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춘 ‘북한인권 시계’가 다시 움직일 때
멈춘 ‘북한인권 시계’가 다시 움직일 때
  • 김범수 미래한국 편집인
  • 승인 2018.03.14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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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북특사단의 평양방문과 김정은 면담 장면은 그로테스크한 영화의 한 장면처럼 다가온다.

거구의 독재자 김정은과 그의 가냘픈 여동생이 과거의 어느 세트장 안에서 희한한 헤어스타일과 과장된 - 혹은 수줍은 - 웃음으로 손님들을 맞이하고 있고 21세기 미래에서 온 대한민국의 최고위 공직자들이 그곳으로 빨려 들어가 장면의 배경이 된다. 그 안에선 등장인물의 모든 대화와 몸짓, 화면의 화질조차도 독재자의 그것과 싱크(sync) 된다.

문화나 경제적 차이를 얘기하고 있거나 남북회담 자체를 폄하하는 게 아니다. 세계에서 일곱 번 째로 3050클럽(국민소득 3만 달러-인구 5000만) 가입을 코앞에 둔 경제·자유·인권 선진국 대한민국이 자유와 인권과 소통이 완전히 박탈된 채 먼 과거에 머물고 있는 북한을 아무런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고 동화되고 있는 현상이 기이한 것이다.

워싱턴타임스

왜 다시 북한인권인가? 북한인권은 한반도 문제의 핵심이자 숨겨진 뇌관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최근 북한인권 문제를 주요 안건으로 들고 나오는 건 북한 문제의 본질을 제대로 짚은 것이다.

북한의 핵과 미사일 개발은 비정상적이고 반인륜적인 북한 체제에 기인한다. 김정은이 핵을 포기할 수 없는 이유는 그것이 체제 유지 문제와 직결해있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에서 북한인권의 시계는 멈춰져 있다. 굳이 들여다보면 고장난 시각은 1987년 즈음. 87체제가 반공을 국시로 하던 군사 정권을 단죄하고 탄생하면서 이에 대한 부작용과 반작용으로 북한 체제에 면죄부를 준 면이 있다.

당시 ‘민주화’ 대열의 전면에 섰고 지금은 각계 각처의 주인공이 된 주사파 운동권 출신들에게 북한은 여전히 성역으로 남아 있고 그들의 인식은 여전히 80년대에 머물러 있다. 북한인권 문제가 불거지면 그들은 자동적으로 눈을 돌린다.

작년 12월 유엔은 북한인권결의안을 13년 연속으로 통과시켰고 미국 의회는 북한인권법을 압도적 표결로 2022년까지 재연기했다. 한편 우리는 2016년 3월 우여곡절 끝에 국회에서 통과시킨 북한인권법을 사문화시키고 있다.

법안 실행을 위한 부처간 협의체인 북한인권정책협의회는 새정부 출범 이후 한 차례도 열리지 않았고 북한인권 증진 연구의 기치로 세워진 북한인권재단은 작년 118억의 예산을 배정받고도 불용했다. 올해도 108억 원의 예산이 그대로 방치되고 있다.

멈춰진 북한인권 시계를 어떻게 다시 움직일 수 있을까. ‘인권’이란 용어가 거창하다면 자유 혹은 상식이라고 부르자. 편견 없이 세상을 똑바로 바라볼 줄 아는 2030이 희망이 될 수 있다. 처참한 북한인권의 현실, 인류 보편적 상식과 정의의 문제에 이들이 눈을 뜰 때 에너지가 폭발할 것이고 수백만 촛불이 밝혀질 것이며 막혀 있던 미래의 통로가 열리게 될 것이다.

‘미투’운동이 열풍이다. 그런데 한국에 입국한 3만여 탈북민들이 한목소리로 증언하듯 지금도 중국에선 수만여 명의 탈북민 여성들이 인신매매로 팔려가며 울부짖고 있다.

멈춰진 한반도의 과거와 미래를 연결할 뇌관은 북한의 자유와 인권, 상식의 회복이다. 한미 정부는 대북 대화를 확대해 나갈때 북한인권 문제를 의제에 올려야 한다. 

김범수미래한국 발행인세이브NK 대표
김범수
미래한국 발행인
세이브NK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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