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보기인가, 진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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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경웅 미래한국 객원기자
  • 승인 2018.03.19 1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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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석] 문정인 특보의 ‘한미 연합훈련 조정’ 발언 파문

문정인 청와대 통일외교안보 특보가 지난 1일(현지시간) 미국 공영방송 PBS와의 인터뷰에서 내놓은 발언이 한국 사회를 뒤흔들고 있다. 문정인 특보는 당시 “미국과 북한 간의 대화가 이뤄진다면 한미 연합훈련 가운데 ‘독수리 훈련(Foal Eale)’은 연기 등의 조정을 할 여지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는 해석하기에 따라 “문재인 정부가 남북 간 대화를 최우선 하고 있어 한미 연합훈련 재개에 부정적”이라는 주장의 근거가 될 수도 있어 논란이 일었다.

문정인 특보의 PBS 인터뷰 발언, 그 뜻

문정인 특보는 미국 PBS와의 인터뷰에서 마크 내퍼 주한 미대사대리가 최근 기자들과 간담회를 가진 자리에서 “서울에 있는 미 대사관도 한미 연합훈련의 추가 연기가 없을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던 사실을 언급한 뒤 “그러나 한미 군사연습과는 다른 한미 연합군사훈련은 일정 조정의 여지가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문정인 특보는 이어 “미국과 북한 간의 대화는 당장에는 어렵다”면서 “북한이 탄도미사일 시험 발사와 핵실험을 중단하며 자제하는 행동을 계속 보인다면, 어쩌면 좋은 기회가 있을 수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그는 “개인적으로는 북한과 미국이 어떠한 전제조건 없이 대화하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문정인 특보는 또한 “미국이 북한에 대한 선제공격을 가할 경우 북한은 한국에게 보복할 가능성이 매우 크고 전면적인 충돌로 격화될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북한에 대한 미국의 일방적 군사행동을 매우 우려하고 있다”면서 “부수적 피해도 재앙 수준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문재인 정부 관계자들은 평소 자신들의 생각으로 볼 때 문정인 특보의 발언이 뭐가 문제가 되겠느냐는 반응을 보일 것이다. 그러나 그의 발언 가운데 “한미 연합훈련과 한미 연합군사연습은 별개”라는 말, “우리는 북한에 대한 미국의 일방적 군사행동을 매우 우려하고 있다”는 말은 보는 시각에 따라 한미 관계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대목이다.

문정인 특보의 인터뷰 이후 문재인 정부를 지지하거나 미국과 북한 간의 무조건 대화를 주장하는 매체 등에서는 이런 주장을 강력히 지지하고 있다. “미국과 북한 간의 평화적 대화를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먼저 한국과 북한 간의 대화가 필요한데, 북한을 이끌어 내려면 그들이 요구하는 미 전략자산의 한반도 전개, 즉 한미 연합군사연습을 중단할 필요가 있다”는 논리를 내세우고 있다.

문정인 특보의 주장대로 미 전략자산의 한반도 전개를 중단하고 병력 실기동 훈련을 하지 않는다면 한미 동맹이 북한에게 굴복했다는 평가가 나오게 되고, 이는 곧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 ‘당사국’인 한국과 동맹국 미국, 일본의 뜻이 일치하지 않는데 굳이 대북제재에 적극 동참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키 리졸브(KR) 훈련과 포어 이글(FE) 훈련의 차이

매년 3월 중에 열리던 키 리졸브 훈련과 포어 이글 훈련은 각각 다른 훈련이다. 키 리졸브 훈련은 보통 열흘 남짓 기간 동안 열리며, 포어 이글 훈련은 그 뒤를 이어 약 한 달 동안 시행해 왔다. 키 리졸브 훈련은 한반도 유사시 미군 증원 병력을 신속하게 파견하기 위해 실시하는 일종의 전시증원훈련으로, 실제 병력과 장비가 기동하거나 한반도에 오는 것이 아니다.

