CNN과 인터뷰에서 했던 말이다. 첫 보도에서는 이 언급이 삭제되었다가 이후 공개되면서 논란이 됐다.

북한이 정말 국제스포츠 행사 때 평화에 기여했던가. 북한 정권은 서울올림픽 방해 공작 목적으로 1987년 대한항공 폭발 테러를 가해 115명이 사망했다.

또 1986년에는 서울아시안게임 개막을 1주일 앞두고 중동 테러조직을 사주한 김포공항 폭발 테러를 가해 5명이 숨지고 30여 명이 다쳤다. 2002년 6월 서해 NLL에서 벌어진 제2연평해전은 한일 월드컵이 열리고 있던 시기였다. 2014 인천아시안게임을 앞두고는 북한은 두 차례 미사일을 발사했다.

그렇다면 문재인 대통령의 기억에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올림픽이 시작된 그리스에는 ‘레테의 강’이라는 신화가 있다. 망자가 명계(冥界)로 가면서 레테의 강물을 한 모금씩 마시게 되는데, 강물을 마신 망자는 과거의 모든 기억을 깨끗이 지우고 전생의 번뇌를 잊게 된다는 것.

문재인 대통령은 그런 레테의 강물을 마신 것일까. 그렇다면 문 대통령은 망자의 길을 가고 있다는 이야기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해석보다, 문재인 대통령이 평창올림픽을 한반도 평화의 제전으로 만들고 싶은 그 간절한 소망으로 인해 기억에 편집을 일으켰다고 해석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문제는 그런 소망이 더 위험하다는 것이다. 美국무부 한국과장을 지낸 데이비드 스트로브 세종연구소-LS 펠로우는 북한이 이번 회담의 주도권을 잡을 공산이 크다는 입장을 내놨다.

북한이 핵무력 완성 주장을 바탕으로 대화 의제 역시 정하는 상황이 될 것이라는 설명이다.

스트로브 펠로우는 미국 자유의소리방송(VOA)과의 인터뷰에서 “이번 회담은 문재인 정부의 제의로 이뤄진 것이고 이는 전임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의 산물”이라고 전제하면서 “한국이 핵문제 해결에 진전이 없음에도 북한과의 교류를 계속 확대하려 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한반도 전문가인 래리 닉시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연구위원은 “북한이 이번 대화에서 미.한 군사훈련의 완전한 중단을 요구할 것”으로 내다봤다.

“변할 것은 하나도 없다”

이러한 북한의 의도를 가장 면밀하게 주시하고 분석하는 쪽은 일본이다. 일본 내 한국통과 북한 전문가들은 대체로 김정은의 평창올림픽 참가를 ‘한미관계에 쐐기를 박으려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무토 마사토시(武藤正敏) 전 주한 특명전권대사는 1월 9일 일본의 유력한 시사전문지 <다이아몬드> 온라인 판에서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는 결코 북한의 핵 보유를 용인하지 않고 이를 전제로 한 대화에 응할 수 없다는 입장”임을 상기시킨 후, “그러나 문재인 대통령은 2018년 동계 올림픽을 계기로 북한과의 대화를 모색하고 있으며, 이에 주목한 북한이 한미관계 흔들기를 걸어온 것”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그러한 배경으로 무토 전 대사는 “김정은이 신년사에서 평창올림픽의 성공을 기원한다고 하면서도, 그 성공의 조건으로 한미 연합훈련 중단을 요구한 점”을 지적했다. 이러한 북한의 ‘흔들기’ 전략은 이미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 때 유감없이 발휘된 바 있다.

대회 폐회식 당시, 북한은 ‘실세 3인방’이라던 황병서 인민군 총정치국장, 최룡해 노동당 비서, 김양건 당 통일전선부장을 갑자기 파견했다. 이에 우리 정부에서는 김관진 국가안보실장과 유길재 통일부 장관 등이 공항에 마중 나가 남북 대화에 대한 기대가 단번에 높아졌다.

실제로 남북 간 초고위급 접촉 재개에도 합의했다. 그러나 북한 일행의 방문 직후, 북한은 서해 북방 한계선 (NLL)에서 우리 함정에 사격을 가해 왔으며 비무장지대(DMZ)에서 사격을 실시했다.

그리고는 국내 민간단체의 대북 전단지 살포를 문제 삼아 고위급 접촉을 일방적으로 백지화하고 돌아갔다. 한편 다른 일각에서는 이번 군사훈련 연기를 계기로 북한 핵·미사일 실험과 한미 연합군사훈련을 동시에 중단하는 이른바 ‘쌍중단’에 대한 진지한 검토를 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브루킹스연구소의 마이클 오핸론 선임연구원은 ‘쌍중단’의 일부 내용을 지지한다고 미국자유의방송(VOA)과의 인터뷰에서 밝혔다. 북한의 핵과 미사일 프로그램의 검증 가능한 동결을 전제로 군사훈련을 축소할 수 있다는 것.

