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평화’에 버림받은 북한인권법
‘남북평화’에 버림받은 북한인권법
  • 백요셉 미래한국 기자
  • 승인 2018.05.31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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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북 정상회담을 앞두고 지난 4월 24일 미 상원이 북한인권법을 2022년까지 연장하는 재승인 법안을 표결 없이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이에 북한은 5월 4일과 11일에 걸쳐 노동신문을 통해 미국을 맹비난했다.

앞서 미국 정부는 미·북 회담에서 북한인권 문제를 의제로 삼을 것임을 밝힌 바 있다. 미국은 과거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 때인 2004년 10월 처음 북한인권법을 제정했으며 2008년과 2012년 두 차례에 걸쳐 법안을 연장했다.

미·북 정상회담이 아직 열리지 않은 상태지만 미국은 북한에 억류됐던 한국계 미국인 3명 모두를 자국으로 송환했다. 아베 일본 총리는 ‘김정은을 만나면 일본인 납북자 문제를 상정해 줄 것’을 문재인 대통령에게 부탁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난 4월 27일 남북 정상회담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북한인권 문제와 한국인 납북자, 북한 역류 한국인 송환 문제 등에 대해 한마디 언급도 없었다. 오히려 김정은이 탈북자와 실향민을 거론하는 모양새를 보였다.

한국에서 북한인권법은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에 의해 2005년 최초로 발의된 후 10여 년 동안 통과되지 못하고 있다가 지난 2016년 3월에 와서야 국회 문턱을 겨우 넘어섰다. 2016년 9월부터 정식 발효된 국내 북한인권법은 실행 2년이 돼가는 지금까지 별다른 역할을 하지 못한 채 국민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져가고 있다.

북한인권법 중 핵심 조항이라고 할 수 있는 제10조(북한인권재단의 설립)에는 ‘정부는 북한인권 실태를 조사하고 남북인권대화와 인도적 지원 등 북한인권증진과 관련된 연구와 정책개발 등을 수행하기 위하여 북한인권재단(이하 “재단”이라 한다)을 설립한다’고 되어 있지만 여야 정치권이 재단 이사 추천을 두고 갈등을 빚으며 현재까지 재단 설립이 지연되고 있는 상황이다.

판문점 회담에 밀려난 북한인권재단 설립

문제는 북한인권법 제12조(재단 임원의 구성)에 대한 정치권의 의견 충돌이다. 북한인권법 제12조에는 ‘재단에는 이사장 1명을 포함한 12명 이내의 이사를 두며, 이사는 통일부장관이 추천한 인사 2명과 국회가 추천한 인사로 구성하되, 국회가 이사를 추천함에 있어서는 대통령이 소속되거나 소속되었던 정당의 교섭단체와 그 외 교섭단체가 2분의 1씩 동수로 추천하여 통일부장관이 임명한다’고 규정되어 있다.

2016년 당시 야당이었던 민주당이 야당측 이사 추천을 미루며 지연되기 시작한 재단 설립은 현재까지도 여전히 교착 상태이다. 여기에 최근 조성된 남북평화무드로 인해 북한인권재단 설립 문제는 정치권은 물론 국민들의 관심 밖으로 밀려난 상황이다. 발의 후 10여 년 동안 버림받다가 (2016년 당시)야당 측의 요구를 대부분 수용해 힘들게 통과된 북한인권법이지만 사실상 법안 통과의 의미와 실효성이 무의미해져 가고 있다.

통일부 북한인권과의 설명에 의하면 자유한국당의 2016년에, 그리고 민주당이 2017년에 북한인권재단 이사 추천을 마쳤지만 국민의당 분당 사태를 맞으며 야당들의 혼선이 빚어졌고 현재는 법조항에 규정된 인원(상근이사 2명을 제외한 10명)을 초과한 상태라고 한다. 하지만 여야가 초과된 추천이사 후보들에 대한 합의가 이뤄지지 않고 있는 상태라는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해 자유한국당 외통위 측은 ‘정부와 여당이 북한인권재단 설립에 대한 의지가 있는지부터 의심스럽다’는 입장이다. 박근혜 정부 때인 2016년에 자유한국당(새누리당)은 이사 추천을 이미 했지만 당시에 야당이었던 민주당이 얼토당토 않는 이유를 들어 이사 추천을 거부하면서 시간을 끌었다는 것이다.