이런 훈련은 사회적 비용과 각 부대별 상황 때문에 보통 도상훈련(CPX) 또는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진행하는 경우가 많다. 한반도 유사시 미 본토와 세계 각국에서 오는 부대들을 한국과 주변국 어디에 배치할지 순서와 규정을 숙달하는 것이기에 실제 부대의 이동이 필요하지는 않은 것이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한미연합작전능력을 높일 수가 없다.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평통사) 회원들이 지난 2월 21일 서울 종로구 미 대사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한미연합연습 중단 촉구 컬링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 연합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평통사) 회원들이 지난 2월 21일 서울 종로구 미 대사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한미연합연습 중단 촉구 컬링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 연합

때문에 키 리졸브 훈련에 이어 실제 병력과 장비가 한반도 주변에서 기동하는 포어 이글 훈련을 실시한다. 포어 이글 훈련은 당초 주한미군 특수전 사령부와 한국군 특전사령부가 유사시 북한 특수부대의 후방 침투에 대응하고 적 지휘부를 타격하는 연습을 위주로 실시하는 것이었지만 이후 시간이 흐를수록 키 리졸브 훈련에 맞춰 전시 한미 연합군의 작전 능력을 높이는 쪽으로 병력을 운용했다.

특히 2016년 포어 이글 훈련은 새로운 작계 ‘5015’를 검증하는 내용도 포함돼 사상 최대 규모로 열렸다. 당시 미군은 1만 7000여 명, 한국군은 30만여 명이 훈련에 투입됐다. 존 C.스태니스 항모 강습단에다 B-1B, B-52H 전략 폭격기, B-2 스텔스 폭격기, F-22 스텔스 전투기까지 한반도에 투입됐다.

2017년 포어 이글 훈련 때는 경북 성주에 배치된 사드(THAAD) 미사일의 적 탄도탄 요격 연습, 미 통합특수전사령부(JSOC) 소속 특수부대들이 투입돼 한국군 특수부대와 함께 ‘참수작전’과 한반도 유사시 북한 핵무기 확보 작전 등을 연습했다.

1976년부터 1992년까지 실시했던 한미 연합훈련 팀 스피리트를 실시할 때마다 북한 정권이 전군에 비상대기명령을 내린 것처럼 미군 병력과 장비가 실제로 한반도와 그 주변에 전개되는 포어 이글 훈련은 북한 정권이 가장 두려워하는 한미연합군 훈련이다.

북한은 김정일 때부터 김정은 때까지 미군 병력과 장비가 한반도에 오는 포어 이글 훈련과 을지프리덤가디언(UFG) 훈련 때마다 발작적인 반응을 보였다. 한국에서도 북한의 발작에 맞춰 주한미군 반대단체들의 활동이 벌어졌다.

이때 한국에 오는 미군 전력은 북한을 선제타격해도 제대로 맞받아치지 못할 수준의 전략자산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침묵하는 청와대, 말 못하는 국방부

문재인 정부는 지난 1월 평창 동계올림픽에 북한 측이 온다는 말을 들은 뒤 미국 측에 한미 연합훈련 일정의 연기를 요청했다.

미국은 “평창 동계올림픽과 패럴림픽에 국한된다”면서 동의를 해줬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는 평창 동계올림픽 기간 동안 남북 대화에서 국민들에게 자랑할 만한 성과를 내지 못했다. 북한과의 대화가 이런 식으로 계속될 경우에는 오는 6월 지방선거 결과가 우려됐다.

조급해진 걸까.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일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김정은의 메시지를 갖고 온 김여정에 대한 답방 형식으로 대북 특사를 보낼 예정”이라고 통보했다. ‘대북특사’ 이야기가 나오자 한국 사회는 “누가 대북특사가 될 것인가”를 놓고 다양한 주장과 분석이 나오기 시작했다.

‘한미 연합훈련 일정’ 문제는 잠깐 가려지는 듯했다. 하지만 문정인 특보의 인터뷰 발언으로 다시 논란이 됐다. 대부분의 국민은 문재인 정부가 당초 밝힌 것처럼 평창 패럴림픽이 끝난 뒤인 4월 초 키 리졸브 훈련과 포어 이글 훈련을 실시하겠거니 하고 예상했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 구체적으로 청와대는 한미 연합훈련 재개 일정에 대해 구체적인 발언을 피하고 있다. 그저 “평창 패럴림픽이 끝나면 일정을 공개할 것”이라고만 하고 있다. 이에 답답한 것은 국방부다.

