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인생의 밀도....날마다 비우고 단단하게 채우는 새로 고침의 힘
[신간] 인생의 밀도....날마다 비우고 단단하게 채우는 새로 고침의 힘
  • 김민성 미래한국 기자
  • 승인 2018.01.23 06: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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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이 어수선하게 느껴졌다. 사무실에서 일을 대할 때에도, 커피숍에서 연인과 마주할 때에도, 일어나서 잠자리에 드는 모든 순간이 겉돈다는 의심이 든다. 씹는 밥알이 모래알처럼 느껴지고 하루하루의 삶 자체가 헐겁게 느껴진다. 살아오며 나를 이룬 작은 나사 하나까지 조금씩 마모되어 삐걱거리는 소리가 들릴 때, 그동안 지켜왔던 자세가 무너졌음을 깨달았을 때 비로소 이런 생각을 떠올리게 된다. “밀도가 부족하다.” 그리고 나를 낱낱이 분해해 다시 바짝 조이고 새것처럼 만들고 싶다는 강렬한 바람을 품게 된다. 

2017년 1월 유튜브에 ‘혁신의 길목에 선 우리의 자세’라는 제목으로 올라온 동영상이 일 년이 넘는 지금까지 많은 주목을 받고 있다. 강민구 대법원 법원도서관장이 진행한 강연을 담은 영상은 한 시간이 넘는 분량이었음에도 이례적으로 조회 수가 금세 100만을 넘었고, 강연에서 언급된 수 년 전 도서가 베스트셀러에 오르기도 했다. 

유명한 미래학자도 아닌 60대 법조인이 디지털 혁신과 미래에 대해 소개한 강연이 크게 회자되는 까닭에 대해 여러 분석들이 오가기도 했다. 적지 않은 나이의 남성이 낯선 디지털 툴을 능숙하게 시연하는 모습을 시청자들이 각성의 계기로 삼았기 때문이라고도 하고, 한 분야에 오래 천착한 전문가가 보여준 변화에 대처하는 자세와 인생론이 많은 호응을 얻었기 때문이라고도 한다. 분석은 제각각이지만, 화제가 된 현상에서 확인할 수 있는 한 가지가 있다. 다가올 변화에 대한 한국인들의 뜨거운 관심이다. 

“전략이라는 것은 ‘우리에게 어떤 변화가 닥칠 것인가’라는 질문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어떤 미래로 나아가기를 원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따라서 성공사례가 나올 때까지 기다린 다음 안전하게 모방하되 맹렬하게 쫓아가겠다는 구상은 결코 전략이 될 수 없다.” 

우리는 살아가며 종종 얼마 전의 상식과 지금의 상식이 충돌해 다투는 속도의 부조화와 맞닥뜨리고, 그때마다 짜증보다는 두려움을 강하게 느낀다. 나 또한 잠깐 한눈을 판 사이에 이전의 세상에서 나오지 못한 비상식적인 사람이 될 것 같아서다. 그러나 정작 우리는 미래의 정체에 대해 속 시원하게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없었고, 무엇을 대비해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알고 있지도 못하다. 다만 일상의 영역에서부터 거대한 변화가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실감하기에 제대로 준비해야 한다는 초조함만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이 미래의 갈림길 앞에서 우리는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강민구 대법원도서관장은 《인생의 밀도》에서 자신의 삶에 비추어 답을 제시하고자 한다. 

“나는 하루를 스마트폰의 리부팅으로 시작한다. 스마트폰이나 전자기기에서 리부팅이란 사용하며 쌓인 기억의 찌꺼기를 정리하고 시스템의 오류를 바로 잡기 위해 기기를 재시동하는 작업이다. 스마트폰을 껐다 다시 켜는 지극히 간단하면서 사소한 행위지만, 리부팅은 새로운 하루를 앞에 두고 고요히 나를 재정립하는 마음가짐이기도 하다.” 

