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복수의 심리학...우리는 왜 용서보다 복수에 열광하는가
[신간] 복수의 심리학...우리는 왜 용서보다 복수에 열광하는가
  • 김민성 미래한국 기자
  • 승인 2018.03.19 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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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스티븐 파인먼은 영국 배스대학교 경영학과 명예교수. 오랫동안 조직 행동 분야에서 탁월한 명성을 쌓아왔으며 노동과 사회정의에 관한 책과 논문을 꾸준히 써왔다. 런던대학교University of London에서 직업심리학으로 석사학위를, 셰필드대학교University of Sheffield에서 심리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저서로 《노동: 짧은 개요Work: A Very Short Instruction(2012)》, 《직장에서의 감정에 대한 이해Understanding Emotion at Work(2003)》, 《사회적 업무 스트레스와 중재Social Work Stress and Intervention》,《The Blame Business(2015)》 등이 있다.

비단 폭력적인 성향을 갖춘 사람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자신의 자존감을 떨어뜨리거나 어떤 형태로도 위협이 되는 사람에게 ‘앙심’과 ‘되갚음’을 해주고자 하는 욕망에 휩싸인다. 우리는 이것은 ‘복수심’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이와 동시에 우리는 죄책감을 함께 느낀다. 자신이 용서할 줄 모르는 냉정하고 속 좁은 사람이 아닐까 여기는 것이다. 이는 우리가 오랫동안 사회제도적으로, 또 도덕적으로 ‘복수’는 옳지 않다고 교육받은 결과이다. 

물론 복수가 뒤틀린 자기애와 과대망상, 지나친 폭력성에 기반해 극단적으로 이루어진다면,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키거나, 스탈린이나 히틀러처럼 끔찍한 역사를 만들어낼 수도 있다. 역사에는 수많은 잘못된 복수 사례가 널려 있다. 

하지만 평범한 개인들이 꿈꾸는 일상의 복수 판타지들은 어떠한가? 자신을 굴욕 준 상사에 대한, 자신을 밀치고 먼저 지하철에 올라탄 사람에 대한 복수 판타지는 그 자체로 자기 정화 및 자기 위안 효과가 있다. 복수심을 단 한 번도 지니고 살지 않기에는 이 세상이 너무나 불합리한 일들로 가득하고 그것이 인간 실존의 현실이다. 따라서 복수는 반드시 부정해야 할 것만은 아니며, 우리가 탐구해야 할 심리 상태 중 하나가 될 수 있다. 저자는 이 책에서 인류의 전 역사를 통해 복수심의 근원과 그 기저에 깔린 심리 작용을 낱낱이 살펴보고, 인간 실존의 견지에서 ‘복수’를 파헤치고 있다. 그리고 이 감정을 어떤 방식으로 다룰 것인지 성찰할 기회를 제공한다. 

이 책은 모두 아홉 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복수가 본질적으로 어떤 심리 작용인지, 복수심은 어디에 뿌리 내리고 있는지를 밝히는 제1장 ‘복수의 뿌리’에서 시작하여, 제2장 ‘신의 심판’에서부터 제9장 ‘정치 보복’까지는 역사적 사건에서부터 개인적, 사회적, 국가적, 정치적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일어나는 복수의 행태에 대해 살펴본다. 

먼저 첫 번째 장에서 스티븐 파인먼은 ‘우리는 왜 복수하는가’에 대해 설명한다. 복수는 원래 우리 인간의 생물사회적 기질이며, 슬픔이나 비탄, 굴욕감, 분노 등으로 촉발되는 원초적 본능이다. 개인의 안녕과 명예, 자존감이나 나아가 집단의 질서, 역할 등을 위협받았을 때 촉발되는 것으로, 어그러진 정의를 바로잡는 기능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사회가 복잡다단해지면서 갈등의 양상도 복잡해지고, 개인 간의 복수가 무법 상태를 불러오게 되었다. 사회는 사법 제도는 물론 종교적, 도덕적인 교화를 통해 복수를 금지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개인 간 복수가 금지되었는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아니오’이다. 그 사례들은 다음 여덟 개의 장에 걸쳐 제시된다. 