국방부는 2월 하순부터 “한미 양국은 연합훈련 일정을 또 연기한다는 협의를 한 적이 없다”고 못 박으며 평창 패럴림픽 이후에 훈련을 재개할 뜻을 밝혔다.

미 국방부 또한 한국 국방부와 같은 내용을 거듭 발표했다. 지난 2월 28일 국회 국방위에서 송영무 국방장관이 문정인 특보의 발언에 대해 “그 사람은 한미 연합훈련 일정에 대해 발언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 아니다”고 말한 것도 이런 답답함을 드러낸 것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었다.

또한 2017년 9월 문정인 특보를 비판했다가 청와대로부터 강한 경고와 질책을 받았던 송영무 국방장관이 이런 발언을 한 것은 불쾌함과 함께 그의 주장이 현실이 될 것을 우려한 것이라는 해석도 많이 나왔다.

‘언터처블’ 문정인, 누구의 대변인일까?

문정인 특보의 주장처럼 올해 한미 연합훈련이 키 리졸브만 열리고 실제 병력과 장비를 이동하는 훈련을 실시하지 않을 경우 대북전략에서 한국과 미국의 간극은 더 벌어질 것으로 보인다.

노무현 정권 때처럼 한국군과 미군 간의 끈끈한 유대 관계가 이 간극을 메우고자 노력하겠지만 문재인 정부가 계속 북한의 대리인처럼 행동한다면 트럼프 정부가 미군에게 ‘명령’을 내릴 가능성도 적지 않다.

그러면 양국 군 관계자들의 유대에도 불구하고 한미 간의 간극은 회복 불가능한 수준으로까지 벌어질 수 있다. 문정인 특보는 2017년 5월에 임명된 이후 여러 주장을 통해 한미 양국 간의 갈등을 불러 일으켰다.

2017년 6월 미국에 간 그는 “사드 배치 문제로 한미동맹 간에 균열이 생긴다는 주장이 있던데 그렇다면 그게 무슨 동맹이냐”, “북한이 핵무기 개발과 탄도미사일 시험을 중단한다면 한미 연합훈련을 축소할 수도 있다”, “북한을 사실상 핵보유국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등의 발언을 해 한국과 미국 양국으로부터 거센 비난을 받았다.

2017년 9월에는 한 행사에 참석해 “미국이 군사행동을 할 때는 반드시 국내 정치적 목표가 있다”면서 “한미동맹이 깨진다 하더라도 전쟁은 안 된다”는 발언을 해 논란을 일으켰다. 한미동맹을 흔드는 그의 발언은 2018년에도 계속됐다.

지난 1월 29일(현지시간)에는 프랑스 파리에서 “북한이 평창 동계올림픽을 체제 선전의 수단으로 쓴다는 비판이 미국과 한국에서 많다”며 “북한이 실제로 그런 의도를 갖고 있더라도 그들이 그들만의 게임을 즐기도록 하고 우리도 우리대로 하면 된다”고 말해 또 한 번 논란을 일으켰다.

문정인 특보는 “문재인 대통령은 좋은 의도로 북한의 행동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서 “북 마식령 스키장에서 한국 선수들이 훈련을 하는 것도 북한으로부터 신뢰를 얻는 한 가지 방법”이라고 주장했다. 이는 문재인 정부가 남북 대화를 통해 한국 선수들을 북 마식령 스키장으로 보내기로 한 데 대한 지지 발언이었다.

문정인 특보가 이처럼 북한 비핵화 문제에 대해 계속 딴죽을 걸고 북한 문제에 대한 한미 공조를 뒤흔드는 데도 불구하고 청와대는 이상하게 그를 감싸고 있다. 2017년 9월에는 송영무 국방장관이 공개석상에서 문정인 특보를 비판하자 그에게 경고 조치를 내렸고, 2018년 1월에도 “문정인 특보의 발언은 단순한 개인 의견에 불과하다”며 그를 감싸 도는 모습을 보였다.

대통령 특보가 명예직이라고 하지만 국가 외교·안보 전략에 대해 공개석상에서 함부로 발언하는 것은 국익에 손해가 될 수 있다. 때문에 대통령 특보가 이상한 발언이나 행동을 하면 해촉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문재인의 청와대는 이상하게도 문정인 특보를 감싸 돈다.