특정 분야에서 어떤 정점에 도달한 깊은 통찰은 분야를 넘어 현대사회 전반에 두루 적용된다. 《인생의 밀도》는 한 노 전문가가 평생에 걸쳐 쌓은 사유와, 이를 바탕으로 자신의 삶을 정돈하고자 노력한 성찰에 대한 중간결과다. 세계적으로도 손꼽히는 한국 사법정보화의 틀을 마련한 주요 인물 가운데 한 명이기도 한 저자는 이 책에서 IT 전문가로서, 법조인으로서, 그리고 수차례 격변을 경험한 시민으로서 60여 년의 세월과 경험에 비추어 정체되지 않는 인생과 변화를 맞이하는 자세에 대해 다음과 같이 조언을 건넨다. 

리부팅. 일상의 속도 앞에서 삶의 방향을 살피기 위해 마련하는 새로 고침의 과정을 매일 새벽마다 마련한다. 폴 부르제는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l faut vivre comme on pense, sans quoi l'on finira par penser comme on a v?cu”고 했다. 관성에 의해 살아지는 헐거운 삶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일정한 순간마다 지나온 길을 복기하며 스스로를 정비할 수 있는 정지점, 리부팅의 순간이 필요하다. 리부팅을 거치지 못하는 인간은 살아가며 쌓이는 삶의 찌꺼기에 잠식될 것이고, 그 찌꺼기들은 삶 곳곳에 스며들어 인간을 마모시킬 것이다. 
IT 감수성. 외부의 변화에 섬세하게 반응하며 적극적으로 소통한다. 급변하는 글로벌 IT 환경과 트렌드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유연하게 이용할 줄 안다면 어떤 변화와 맞닥뜨렸을 때에도 당당할 수 있다. 

적자생존跡者生存. 자신의 내부에서 나오는 사유를 비롯해 경험한 사건을 정리해 통찰하는 글쓰기의 습관을 들인다. 정약용은 아둔한 기록이 총명한 생각보다 낫다는 ‘둔필승총’을 강조했다. 넘치는 정보도 기록이라는 과정을 거쳐 정리해야 비로소 자신의 것이 된다. 

생각근육. 외부에 대한 반응인 IT 감수성과 내부로의 갈무리인 적자생존을 아울러 통찰의 힘을 배양한다. 접하는 지식에 도달하기까지 거쳐야 하는 맥락 없이 쉽게 전달받은 지식들은 아무리 효율적으로 정리된다고 한들 쌓인 높이만 그럴싸하게 보일 뿐 그 구조가 엉성할 수밖에 없다. 생각근육은 다양한 독서 및 꾸준한 글쓰기, 명상과 사고실험의 생활화, 용기 있게 질문하기 등으로 길러진다. 

디지털 디톡스. 매일 잠시 동안 모든 디지털 기기를 꺼두고 명상에 잠기는 시간을 가진다. 그럼으로써 디지털 문명이 주는 피로감을 해소하고, 디지털 기기의 혜택을 누리면서 놓쳤던 것들을 짚어본다. 

적자생존積者生存. 더불어 어울리고자 하는 바람으로 그동안 쌓은 내 삶의 밀도를 타인과 나눔으로써 선을 쌓는다. 스승으로부터 받아 몸에 새긴 가르침과 사회로부터 받아 축적한 자원을 환원함으로써 상생을 도모하는 것이다. 변화된 환경에 적합한 자가 살아남는다는 진화론적 가르침이 축적하는 자가 살아남는다는 뜻으로 나아가고, 나누는 자가 더 큰 선을 쌓을 수 있다는 의미를 지나 모두가 적합한 자가 되어 더불어 살아가자는 권유로 돌아오는 셈이다. 

조각모음. 하루를 마감하기 전에 정리하는 시간을 가진다. 컴퓨터에서 조각모음을 하듯이 고요히 나를 돌아보며 하루의 오류를 찾아내고 여전히 빈 공간을 채움으로써 다가올 내일의 새벽을 준비한다. 

