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세의 독일통일 이야기 - Benz와 Trabant, 그리고 동방정책
권영세의 독일통일 이야기 - Benz와 Trabant, 그리고 동방정책
  • 김민성 미래한국 기자
  • 승인 2018.03.13 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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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동서독의 중산층 4인 가족 가구를 비교할 때, 동독의 경우 99%의 가구가 세탁기와 냉장고를 보유하고 있었고, 96%의 가구가 TV(그중 52%만 칼라TV)를, 52%의 가구가 자가용차를 각각 보유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이에 비해 서독의 경우,  99%의 가구가 세탁기, 냉장고를, 98%의 가구가 TV(칼라TV는 94%)를 각각 보유하고 있었고, 자가용차 보유가구는 97%였다고 합니다. 물론 서독인들이 주로 보유한 것들은 차로 치면 벤츠, BMW, 아우디 등인데 비해 동독인들이 보유한 것은 Trabant(아래 사진 참조)류라 품질면에서 큰 차이가 있었지만, 어쨌든 동독인들이 상당한 정도의 생활수준을 누리고 있었던 것만은 분명하겠지요. 
 

전 국회의원, 전 주중대사 권영세
전 국회의원, 전 주중대사 권영세

80년대 중반 1인당 칼로리 섭취량에서는 오히려 동독인들이 서독인들에 비해 더 많은 칼로리를 섭취하였는데 과일, 채소 등의 섭취는 낮았지만 육류, 계란 및 낙농제품의 경우 훨씬 많은 양을 섭취하였다고 합니다.  임금수준의 차이도 동독의 나름 잘 운영되고 있던 교육, 의료, 연금제도 등 소위 '집단소비(collective consumption)'를 고려할 때 사실상 그렇게 크지 않았다고 합니다.(이상은 Mary Fulbrook의 'A History of Germany  1918-2014 : The Divided Nation'에서 요약한 내용임)

동독정권은 그 주민들이 이미 분단 전 시민사회를 경험했을 뿐 아니라 바로 이웃에서 풍요로운 삶을 누리는 서독의 주민들과 제한적이나마 연결되어 있었기에 울브리히트나 호네커 같은 독재자들도 구 소련이나 북한 정권의 독재자들과는 달리 정권의 안정을 위하여는 주민들에게 기본적인 삶을 보장해줄 수 밖에 없었던 결과였겠지요.

1980년대 들어 미사일배치 문제로 미소간 따라서 동서 진영간 긴장이 고조되면서 소련은 노골적인 우려를 표시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독은 계속해서 서독에게 경제적 의존을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위와 같이 자신들의 체제유지를 위한 비용을 달리 구할 곳이 없었기 때문이지요. 따라서 서독이 자신들의 지원 댓가로 요구하는 양독간 긴장완화 조치들, 예컨대 동서독 주민들간 통행을 더 원활하게 하고, 동독 내 인권을 더 보장하라는 요구들에 대해 동독지도자들은 수용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1980년대 초 좌파 사민당에서 우파 기민/기사당으로 정권이 교체될 때 많은 사람들이 기민/기사당의 콜 정부가 동방정책을 승계할지 궁금해 했습니다. 그러나 위와 같이 이 정책에 의해 서독이 지원하는 금품 대부분이 동독주민들의 실질적인 삶을 나아지게 하는데 사용된다고 확신할 수 있었던 만큼 새 정부로선 그 정책을 갑자기 포기할 이유가 없었지요. 

모든 정책은 같은 내용이라도 그 정책이 시행되는 상황에 따라 결과가 달라집니다. 어떤 작물이 잘 성장하기 위해서는 작물자체의 품질도 중요하지만 그것이 재배될 곳의 토양, 기후 등도 중요한 영향을 주는 것과 같은 이치지요. 동서독 관계에서 성공한 '포용정책', 즉 동방정책은 이 같이 성공할 수 있었던 토양과 기후 즉, 우호적인 상황이 존재했기에 가능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포용정책, 즉, 햇볕정책은 어떨까요? 

전 국회의원, 전 주중대사 권영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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