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이 태워버린 미래 30년
촛불이 태워버린 미래 30년
  • 한정석 미래한국 편집위원
  • 승인 2018.04.30 09: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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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우병 촛불 10년 심층분석]

“미국을 상전으로 여기고 필요 이상의 아부를 한 결과다” 2018년 광우병 촛불 10주년을 맞아 이를 주도했던 참여연대 안진걸 시민위원장이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참여연대 안 위원장은 2008년 당시 광우병국민대책회의 공동상황실장이었다.

그는 이렇게 10년 전 광우병 촛불집회를 평가했다. “이명박 정부는 노무현 정부에 대해 실망하는 국민들의 분위기를 틈타서 경제를 나아지게 하겠다는 천박한 논리를 앞세워 급조된 정권이었다. 국민 생명에 대한 고민은 안중에도 없었다. 국민들로부터 사랑받는 대통령이 되어야 되는데 미국으로부터 사랑받는 대통령이 되어야겠다는 반국민적 철학이 노골적으로 드러난 사건이었다고 본다”<일요신문 2018. 4. 6>

최근 금감원장에서 낙마한 김기식, 그리고 공정거래위원장 김상조, 청와대정책실장 장하성 등이 활동했던 참여연대는 2008 광우병 촛불집회를 주도하면서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국민 생명권에 대한 위협이라고 주장했다.

지금도 미국을 ‘상전으로 여기고 아부한 결과’라고 하니 전형적인 80년대 좌익 운동권의 ‘반미신식민지국가론’의 시각이 여전하다.

그러면 10년이 지난 지금 사정은 어떤가. 지난 4월 9일 미국육류수출협회가 발간한 연간 수출실적보고서를 보면 지난해 한국의 미국산 쇠고기(고기 및 부산물 포함) 수입액은 총 12억2000만 달러(약 1조3000억 원)로, 일본(18억9000만 달러)에 이어 세계 2위였다.

한국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액이 2015년 이전까지 3∼5위권에 머물렀던 것에 비하면 크게 늘어난 금액이다. 수입량 역시 일본을 제치고 2위에 랭킹했다. 국가별 미국산 쇠고기 수입량을 국민 1인당으로 환산해보면 한국은 1인당 3.5㎏으로, 총수입량이 우리나라보다 많은 일본(2.4㎏), 멕시코(1.9㎏)보다도 많다.

미국 소를 먹으면 ‘뇌송송 구멍탁!’이라던 광우병이었다. “유전자형에 비춰볼 때 한국인의 광우병 발생 확률은 94%로서 영국인의 3배, 미국인의 2배”라거나 “SRM 0.1그램으로도 감염, 100% 사망” 등의 주장은 <MBC PD수첩>이 했다.

대법원은 이 주장들이 모두 ‘허위’라고 판시했다. 하지만 MBC PD 수첩 제작진이 국민에게 사과했다는 보도는 없었다. 2008년 ‘MBC PD수첩을 지키자’며 광우병대책본부가 주최한 미국 쇠고기 수입 반대 집회 단상에 올라 찬조 연설하고 노래했던 연예인 김미화 씨는 당시 MBC 라디오 시사프로그램  <세계는, 우리는>에서 광우병 시위대의 주장을 편드는 진행을 여러 차례 했고 이러한 점은 공정언론시민연대(공언련·공동대표 김우룡)로부터 비판을 받았다.

그랬던 김미화 씨는 최근 서울 시내에 미국산 수입 쇠고기 전문 식당을 열어서 또 한번 세간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물론 이와 관련해 김미화 씨는 아무런 변명도 하지 않았다.

광기의 난동이 민주 촛불?

2008년 9월 한국경제연구원이 발표한 ‘촛불시위의 사회적 비용’에 따르면 청계광장, 종로 등 시위장소 주변 상인들은 영업손실 등으로 9042억 원 상당의 재산상 손해를 입었다.

불법폭력시위로 인한 사회경제적 손실은 총 3조7513억 원에 달했으며 이는 2007년 국내총생산(GDP)의 0.4%에 해당하는 규모였다. 시위를 저지하기 위해 동원된 경찰력만 7606개 중대, 연인원 68만4540명이 투입됐으며 시위 참가자도 1476명이나 형사 입건됐다.

이중 43명은 구속 기소되고 165명은 불구속 기소됐다. 또 1050명이 벌금형에 약식 기소됐고 17명은 기소중지 처분됐다. 황당한 루머로 인해 수많은 시민들이 전과자가 된 셈이다. 하지만 진보 진영 내에서 이 사건에 대한 반성은 나오지 않고 있다.

