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임진모의 '한국인의 팝송 100' 우리는 왜 이 노래를 사랑하는가
[신간] 임진모의 '한국인의 팝송 100' 우리는 왜 이 노래를 사랑하는가
  • 김민성 미래한국 기자
  • 승인 2018.06.05 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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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임진모는 대중음악 평론가. 팝 칼럼니스트로 중학교 때 라디오의 음악에 이끌려 음악평론을 꿈꿨다. 대학졸업 후 6년 7개월 기자생활을 했으며 1991년부터 음악 관련 글말 활동을 하고 있다. 웹진 이즘을 운영하고 있으며, 그간 <팝 리얼리즘 팝 아티스트>, <세계를 흔든 대중음악의 명반>, <우리 대중음악의 큰 별들>, <팝, 경제를 노래하다> 등의 책을 펴냈다

'검은 안식일'이라는 그룹 이름처럼 1970년대 헤비메탈 밴드 블랙 사바스는 반종교적이고 음산한 어둠을 강렬한 사운드로 전달했다. (중략) 'Paranoid', 'War pigs', 'Iron man', 'Heaven & hell', 'Sabbath bloody sabbath', 'Children of the grave'는 헤비메탈의 역사를 상징하는 명곡으로 인정받았고, 무대에서 이 노래들을 연주하면 관객들은 리더 오지 오스본을 절대 교주로 추종하는, 광적인 종교집단의 의식 같은 광경을 연출한다. 국내에서는 상황이 180도 다르다. 

블랙 사바스 사운드 틀에 어울리지 않는 처연한 록발라드 'Changes'와 'She's gone'이 사랑을 받은 반면 그들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Paranoid'나 'Iron man'은 변방으로 밀렸다. 1995년 11월 그들이 내한공연을 가졌을 때 공연주최측은 '한국인의 팝송'인 'Changes'와 'She's gone'은 불러야 한다고 했지만 기타리스트 토미 아이오미는 연주를 안 한지 오래됐다며 난색을 표했다. 결국 두 곡 중에 최소한 하나는 불러야 한다는 주최 측의 간절한 설득으로 부랴부랴 연습해서 관객들은 가까스로 'Changes'를 들을 수 있었다는 일화를 남긴다. 'Changes'의 국내 위상을 보여주는 단적인 증거. 

그런데 2003년에 오지 오스본과 그의 딸 켈리 오스본이 듀엣으로 불러서 뒤늦게 이 곡이 영국차트 정상을 차지했다. 한국 음악 팬들의 안목은 이렇듯 미래지향적(?)이다!  

폴 앵카는 1970년대 중반에 두 번째 전성기를 맞이했다. 1974년에 '(You're) Having my baby'가 빌보드 넘버원을 차지했지만 국내에서는 이 싱글의 뒷면에 있던 'Papa'가 솟아올랐다. 식당을 경영했던 아버지에 대한 실제 이야기를 담은 곡에는 자신을 침대에 눕혀 이마에 뽀뽀해주시던 추억,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슬퍼하시던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담겨있다. 이수미가 '아버지'란 제목으로 번안해 부르면서 엄하고 권위주의적이었던 우리네 아버지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는 계기를 만들어주었다. 폴 앵카의 'Papa'는 이 세상 모든 남자들에게 바치는 사부가다. 

사실 스모키에게도 오리지널이 아닌 리메이크 곡이었다. 그들을 발굴한 유명 작곡파트너 마이크 채프만과 니키 친이 '뉴 월드'라는 호주 그룹에 먼저 주었고 그들은 1972년에 이 곡을 녹음해 선보였다. 24년 동안 짝사랑 했던 옆집 여인 앨리스에게 고백 한번 해보지 못하고 떠나보내는 소심하고 못난 남자, 그리고 진짜 그를 눈여겨본 또 다른 여성이라는 삼각관계 스토리. 이러한 삼자간 순애보 이상으로 낭만적이고 경쾌했던 멜로디는 한국 땅을 쓰나미처럼 덮쳤고 이후 전파는 스모키 이름으로 나온 'If you think you know how to love me', 'I'll meet you at midnight', 'Mexican girl' 그리고 'What can I do' 등의 곡들에 완전 초토화되었다. 우리한테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보다 더 유명한 앨리스는 '옆집에 사는 앨리스'였다. 

'징기스칸'의 경우는 라디오와 음반만이 아니라 경기장의 응원가로도 당대를 지배했다. 그만큼 신나게 '떼'창하고 '떼'춤 추기에 '딱'이었다. 그 재미는 해본 사람은 안다. 조경수와 나미 등 인기가수들이 이 곡을 개사해 불렀다. 1979년 우리의 팝송은 '징기스칸'과 빌리지 피플의 'YMCA'였다. 그룹 징기스칸으로는 아니지만 끝내 이 그룹 출신의 레슬리 만도키는 88서울올림픽을 앞두고 한국에 납시어 헝가리 그룹 '뉴튼 패밀리'의 에바와 듀엣으로 'Korea'를 발표했다. 한국도 그들의 사정권에서 비켜나질 못했다.

'팝페라'의 시작이었다고 할까. 그 누구도 세계적인 테너 플라시도 도밍고와 컨트리 가수 존 덴버가 어울림을 빚어내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지만 결과는 의외의 환상적 케미를 이뤄냈다. (중략) 지금 들으면 가곡을 듣는 느낌도 들지만 1980년대 초반에는 신선한 파격이었다. 그런데 이 곡의 차트 순위는 어땠을까. 워낙 친숙해 대박으로 여기는 사람이 많지만 미국에선 팝과 성악의 크로스오버가 가슴에 당기지 않았는지 빌보드 59위에 불과했고, 겨우 7주간 랭크되었을 뿐이다. 그럼에도 우리에게는 대형 애청곡이 된 것은 전통적으로 통하는 '사랑 노래'인데다 아무래도 중고등학교 음악시간에 고전음악을 주로 접해 한국인 누구나 알게 모르게 클래식 세포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아름다운 사랑의 가사 덕분에 주로 발렌타인 데이나 화이트 데이에 신청이 많았고 상대적으로 여성들의 호감이 컸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포크가수 이동원과 테너 박인수가 선사한 1989년 천상의 듀엣하모니 '향수'는 한국의 'Perhaps love'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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