그의 발언이 혹시 대통령의 속내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어서는 아닐까. 과거 언론 보도에 따르면, 청와대 관계자들은 “문정인 특보에 대한 문재인 대통령의 신뢰가 특별히 두텁다”면서 “정부 초기에는 그를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에 기용하는 것도 고려했다”고 밝혔다.

청와대 국가안보실이 사실상 국가 외교안보 사령탑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문정인 특보의 ‘실언’으로 알려진 내용들이 혹시 문재인 대통령과 그 측근들의 진심은 아닐까. 그의 발언 때문에 송영무 국방장관뿐만 아니라 강경화 외교장관이나 조명균 통일장관까지도 난감한 상황을 겪었다는 점을 떠올려 보면 그가 문재인 대통령의 ‘복심’이라는 의심을 안 할 수가 없다.

문정인 발언처럼 된다면 일어날 일들

문정인 특보의 발언이 힘을 얻고 논란이 되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그가 말한 것들이 나중에 현실이 됐다는 점 때문이다. 만약 그가 말한 것처럼 키 리졸브 훈련만 실시하고 포어 이글 훈련은 또 연기가 되거나 취소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문정인 대통령 외교·안보특보가 2월 27일 미국 워싱턴DC에서 미국북한위원회(NCNK)가 주최한 북한문제 세미나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 연합
문정인 대통령 외교·안보특보가 2월 27일 미국 워싱턴DC에서 미국북한위원회(NCNK)가 주최한 북한문제 세미나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 연합

장담할 수는 없지만 매년 8월 실시하는 을지프리덤가디언(UFG) 훈련에도 상당한 악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높다. 세상만사가 처음 할 때는 어렵지만 그 뒤로는 갈수록 쉬워지는 것처럼 한미 연합훈련의 실질적 축소 또한 처음에만 한미 양국 내에서 상당한 반발을 살 뿐 이후에는 시간이 흐를수록 한미 연합훈련의 의미와 역량이 축소될 가능성이 높다.

일각에서는 “한미 연합훈련을 좀 축소했다고 동맹 관계에 문제가 생기겠느냐”고 반문할 것이다. 일리가 있다. 그러나 현재 미국 대통령이 도널드 트럼프이고, 그는 냉전 이후 유럽 국가들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만 기대어 자국의 안보역량을 대폭 축소한 것에 대해 강하게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한국에게도 경제와 안보 측면에서 강한 불만을 드러내고 있다.

이런 트럼프 정부가 “한미 연합훈련을 축소하자”는 문재인 정부의 요구에 다리를 붙잡고 애걸복걸 할까. 아닐 것이다. 미 국방부는 지난 1일(현지시간) 정례브리핑에서 문정인 특보의 발언과 관련해 “주한미군 주둔 결정은 한미 양국 대통령이 결정해야 할 사안”이라고 논평한 뒤 “그런데 주한미군은 현재 한국 정부의 초청으로 주둔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미군은 한국 정부가 원한다면 언제든지 떠날 수 있음을 내비친 것이다. 문정인 특보나 그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학자, 정치인, 관료들은 “미국이 자신들의 필요에 따라 한국에 머물고 있으니 우리가 그들에게 큰 소리를 쳐도 꼼짝 못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냉전이 끝난 뒤 중국이 급속히 성장하면서 이들과 땅을 맞댄 한반도의 ‘지정학적 이점’은 대폭 줄어들고 대신 일본이 과거 한국의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주장이 많이 나왔다.

문정인 특보의 주장대로 문재인 정부가 움직인다면, 트럼프 정부는 “우리가 잘못했다”며 매달리기보다는 “그래, 원하는 대로 해줄게”라며 주한미군을 철수시키고,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재협상하자고 역제안할 것이다.

한미상호방위조약이 NATO 조약만도 못한 ‘파트너 관계’로 격하되면 한국은 국제사회에서 ‘친중 블록’에 속한 소국으로 취급받게 될 것이다. 그 뒤로 벌어질 일은 독자들도 쉽게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 전경웅 미래한국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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