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세의 독일 통일 이야기 - 독일의 분단책임은?
권영세의 독일 통일 이야기 - 독일의 분단책임은?
  • 미래한국
  • 승인 2018.03.23 0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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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저명한 독일사학자 메리 풀브룩(Mary Fulbrook)은 그의 저서 '독일사'(The History of Germany 1918-2014 : Divided Nation)에서 독일 분단의 원인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 합니다.

"독일 분단에 대한 주된 책임은 누구에게 있을까? 이 의문에 대한 분명한 첫번째 답은 독일인 자신들이라는 것이다. 그들이 전쟁을 일으키지 않았다면, 미국과 소련에 대해 전쟁을 선포하지 않았다면, 전후 국제체제의 재편은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이유가 아닌 다른 점에서도 분단 책임의 상당부분은 전후의 독일인, 특히 서독인들에게 지워져야 마땅할 것이다. 즉, 당시 서독의 엘리트 정치인들은 독일 통일의 당위성에 대해 말만 했지 실제로는 자신들이 속한 서쪽 독일의 물질적 번영, 정치, 군사적 안전을 위하여 아무런 거리낌도 없이 동쪽의 동포들을 포기했다. 

그들은 분단을 막기 위한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은 것을 넘어서, 서쪽의 부분국가 건설의 기초가 되는 새로운 경제질서와 정치적 틀을 만드는 일에 적극적으로 협력했다..."
 

전 국회의원, 전 주중대사 권영세
전 국회의원, 전 주중대사 권영세

첫번째 부분에는 동의하지만 두번째는 동의할 수가 없네요.

1946년 9월 당시 미 국무장관이던 제임스 번즈의 슈투트가르트 연설에서 나타나듯이 서쪽의 점령국, 특히 영국과 미국은 패전국 독일에 대한 종전의 징벌적 접근 방식을 버리고 독일의 재건을 목표로 하기 시작하는데 비해 소련은 독일의 무력화, 독일 사회의 소비에트화, 그리고 자국 영향권내 편입을 목표로 가혹한 사회경제적 조치들을 취합니다. 1947년 6월 유럽재건을 위한 마샬플랜에의 참여도 거부합니다. 비록 서방측이 먼저 화폐개혁을 실시하고 이어 동독에 앞서 서독을 건국하지만 이는 사실상 소련의 '팽창정책'에 대한 맞대응에 불과하였습니다. 

소련의 이 팽창정책은 그리스 내전에서 보듯이 전 세계적으로 확장되고 있었고 이에 위협을 느낀 해리 트루먼 대통령은 1947년 3월 의회연설에서 유명한 '트루먼 독트린'을 선언합니다. 한동안 다른 입장이었던 프랑스가 미, 영과 같은 입장으로 선회한 것도 이런 흐름 때문이었지요. (이에 대해서는 소련의 의도와 위협수준을 과대평가한 결과란 주장도 있고, 여전히 독일의 오스트리아식 중립국 옵션도 있었다는 주장도 있지만 중부유럽(Mitteleuropa)의 중요성과 그곳을 기반으로 하는 '독일'국가의 무게를 고려할 때 타당치 않다고 봅니다. 

오히려 종전 전 연합국 사이에서 잠시 논의되었듯이 더 조각조각 나눠졌을 수도 있었겠지요.) 이런 세계사적인 큰 흐름을 패전국 독일의 일부 정치인들이 바꿀 수 있었다고 주장하는 것은 지극히 낭만적인 생각에 불과하지요.

같은 시기 분단된 우리의 경우도 이승만대통령의 남측 단독정부 수립결정에 대해 위와 같은 낭만적 이유로 비판하는 이들이  있지만 오히려 위와 같은 세계정세를 정확하게 먼저 읽어낸 노 정치인의 결정이 없었다면 지금의 대한민국은 없었을 것이고 우리는 지금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어렵고 혼란스러운 세상을 살고 있겠지요. 

전 국회의원, 전 주중대사 권영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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