프랭크 자누지 맨스필드재단 대표는 “훈련 연기 결정은 매우 긍정적인 진전”이라며 “미·한 동맹은 앞으로 비무장지대(DMZ)에서의 훈련을 축소하고 더 방어적인 훈련에 집중해 북한과 신뢰를 쌓아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러한 관점들을 종합해보면 이번 평창올림픽은 국제정치 올림픽이 되어 버린 셈이다. 한국, 미국, 북한은 모두 각각의 한반도 주도권을 놓고 경쟁을 벌이고 있다. 누가 최후의 승자가 될 것인가. 다만 우리는 지금으로부터 약 2000년 전, 그리스에서 열렸던 한 올림픽 대회를 기억할 필요가 있다.

지난 2002부산아시안게임 때 북한이 파견한 미녀응원단이 인공기를 흔들며 응원하고 있다.
지난 2002부산아시안게임 때 북한이 파견한 미녀응원단이 인공기를 흔들며 응원하고 있다.
남한, 北  주도권에 말릴 듯

AD 67년 로마 황제 네로는 500명이 넘는 로마 군인들과 전차를 이끌고 그리스로 넘어가 그해 올림픽에 출전했다. 네로는 대부분 종목에서 우승했으며 그의 머리에는 올림픽의 승자에게 헌사되는 월계수관이 바쳐졌다.

오늘 우리가 기억하는 네로 황제의 월계수관은 여기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 때 심판관들은 무려 1808개에 달하는 상을 네로에게 수여했다.

어떻게 가능했을까. 로마 황제와 겨뤄 이긴다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했다. 선수들은 알아서 기었다. 심지어 이런 경기도 있었다.

네로는 10명이 참가하는 전차 경기에 출전했으나 중간에 굴러 떨어졌다. 수치심이 들었던 네로는 경기를 포기했다. 하지만 심판관들의 의견은 네로가 우승자였다. 이유는 기상천외했다.

‘전차경기는 전차를 소유한 이에게만 출전이 주어진다’는 유권해석을 통해, 유일하게 자기 전차를 몰았던 네로 황제만이 이 경기의 정당한 출전자가 되었기 때문이다.

2018년 2월 우리는 평창에서 다시 한 번 기상천외한 올림픽 경기를 보게 될 것 같다. 올림픽 경기를 주관하는 IOC는 핵무기로 미국과 한국을 위협하는 천하의 불한당 김정은을 위해 모든 레드카펫을 깔아줬다.

출전 경비는 물론, 출전 자격이 안 되는 북한 빙상 선수들을 출전시키기 위해 IOC는 브라질 리우올림픽 당시 난민 올림픽 팀의 사례를 들어 ‘특별 출전권’을 부여하겠다고 말했다.

북한 선수들이 난민이라는 이 기상천외한 해석은 네로의 전차 우승 심판을 보는 것 같다. 물론, 출전비도 없는 북한 선수들이니 이해하지 못할 바도 아니다.

문제는 소위 국제평화 전문가들의 비현실적 해설들이다. 이들은 북한의 평창올림픽 출전에 ‘대화(對話)’라는 수식어들 동원했다.

하지만 국제사회의 그러한 대화 중재 노력은 북한으로 하여금 ‘서울 불바다’라거나, ‘미제 원쑤들에게 불벼락’과 같은 대화(大火) 노름으로 치닫게 만들었던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다를까. 김정은은 2018년 신년사에서 평창올림픽 대회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남조선에서 머지않아 열리는 겨울철 올림픽 경기대회에 대해 말한다면, 그것은 민족의 위상을 과시하는 좋은 계기로 될 것이며 우리는 대회가 성과적으로 개최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한 핏줄을 나눈 겨레로서 동족의 경사를 같이 기뻐하고 서로 도와주는 것은 응당한 일입니다. 우리는 앞으로도 민족자주의 기치를 높이 들고 우리민족끼리 해결해 나갈 것이며 민족의 단합된 힘으로 내외 반통일 세력의 책동을 짓부시고 조국통일의 새 역사를 써 나갈 것입니다’ (2018.1.1 김정은 신년사 중)

김정은은 ‘대한민국의 평창 올림픽의 성공을 기원한다’고 말했다. 또 ‘동족의 경사를 기뻐하고 서로 도와주는 것은 응당한 일’이라고도 했다. 그렇다면 북한의 대남전략이 대결에서 화해로 수정되었다는 것일까.

미국의 유력한 보수주의 싱크탱크 헤리티지연구소의 한반도 전문 수석연구원인 브루스 클링너는 최근 평창올림픽에 대한 북한 입장을 분석하는 한 논평에서 “표범이 갑자기 무늬를 바꿨다고 표범이 아니라는 생각은 위험하다”고 경고했다.