고대 시대부터 복수는 개인과 집단의 위협에 대한 반응이었다. 고대 부족들은 부족의 명예와 재산을 침탈하는 자를 잔혹하게 응징했고, 국가주의 시대에도 ‘눈에는 눈’으로 알려진 ‘동해보복법’이 오랫동안 위세를 떨쳤다. 유대교, 이슬람교, 힌두교, 불교, 기독교, 세계 대종교들은 각기 추구하는 방향은 약간씩 다르고 복수를 규탄하는 편에 서 있기는 하지만 ‘신의 심판’이라고 정당화된 복수 행위를 벌였다. 성전으로 알려진 지하드나 십자군 전쟁, 중세 시대 마녀재판 등이 대표적이다. 심지어 오사마 빈 라덴의 테러조차 ‘알라의 명’에 따른 것으로 선포되며, 용서와 자비를 가르치는 불교에서조차도 소수파에 대한 탄압은 정당화된다. 국가 역시 사적 복수를 제도적으로 금하는 한편으로 국가의 권위를 위협하는 자들에 대해서는 가차 없이 복수의 칼날을 휘둘렀다. 

권위자들이 이렇게 복수를 정당화하는 동안, 민초들은 복수 문학에 열광했다. 고대 그리스 시대 <오디세이>부터 셰익스피어의 시대를 거쳐 오늘날의 할리우드 슈퍼 히어로 영화에 이르기까지 문화 콘텐츠들에는 복수하는 영웅들은 도처에 넘쳐난다. 심지어 복수는 아동문학에서까지도 다루어지는데, 우리가 생각하듯이 반드시 ‘교화적’이지만은 않다. 

잔혹한 ‘복수 행위’는 과거에만 일어났던 것은 아니다. 다양한 방식으로 현대 사회에서도 여전히 이루어지고 있다. 정치가들은 마이크나 펜을 잡고 공공연하게 정적을 비난해대고, 직장 내 갈등은 점점 더 심각한 앙갚음을 양산하고 있으며, 청소년들은 집단의 권위에 도전하는 요소를 제거하는 ‘보복’ 작업을 한다. 또한 인터넷의 발달로 인해 SNS상의 개인적인 모독이나 리벤지 포르노 같은 신종 형태의 보복도 등장했다. 이런 일들은 우리에게는 너무나 일상적이지만, 잔혹하기 이를 데 없는 과거의 수많은 전쟁과 잔혹 행위들의 변주일 따름이다. 

복수를 우리의 생활에서, 머릿속에서 완전히 지워낸 ‘복수의 진공 상태’는 불가능해 보인다. 하지만 그것이 과연 필요한가, 라고 저자 스티븐 파인먼은 묻는다. 복수를 통해 ‘인간 조건’에 대한 어떤 성찰이 가능할까? 복수에는 비난이 따르지만 정말 항상 비난받아 마땅한 것일까? ‘좋은’ 복수와 ‘나쁜’ 복수 사이에 결정적 전환점이 존재할까? 

저자는 수많은 사례로 독자들에게 성찰의 기회를 준다. 이 사례들은 복수 행위 역시 현대에 들어 그 양상이 너무나 복잡다단해져서 과거의 잣대로 판단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해준다. 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된 총기 난사 같은 범죄적 보복 행위도 있지만, 스티브 잡스나 리 아이아코카 같은 인물들이 위대한 CEO가 된 원동력 역시 ‘복수심’이었다. 또한 직장과 사회에서 억압받은 이들, 범죄 피해자들의 인터뷰는, 그들에게 우리 문화가 무조건적인 용서와 인내를 묵시적으로 강요함으로써 2차 피해를 촉발하고 있지는 않은지를 돌아보게 한다. 

복수의 백과사전 같은 이 책의 사례들을 훑어보면서 우리는 복수의 민낯을 정확히 들여다보면서 그것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 생각할 수 있게 된다. 이런 시도를 통해 우리는 ‘금기’마저도 역사, 문화적으로 어떤 변천을 겪었는지를 파악하고, 객관적으로 조망할 수 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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