그 후 정권이 바뀌고 나서 이번에는 여당이 된 민주당이 문제의 북한인권법 제12조(재단 임원의 구성) ‘대통령이 소속되거나 소속되었던 정당의 교섭단체와 그 외 교섭단체가 2분의 1씩 동수로 추천’이라는 근거를 들어 일방적으로 이사를 추천해 버렸다. 야당 시절 이사 추천 거부의 전제조건이었던 법조항 제12조가 민주당이 여당이 된 현재는 이사 추천을 일방적으로 해버릴 수 있는 근거로 작용한 것이다.

여당인 민주당에서 이미 ‘자신들의 몫’으로 전체 이사의 절반(5석)을 가져간 상황에 그 외의 교섭단체인 야당들이 헤쳐 모였을 거듭하면서 나머지 절반(5석)에 대해 야당 간 추천 이사 수를 협의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된 것이다.

한국당 관계자는 “전임 박근혜 대통령은 재임 기간 북한인권 개선에 대해 줄기차게 언급을 해왔었지만 새 대통령은 그런 점이 전혀 보이지 않고 또 ‘북한인권재단 설립과 관련해 대통령이 직접 의지를 표명하거나 그럴 의향이 있는지’에 대해 통일부에 질의도 했지만 답변을 잘 못하더라”면서 “재단 설립에 대해 대통령이 의지를 보여야 국회에서도 힘을 받을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한편 지난 3월 초 ‘통일부가 북한인권재단 이사진 구성을 촉구하는 공문을 국회에 발송했다’는 언론 보도가 있었다. 당시 백태현 통일부 대변인은 “여야가 북한인권법에 초당적으로 합의한 만큼 북한인권재단 출범에 대해 대승적 차원에서 당부드린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정치권은 정부에, 정부는 오히려 정치권에 ‘북한인권재단 이사진 구성을 촉구’하고 있는 판국이다. 과연 정부와 정치권 중 재단 설립 지연의 책임이 어느 쪽에 있는지 국민은 아리송할 뿐이다. 

연간 7억 원 공중분해, 책임은 누가?

북한인권법 제정으로 인해 국회에서 통과된 북한인권재단에 대한 2017년 예산은 약 118억 원, 하지만 정작 예산을 집행해야 할 기구가 없는 기형적인 현상이 2년째 지속되고 있다.

북한인권법이 시행된 지 1개월 후인 2016년 10월 통일부가 서울 마포구에 재단 사무실을 마련하고 직원 2명까지 파견했지만 재단 설립이 지연되면서 매월 6300만 원에 달하는 고액의 임대료만 나가고 있는 어이없는 상황이다. 빈 사무실 임대료로 연간 7억 원 가량을 공중분해 시키면서 정작 그 누구도 책임을 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북한인권재단 설립이 무기한으로 지연됨에 따라 미국과의 대북 압박 공조에도 악영향을 미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올해 1월 취임한 트럼프 미 대통령은 취임 후 첫 연두교서에 장애인 탈북자 지성호 씨를 초청하고, 백악관에서 탈북자들을 만나는 등 북한인권 문제를 중시하고 있는 반면 한국은 이미 발효된 북한인권법의 시행조차 어려워진 상태이다.

문 대통령은 취임 후 ‘남북평화’를 줄기차게 주장해 왔다. 대신 대통령의 모든 공개 발언에서 ‘북한인권’이라는 표현을 전혀 들어 볼 수 없었다. 문재인 대통령에게 ‘남북평화’와 ‘북한인권’은 공존이 불가능한 수화상극(水火相剋)으로 인식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궁금해지는 부분이다.

여야가 합의해서 통과시킨 북한인권법이다. 합의 당시 야당이었던 민주당 측이 그동안 주장해 온 ‘북한인권증진’이라는 부분과 ‘대북인도적지원’ 조항 등 많은 부분이 양보·수정된 법이다. 그리고 연간 100억이 넘는 예산이 책정되고 있는 실효적 법이다.

불안한 남북평화무드 속에 해마다 공중분해되고 있는 수백억의 국민혈세와 그 재정지원이 이뤄지지 않아 궤멸되어가는 북한인권단체들, 그로 인해 개선이 더 불가능해지는 북한인권에 대한 총체적 책임에서 대통령은 과연 자유로울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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