오히려 광우병 촛불집회로 인해 국민의 생명이 더 안전해졌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그렇다면 같은 시기에 중국에서 터진 ‘멜라민 분유’사건은 왜 그리 조용했던 것일까? 결국 10년 전 광우병 촛불 시위는 反美라는 좌파적 이념에 더해진 보수 정부에 대한 증오, 그리고 가짜뉴스와 루머를 동원한 선동이 빚어낸 국력 손실이라는 점이 분명해진다. 미국 쇠고기의 안전성은 사실 광우병 촛불시위의 본질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2000년대를 기점으로 시작된 촛불시위는 어떤 성격을 가진 것일까. 이 문제는 진보진영에서 많은 논쟁과 담론을 생산했다. 80년대 학생운동이나 90년대 노동운동과는 전혀 그 성격이 달랐기 때문이다.

‘촛불시위’ 본질은 ‘미숙한 민주주의’

2002년 오마이뉴스의 기자였던 ‘앙마’(닉네임)가 ‘효순이 미선이 추모 촛불시위’를 제안하면서 시작되었던 ‘촛불’은 2003년 이라크 전쟁 반대, 반전.평화 운동을 내세웠다.

그후 2004년 탄핵반대 촛불집회를 거쳐 2008년 5월 2일 청계천에 ‘미국소 반대’로 다시 타올랐다. 어처구니없게도 광우병 촛불 제안자는 ‘안티MB카페’에서 ‘탄핵서명운동’을 주도하고 있었던 고등학생 ‘안단테’였다.

이후 촛불시위는 2008년 8월 9일 101차의 ‘촛불문화제’라는 이름으로 3개월 넘어 지속되었고 2차 국면은 2008년 10월 18일 ‘민생·민주주의를 위한 촛불문화제’로, 3차 국면은 2009년 4월 18일 밤 용산 참사 현장에서 이뤄진 ‘촛불시민연석회의’의 출범으로 이어졌다.

이러한 촛불시위에 대해 진보 진영 학자들은 대체로 ‘온라인 네티즌의 오프라인 군중화’라는 점에 동의한다. 즉 온라인에서 고립되어 있던 개인들이 동질적 가치와 정서로 연결되면서 ‘광장’으로 나오게 되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촛불’은 온라인으로부터 시작되어 오프라인으로 확장됐다.

대중행동에 대한 제안은 온라인으로 연결되어 있는 네트워크를 통해 전국적으로 확산되었으며 다양한 집회 현장의 실시간 움직임과 대중행동이 온·오프라인의 결합을 통해 제공되었다.

다음 카페, ‘아고라’로부터 시작된 다양한 형태의 정보 교환과 취합, 그리고 토론과 결정 과정들은 그대로 ‘촛불’ 현장에 반영되었다. ‘아고라’는 5월 24일부터 독자적인 거리 시위를 펼쳤으며 ‘82쿡닷컴’, ‘마이클럽’, ‘소울드레서’ 등 다양한 형태의 온라인 공동체들이 참여해 각자의 방식으로 다양한 시위의 양식들과 ‘패러디’를 생산했다.

이러한 과정에서 촛불군중들의 행동은 과거 민주화 운동과는 판이하게 달랐다. ‘아프리카TV’ 등이 24시간 인터넷 생중계를 시작하면서 진보신당의 ‘칼라TV’, ‘라디오21’, ‘참세상TV’, ‘6·15TV’, ‘오마이TV’ 등과 같은 인터넷 실시간 동영상들이 등장했다.

개인용 노트북이나 디카, 캠코더, 휴대폰 카메라 등을 통해서 현장의 생생한 움직임이 실시간으로 전달되었으며 그러한 가운데 정부나 메이저 언론이 공개하지 않았던 내용들이 대중들에게 폭로 형태로 제기되면서 역으로 KBS나 MBC, SBS, 중앙일간지로 기사화되었다.

이러한 새로운 집단행동은 이전에는 없는 현상이었다. 강준만 교수는 촛불을 보는 시각을 크게 세 가지로 나눴는데 첫째는 당시 한나라당과 보수적인 지식인들이 보는 ‘집단난동’이라는 관점. 둘째는 촛불집회에 대한 일방적인 찬양론, 셋째는 촛불집회의 긍정성을 인정하면서도 그 한계를 지적하는 시각이다.

예를 들어 최장집 교수의 경우 촛불집회에 대해 대의제를 일탈함에 따른 ‘미성숙한 민주주의’라는 시각이었던 반면, 많은 진보진영 내 학자들은 ‘새로운 주권 행사자들의 출연’으로 보는 시각들이 있었다.

