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 가면논란, ‘오보’하는 한국언론, ‘오바’하는 한국사회
김일성 가면논란, ‘오보’하는 한국언론, ‘오바’하는 한국사회
  • 백요셉 미래한국 기자
  • 승인 2018.02.12 1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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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평창동계올림픽에 온 북한 응원단이 김일성 가면을 들고 응원했다는 일부 언론의 어이없는 오보로 한국사회가 부글부글 끓고 있다.

스포츠와는 전혀 관계없는 삼지연음악단에 240여명의 응원단과 태권도시범단이라고 하는 북한의 불청객들로 이미 소란스러워진 한국사회에 김일성 탈논란까지 가세했다.

지난 10일 평창동계올림픽 여자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 첫 경기에서 북한응원단이 젊은 남성얼굴의 가면도구를 들고 응원했는데 그 가면 속 남성이 김일성이라고 CBS 노컷뉴스가 처음으로 보도한 것이 논란의 불씨가 됐다.

이번 올림픽의 남북단일팀 구성으로 태극기와 애국가를 제한당한데 이어 경기장에 버젓이 등장한 북한응원단의 인공기로 가뜩이나 심기가 불편해진 국민들에게 일부 언론의 김일성 가면응원 보도는 그야말로 붙는 불에 키질 하는 격이 되고 말았다

지난 10일 강원도 강릉시 관동하키센터에서 열리는 평창동계올림픽 여자 아이스하키 조별리그 B조 남북단일팀-스위스 경기에서 북한 응원단이 가면을 이용한 응원을 펼치고 있다. / 연합
지난 10일 강원도 강릉시 관동하키센터에서 열리는 평창동계올림픽 여자 아이스하키 조별리그 B조 남북단일팀-스위스 경기에서 북한 응원단이 가면을 이용한 응원을 펼치고 있다. / 연합

'평양올림픽이라는 말이 나올 만큼 북한에 굴욕적인 이번 평창올림픽으로 인해 자존심이 상할 대로 상한 국민들의 반북정서를 감안할 때 충분히 이해되는 현상이지만 일부 언론의 김일성 가면 보도는 명백한 오보일 수밖에 없다.

우선 수령우상체제인 북한사회의 특성 상 아무리 대남심리전 차원이라고 해도 수령의 영상을 가면으로 만들어 스포츠에 활용한다는 것 자체가 북한에서는 전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게다가 문제의 응원단 사진 중에는 가면의 눈 부분에 구멍까지 뚫려있는 사진도 있었다. 수령의 눈에 구멍까지 내면서 수령을 찬양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불성설이 아닐 수 없다.

구멍이 뚫려있지 않았다고 치더라도 수령의 사진으로 대남선전용 탈을 만든다는 발상 자체가 북한에서는 총살감에 해당되는 대역죄 일수밖에 없다. 북한응원단이 김일성 가면으로 응원했다는 생각은 북한사회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는 일개 인터넷 매체의 어리숙한 기자가 할 수 있는 지극히 남한틱한 발상일 뿐이다.

문제의 가면응원은 이렇다. 응원단이 당시 그 가면을 들고 응원할 때 휘파람이라는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사회주의사상과 수령 및 체제선전내용이 삽입되지 않은 순수 사랑노래가 거의 없는 북한으로써 남한 땅에 와서 남한 현지인들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을 정도로 부를 수 있는 노래가 많지 않은데 그 노래 들 중 하나가 휘파람이다.

휘파람 노래 가사는 한 총각이 한 여성의 마음에 들기 위해 애간장을 태우며 매일 그녀의 주위를 맴돌면서 휘파람을 분다는 내용이다. 응원단은 그 노래 가사 내용에 대한 1차원적인 연기를 한 것이고, 그 연기에 사용된 남자의 가면은 북한의 일반적 꽃미남형을 의미했을 뿐 남한사회 일부에서 집착하는 김일성 얼굴은 아니라는 것이다.

