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엄마의 독서 ....현재진행형, 엄마의 자리를 묻다
[신간] 엄마의 독서 ....현재진행형, 엄마의 자리를 묻다
  • 김민성 미래한국 기자
  • 승인 2018.02.07 0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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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정아은은  헤드헌터, 번역가, 소설가 등 다양한 직업을 전전하며 살아왔지만 제1정체성은 언제나 ‘엄마’였다. 엄마 경력 12년에 접어들던 어느 날, 좋은 엄마가 되겠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너무 아등바등 살아왔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때부터 이 글을 쓰기 시작했다. ‘좋은 엄마’란 말의 진정한 의미를 알아내기 위한 고투의 시작이었다. 2013년 《모던 하트》로 한겨레문학상을 수상했고, 이후 장편소설 《잠실동 사람들》, 《맨얼굴의 사랑》을 펴냈다.
 

〔청춘의 독서〕 〔여자의 독서〕에 이어 이번에는 〔엄마의 독서〕다. 독서가 삶을 이끄는 나침반이자 더 나은 삶의 자리를 모색해보는 도구라는 점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 〔청춘의 독서〕 〔여자의 독서〕 등 특정 타깃을 대상으로 독서 경험을 들려주고 그에 대한 지침을 주는 책들이 인기를 얻은 것도 이 때문이다. 소설가 정아은의 신작 〔엄마의 독서〕 역시 ‘엄마’로 살아가는 데 도움을 준 깊이 있는 독서일기이다. 14년간 치열하게 건너온 육아의 경험이 오롯이 녹아 있는 책이기도 하다. 작가 정아은은 2013년 〔모던 하트〕로 한겨레문학상을 수상하고, 이후 장편소설 〔잠실동 사람들〕 〔맨얼굴의 사랑〕 등을 펴낸 소설가이다. 그러나 본인의 제1정체성은 초등 6학년, 2학년 두 아이를 키우는 ‘엄마’라고 밝힌다. 

보육이든 교육이든 2018년 현재 대한민국에서 아이를 키운다는 건 앞이 보이지 않는 정글을 헤매는 일이다. 이런 상황에서 ‘이렇게 아이를 키워라’류의 육아서가 인기를 끄는 것은 당연한 결과이다. 주로 전문가들이 솔루션을 제공해주는 책이나 선배 엄마들이 들려주는 소위 ‘성공담’류의 책들이다. 그러나 정작 힘겨운 시대를 살아내는 엄마들의 진솔한 고민, ‘진짜’ 이야기를 공유하는 책들은 많지 않다. 정아은 작가는 이런 현실에 답답함을 느껴 자신의 경험을 날것 그대로 드러내며, 같이 터놓고 얘기해보자며 손을 내민다. 

작가는 결혼과 육아과정에서 어려움에 부딪칠 때마다 ‘책’에서 해답을 모색해왔고, 육아서를 비롯해 심리, 철학, 역사 등 지평을 넓혀가며 읽었던 책들이 커다란 버팀목이 되어주었다. 이 책은 작가가 사회로 첫발을 내디디며 여성이라는 정체성에 직면할 때부터 시작해, 결혼과 두 아이의 출산, 13년여에 걸친 지난한 육아과정을 시간 순으로 죽 훑고 있다. 그리고 그 과정을 지탱하게 해준 책 이야기가 뼈대의 역할을 하며 적절하게 버무려져 있다. 

작가가 사회라는 낯선 세계와 만난 건 지금으로부터 20여 년 전, 여성들이 직면한 환경이 지금보다 훨씬 열악했던 때이다. 작가는 ‘투명인간’ 취급을 받으며 지낸 이 시기를 거치며 도대체 이런 차별의 뿌리는 어디에서 비롯되었나를 찾아나섰다. 여성의 성을 파헤친 〔역사 속의 매춘부들〕을 읽으며, 역사 서술방식의 편향성을 알게 되었고, 당시 여성들의 롤모델이었던 전여옥 씨의 책을 읽으며 여성의 위치와 상황에 대해 직접적으로 깨닫게 된다.(이후 전여옥 씨의 변화를 보며 느꼈던 소회는 뒷부분에 별도로 기술된다.) 

결혼이라는 통과의례를 거치면서 미처 예측하지 못한 벽에 부딪칠 때는 페미니즘의 고전이라 불리는 〔이갈리아의 딸들〕이나 엘리자베트 바댕테르의 〔남과 여〕를 읽으며, 결혼생활의 갈등과 고통이 개인이 아닌 구조의 문제임을, 그리고 본인 안에도 무의식중에 가부장적인 선입견이 들어 있음을 아프게 깨닫는다. 

이 모든 문제는 아이가 태어나면서부터 전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는데 작가는 이 시기를 “시시포스가 되어 날마다 산을 오르는 일”이라고 표현한다. 역설적이게도 이 기간 중에는 여성으로서 분노와 적대감이 다소 줄어들었는데 이는 문제가 해소됐기 때문이 아니라 날마다 떨어져 내리는 미션에 치여 미처 그런 생각을 할 여유조차도 없었기 때문이라고 고백한다. 작가는 〔벚꽃 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 등 일본작가들의 추리소설을 읽으며 구원(?)을 받았으며,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아름다운 그림이 들어 있는 어린이책을 주로 읽었다. “풀 길 없는 감정에 깊이 빠지게 될 때는 해결책을 찾기보단 아름다운 것들과 대면하는 편이 낫다”는 게 그림책을 보며 작가가 터득한 지점이다. 