우리가 흔히 ‘내공’이라고 부르는 아날로그적인 힘은 이처럼 외부의 정보를 효과적으로 수용하고, 그 정보들을 기록이라는 과정을 통해 내 것으로 소화하며, 이렇게 정리된 사유를 축적하는 과정을 거친다. 이러한 과정을 하루 동안 실행하고 나면 우리는 어제보다 조금 더 단단해진 느낌을 받으며 ‘꽉 찬 하루’를 보냈다는 충만감을 느낀다. 그리고 꽉 찬 하루가 삶 전체로 이어졌을 때 스스로에게도 부끄럽지 않은 ‘밀도 있는 삶’을 살았다는 자부심을 느끼게 된다. 

“우리는 당장 오늘 산 스마트폰의 매뉴얼을 읽는 것이 버겁고, 그동안 잘해온 방식을 바꾸는 것이 부담스럽다. 하지만 우리는 조선시대 양반들과는 다르게 환갑 이후에도 여전히 길게 남은 삶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 우리 뒤에는 수없는 갈림길이 있었고, 앞에도 변화와 결단을 강요하는 갈림길들이 무수히 놓여 있다. 살아가는 한 그것을 피할 수는 없다. 이러한 변화의 길목에 서게 되었을 때 취할 수 있는 어른스러운 태도는 한 가지밖에 없다. 미리 절망하지 않는 것이다.” 

밀도密度는 어떤 내용이 충실한 정도를 가리키는 말이다. 삶의 밀도란 간절한 공부와 치열한 성찰로 하루하루 새로운 날들의 변화를 감당하며 오랜 시간에 걸쳐 채워진 단단함이다. 뒤돌아 후회하지 않도록 매순간을 꽉 차게 살아가고자 노력하는 자세이고, 삶을 대하는 진지함에서 우러나오는 격이다. 모든 생물은 성장에 한계를 가지고 살아간다. 그러나 성장기가 끝나도 생을 다하는 순간까지 성장하고, 또 성장시켜야 하는 부분이 있다. 바로 나이테다. 나이테는 세월의 변화를 버티면서 서서히 축적하는 삶의 밀도다. 스며든 시간의 무게를 짊어질수록 단단해지는 힘이다. 어느 순간부터 인간의 육체는 성장을 멈추면서 서서히 쇠퇴하게 되지만, 죽을 때까지 차곡차곡 밀도를 축적하면서 끝없이 깊어지고 단단해질 수는 있다. 

“우리는 오랫동안 칼을 단련하는 노력 자체보다 그 긴 세월을 보상받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훨씬 두려워한다. 우회축적을 하기 위해 땅으로 추락하면서 매는 어떤 심정을 품고 있었을까? 반드시 토끼를 잡을 수 있다는 확신이었을까? 아니면 토끼를 잡아 하루를 무사히 넘기겠다는 생의 간절함이었을까? 다만 이것만큼은 확신할 수 있다. 매는, 미리 절망하지 않았다. 그것이 매가 가진 격이다.” 

같은 24시간이지만 누군가는 24일처럼 보내고, 누군가는 24분처럼 보낸다. 이러한 하루를 채운 밀도의 차이가 하루하루 쌓여 24년이 지나면 인생의 밀도는 현격하게 벌어질 것이다. 누구나 밀도 있는 삶을 원하지만 하루를 천 년처럼 언제나 몰입해서 지낼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날마다 비우고 다시 채우는 과정을 통해 스스로를 반추하고 앞날을 가늠할 때, 최소한 어제보다는 밀도 있는 오늘을 보낼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런 하루하루가 쌓여나가면 어떤 돌발적인 상황에서도 쉬 흔들리지 않는 단단함을 갖추게 된다. 그리고 스스로 단단하다면 살아가며 마주하는 어떤 변화 앞에서도 비겁해지지 않을 수 있다. 《인생의 밀도》가 이처럼 스스로의 단단함을 갖추는 데 작은 보탬이 되리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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