이러한 진보 내 서로 다른 시각은 그러나 2012년 박근혜 정부에 대한 탄핵심판 과정에서 ‘정의로운 민주정신’으로 규정되기에 이른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월 10일 신년기자회견을 열고 “우리 국민은 민주주의 촛불을 더 크고 넓게 밝히고 있다”며 “촛불정신을 국민의 삶으로 확장하고 제도화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또 “지난해 우리 국민들이 들었던 민주주의의 촛불이 국민들의 삶으로, 우리 사회 곳곳으로 퍼져가고 있다”고도 주장했다. 더불어민주당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 1주년을 맞이한 지난 해 12월 9일 “촛불의 정신이 실현될 수 있는 정부, 대한민국이 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대변인은 올해 3월 1일 99주년 삼일절을 기념하며 “삼일절 정신이 촛불정신으로 계승됐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러한 여당과 문재인 대통령의 촛불에 대한 인식은 정치노선에서 ‘민중주의’에 대한 심화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동시에 헌법적 가치보다 포퓰리즘을 자신들의 정책노선에 적극 활용할 것임을 암시한다고도 하겠다. 최근 드루킹의 댓글조작 사건은 촛불시위의 동인(動因)으로서 포털과 같은 미디어에 여론조작이 중요한 정치적 가치를 진보진영에 제공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 미래한국 고재영
@ 미래한국 고재영

그렇다면 그 결과는 무엇일까. ‘소크라테스의 독배’라는 역사적 사건은 포퓰리즘 광장정치의 결과가 무엇인지 그 교훈을 준다.

촛불군중이라는 신유목민,

문재인 정부는 안전할까 그리스 아테네는 솔론의 개혁 이후 민주정과 귀족정이 대립하기 시작했다.

참주의 출현을 막고자 ‘도편추방제(ostracism)’를 도입하고 선거구 개혁을 통해서 평의회를 창설하고자 했던 민주개혁파들은 페리클레스의 개혁이 낳은 과두제와 갈등을 빚었다.

최초의 평민 출신 지도자가 된 클레온은 데마고기와 중우정치라는 말을 낳았으며 30인의 과두정에 맞서 민주정을 회복시킨 아니토스 등은 ‘소크라테스’를 민중법원에 고발함으로써 그의 죽음을 가져왔다.

소크라테스는 무지한 대중들에게 참정권이 주어지는 민주정을 신뢰하지 않았다. 그 대신 철학적 사고를 할 수 있는 현자들의 과두정을 지지했던 것. 소크라테스는 ‘절대적 옳은 가치를 지닌 이들의 옳은 결정’을 지지했기에 벌금을 내면 풀어주겠다는 제의를 거절하고 독배를 들었다.

이 사건은 우리가 국가에서 ‘헌정가치’라는 절대성이 중우(衆愚)정치에 의해 유린될 경우 전체주의와 파시즘이라는 괴물에 사람들의 자유가 희생된다는 점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점은 <맹신자들>라는 책을 썼던 에릭 호퍼나 이에 앞서 <군중심리>를 썼던 르봉에 의해 경험적 사고로 성찰된 바 있는데 호퍼는 ‘대중운동은 좌절한 밑바닥 인생들로부터 시작’된다는 사실을 생생하게 그리고 있다.

아울러 르봉은 군중들의 집단행동에는 숭고함의 이름으로 부도덕과 비양심이 자행됨을 프랑스 시민혁명에 대한 관찰로 예리하게 드러내기도 했다. 촛불 대중들에 대해 보다 선명한 이해를 제공하는 이는 바로 디지털 유목민의 개념을 제시한 피에르 레비라 할 수 있다.

그는 출처 불명의 정보를 넘나들면서 일관된 시·공 이동경로를 지니지 않은 네티즌 세대를 일컬어 “우리는 다시 유목민이 되었다”라고 주장하고, 유령처럼 출몰하는 이들을 ‘신유목민들’이라고 부른다. 유목민은 농경민과 달리 정착지를 버리고 초원을 찾아 끊임없이 이동한다.

그러한 유목민의 특성을 가진 신유목민은 자신이 어디로 흘러가게 될지를 명확하게 예측할 수 없으며 이들은 제도권의 논리에도, 보수층의 주장에도, 진보층의 주장에도 얽매이지 않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한마디로 그들에게 영원한 것은 없으며 신유목민에게는 영원한 이념도 불변의 장소도 없다고 할 수 있다. 촛불이 민주주의 혁명 정신이라고 치켜세우는 문재인 정권 역시, 촛불 유목민들로부터 거부되지 말라는 보장도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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