이후 두 아이의 엄마가 되면서 작가는 본격적으로 육아서 읽기에 돌입한다. 베스트셀러였던 서형숙의 〔엄마 학교〕를 비롯해 〔엄마 수업〕 〔지랄발랄 하은맘의 불량육아〕 등은 한편으로는 도움이 되기도 했으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다. 이후 〔심리학이 어린 시절을 말하다〕 〔행복한 엄마가 행복한 아이를 만든다〕 등 좀 더 본질적인 문제에 접근하는 책들로 영역을 넓혀간다. 

아빠의 자리가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들여다보기 위해 〔아빠의 이동〕 〔나쁜 아빠〕 등을 읽고, 아이가 아닌 부모의 입장에서 쓴 책 〔부모로 산다는 것〕을 읽으며 육아의 관점을 바꿔보는 경험을 하기도 한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자 작가는 부모와 학부모 사이에서 수없이 갈팡질팡하는데 이 시기에 상황을 직시하게 만든 책들은 〔고미숙의 몸과 인문학〕 〔아동의 탄생〕 〔아이들은 어떻게 권력을 잡았나〕 등이다. 〔고미숙의 몸과 인문학〕을 읽으며 당연한 것이라 강요받았던 모성이 실은 ‘만들어진’ 것임을, 〔아동의 탄생〕을 읽으며 아동이라는 개념 또한 근대에 ‘발명’된 것임을 알게 된다. 이런 독서 경험을 통해 아이와의 관계를 새롭게 정립하는 데 도움을 받는다. 

‘언제까지 24시간 대기 상태에 있는 이 삶을 지속해야 하는가.’ 엄마로서의 삶에 지쳐 있을 때 작가는 한 권의 책을 발견한다. 〔엄마됨을 후회함〕. 제목을 보는 순간 작가는 눈을 의심한다. ‘엄마됨을… 후회한다니!’ 도저히 조합될 수 없는 두 단어를 맞닥뜨리고 작가는 단숨에 서점으로 달려간다. 사실 이 에세이의 시작은 이스라엘 여성이 쓴 한 권의 책 〔엄마됨을 후회함〕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책은 엄마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보고서 형식을 띠고 있는데, “만일 지금의 경험과 지식을 가지고 과거로 돌아간다면 또다시 엄마가 되겠습니까”라는 질문에 참가자 대부분이 “아니요”라고 답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공개된 자리에서 차마 말할 수 없었지만 엄마들의 진짜 마음은 이럴 수도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책이다. 

작가는 이 책을 읽으며 그동안 아이를 키우면서 본인이 느꼈던 수많은 감정들이 단지 자신이 못되고 비정상이어서가 아님을 깨닫고 자신을 짓누르던 자책에서 조금이나마 벗어나게 된다. 또한 이제 우리 사회에서도 엄마들에게도 양가감정이 존재할 수 있음을 편하게 드러내고 은폐된 모성신화에서 벗어나야 함을 교훈으로 얻게 된다. 

지난한 과정 속에서 작가가 찾아낸 한 가지의 답. 그것은 다름 아닌 ‘집안일 나누기’였다. 결국 온가족이 공존하며 엄마도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가족 구성원 모두 집안일을 공유해야 하며, 자녀 교육의 핵심 또한 ‘자립적인 삶’에 있음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일본의 교사 출신 작가 미나미노 다다하루의 〔팬티 바르게 개는 법〕은 작가의 이런 깨달음이 잘못되지 않았음을 증명해주었다. 

결국 작가가 이 여정의 끝에서 발견한 것은 ‘연극하는 엄마와 연극하는 아이’의 모습이었다. 사회 곳곳에서 울려 퍼지는 모성신화에 짓눌려 오늘도 수많은 엄마들이 자신의 본모습과는 거리가 먼 역할을 연기하고, 아이는 착한 아이를 연기하고 있다. 그래서 작가가 실천하려는 구체적인 지침은 ‘아이들에게 과잉 친절하지 말자’이다. 기분이 나쁠 때 괜찮은 척하지 않고 엄마가 기분이 안 좋다고 말해주기, 나 혼자 밥하고 설거지하고 빨래 개면 부당하다는 생각이 드니 너희들도 같이 하면 좋겠다고 솔직하게 요청하기…. 한마디로 지나치게 ‘아이’로 대하지 않고 인간 대 인간으로 소통하겠다는 나름의 해법이다. 

작가에게 엄마의 자리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이제 사춘기에 접어든 아이들과 함께하며 더 큰 어려움에 직면할지도 모른다. 여전히 두려운 그 길에 ‘책’이라는 동아줄은 지금까지처럼 큰 힘을 발휘하며 든든한 동반자가 되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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