‘범은 사냥할 때 발톱을 감춘다’는 한국 속담을 인용하면서 브루스 클링너는 “같은 동물이라면 그 동물에는 부드러운 털과 여전히 날카로운 발톱이 동시에 존재한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충고했다.(본지 13페이지 기사)

미 중앙정보국(CIA)이 4년 전 해제한 기밀문서에는 북한이 1988년 서울올림픽을 방해하기 위해 당시 남한의 반체제 운동단체와 대학생들마저 동원해 사회 불안을 조성했던 기록들이 존재한다.

CIA가 1988년 서울올림픽 개막 두 달여 전인 7월 11일 작성한 기밀 문건에 따르면 북한 정권은 올림픽 개최를 앞둔 한국 정부의 고민을 극대화하고 북한의 체면 손상을 최소화하기 위해 한국을 “위험한 장소”로 묘사하는 선전 수위를 높였다고 지적했다.

후천성면역결핍증인 AIDS와 범죄가 서울에 범람해 위험하다며 참가 의지를 밝힌 국가들에 결정을 번복할 것을 설득하려 했다고도 기록되어 있다. 동시에 국내 반체제 단체들과 학생 운동권 단체들에게는 ‘민족분단을 막기 위한 올림픽 공동 개최’를 요구할 것을 지시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실제로 대학 운동권 그룹들은 당시 판문점에서 북한과 6·10 남북학생회담을 추진하며 올림픽 공동 개최를 강조했다. 또 국내 67개 반체제 단체 대표들은 1988년 5월 28일 북한 정권의 ‘공동 개최’ 입장을 선호하는 성명에 서명했다. 북한의 지시를 그대로 따랐던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번 평창올림픽 때도 남한 내 반체제 그룹들이 여전히 북한의 입장을 옹호하고 그 지시를 충분히 이행하려 들 것이라 예상할 수 있다. 그 입장과 지시란 무엇인가.

김정은의 신년사 발표에 이어 북한 당국이 평창올림픽 참가 의사를 밝힌 이후 북한의 대남선전지 ‘우리민족끼리’와 ‘조선신보’는 연일 평창올림픽이 남북 간 대결 구도를 종식시키는 계기가 되어야 함을 주장해 왔다.

그 논지의 핵심은 ‘한미 연합훈련의 중단’이다. 주목해야 할 사실은 이들 북한의 대남 선전 매체가 남북고위급 회담의 북측 대표인 리선권이 총괄하는 조평통의 기관지라는 점이다.

결국 북한이 평창올림픽 참가를 통해 얻으려는 것은 현재 한미 연합훈련이 한반도 평화에 본질적인 위협 요소라는 점을 대내외에 선전하고, 자신들의 핵무장을 내세워 이를 관철시키려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우리측 수석대표인 조명균 통일부 장관과 북측 수석대표인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이 1월 9일 판문점 남측지역 평화의집에서 열린 남북 고위급 회담에서 악수하고 있다./ 연합
우리측 수석대표인 조명균 통일부 장관과 북측 수석대표인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이 1월 9일 판문점 남측지역 평화의집에서 열린 남북 고위급 회담에서 악수하고 있다./ 연합
인권 탄압국 북한, 올림픽 출전 자격 있나

북한이 평화를 위해 평창 동계올림픽에 참여한다는 의지를 구태여 외면할 필요는 없다. 다만, 현실적으로 북한은 국제사회가 지목하고 있는 인권 탄압국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은 올림픽 정신에 부합한다.

국제올림픽기구 IOC는 과거 남아프리카공화국이 흑백인종차별정책(아파르트헤이트)를 196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고수하는 동안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올림픽 출전권을 박탈했다.

평화의 제전에 맞지 않는 정책을 편다는 이유였다. 그렇다면 유엔 인권위원회가 북한에 대해 인권 탄압국으로 규정하고 유엔 북한인권조사관의 북한 입국마저 불허했던 북한에게 왜 IOC는 올림픽 출전권을 박탈하지 않는 것일까.

IOC 자체가 이중 잣대를 가진 정치적 기구라는 비판이 나올 수 있는 부분이다. 결국 평창 정치 올림픽의 진정한 승자는 북한도, 한국도, 미국도 아닌 IOC가 아닐까.

한국의 진보 시민단체, 진보 정치인들이 북한의 평창 올림픽 참여를 ‘통 큰 결단’이라며 칭송하는 데만 열중할 것이 아니라 평화의 제전에 참여하려면 먼저 국제사회의 인권 개선 권고부터 시행하라는 당당한 발언을 하게 될 날을 기대해 본다. 

= 한정석 미래한국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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