노컷뉴스가 보고한 문제의 김일성 가면 사진 기사
노컷뉴스가 보도한 문제의 김일성 가면 사진 기사

해당 보도가 나간 지 하루만인 지난 11CBS 노컷뉴스가 김일성 가면 쓰고 응원하는 북한 응원단이라는 자사의 기사가 사실이 아닌 것으로 판명됐다며 정식으로 정정·사과보도를 냈으나 김일성 가면설은 이미 보수 진영 일각의 신념처럼 굳어져버린 듯하다. 보수진영의 혼란을 부추기기 위한 ‘CBS의 고의적인 오보가 아니었기를 믿어야 할 처지다

하지만 야권 정치권이 김일성 가면문제를 들고 정부와 여당을 압박하고 나섰다. 자유한국당에 이어 바른정당 하태경의원은 김일성의 청년시절 사진까지 공개하면서 북한 응원단이 쓴 가면이 김일성 가면이라고 거듭 주장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통일부는 현장에 있는 북측 관계자 확인 결과 보도에서 추정한 그런 의미는 전혀 없으며 북측 스스로가 그런 식으로 절대 표현할 수 없다며 잘못된 추정이라고 해명했으나 논란의 불씨는 더욱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통일부의 해명을 믿을 수 없다고 하면 더 할 말이 없겠지만 만약 북한이 정말로 김일성 가면을 기획했다면 그 가면이 김일성이 아니라고 부인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또 김일성 가면 응원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한국사회를 맹비난 했어야 정상이다. 하지만 북한 측은 전혀 그런 게 아니라고 부인했다. 북한 측 입장에서도 전혀 예측하지 못했던 의외의 반응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문제의 가면의 눈 부분에 구멍이 뚫려져 있다. / 사진출처 SNS
가면의 눈 부분에 구멍이 뚫려져 있다. / 사진출처 SNS

김일성 가면논란에 대해 한 탈북민출신 웹툰작가는 북한에서는 그냥 그리면 (남자의 형상이)이렇게 그려진다고 그렇게 말했는데도 자꾸만 김일성과 비교한다면서 그게 아니라는데도 계속 몰아가고 그러니까 매번 (북한에) 당하는 것 아니냐고 개탄했다.

가면의 남성이 김일성이라는 확실한 이유로 많은 사람들이 1945년 평양에 입성한 30대 김일성의 얼굴이나 김정숙 생전에 애기 김정일과 김일성이 함께 찍은 가족사진을 비교하는데 북한사람들에게 바로 떠올려지는 김일성 형상은 매일 가슴에 달고 다니는 80대의 인자한 할아버지 모습이지 반세기 전 30대 애송이 얼굴이 아니라는 것이다.

또한 김일성이 북한의 이니 북한의 미남 기준도 김일성의 청년시절 모습에 맞춰져 있는 것 아니냐는 남한사회 일각의 또 다른 주장은 북한 사회를 너무 확대 해석한 부분이라는 것이 탈북민들의 생각이다. 북한의 인민학고(소학교) 교재에 나오는 남자아이의 모습이나 동화책, 선전화에 그려진 온화한 남자의 모습은 대부분이 가면의 남성 형상과 비슷하게 그려져 있다.

사진출처: 웹툰작가 최성국
사진출처: 웹툰작가 최성국

이러한 현상 또한 분단국가의 아이러니라고 할 수 밖에 없겠지만 북한문제에 있어서 한국사회의 보수진영이 지나치게 확증 편향적이라는 주장도 있다. 마치도 극성 크리스천들에게 서양의 미남 상을 꼽으라면 당연 예수의 형상인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필자도 남한에 와서 불교 사절 앞에 걸린 ()자 무늬를 히틀러 나치의 상징으로 오해했었던 기억이 있다

북한 응원단이 인공이 문양의 유니폼을 입고 인공기를 흔들며 살벌한 전체주의 식 액션으로 남한국민들을 분노케 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리고 그러한 북한의 호들갑에 존재가 없어져 버린 평창올림픽의 가련한 스포츠정신 또한 개탄할 노릇이다.

그러한 울분으로 인해 김일성 가면 오보에 이토록 흥분하는 것도 십분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어처구니없는 오보기사 하나로 불필요한 논쟁에 휘말려 정작 중요한 이슈를 놓치고 있지는 않는지 다시 한 번 차분하게 생각해봐야 할 문제가 아닐까,

노컷뉴스의 김일성 사진 보도에 대한 사과 및 정정보도 기사 캡처
노컷뉴스의 김일성 사진 보도에 대한 사과 및 정정보도 기사 캡처

= 백요셉 미래한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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