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진보와 보수, 문제는 프레임이다
[신간]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진보와 보수, 문제는 프레임이다
  • 김민성 미래한국 기자
  • 승인 2018.06.26 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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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지언어학을 창시한 세계적인 석학 조지 레이코프가 언어학을 현실 정치에 적용한 화제의 베스트셀러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의 10주년 전면개정판. 이 책은 “왜 평범한 시민들이 자기 이익에 반하는 보수 정당에 투표하는가?”라는 진보의 해묵은 의문에 답하며, 사람들이 진실을 알게 되면 올바른 선택을 할 것이라는 계몽주의적 신념이 왜 현실에서 통하지 않는지 명쾌하게 분석하여 여의도 정치권과 의식 있는 시민들의 필독서로 자리 잡았다. 

EBS ‘지식채널 e’를 기획한 김진혁 교수(전 EBS PD)가 이 책을 읽고 제작한 ‘frame’ 편은 큰 화제를 낳았고, 2012년 미국과 한국의 대선을 동시에 앞둔 시기 방영된 손석희 앵커의 <다큐프라임> ‘킹메이커’ 편에서는 이 책의 내용이 주요 레퍼런스가 되었다. 저자는 어떤 대상보다도 특히 언론인과 미디어 종사자가 이 책을 반드시 읽기를 바랐는데, 그의 희망대로 ‘프레임’은 한국에서도 학계의 울타리를 벗어나 언론에서 일상적으로 접하는 용어가 되었다. 또 유권자(소비자)의 마음이 작동하는 방식을 다룬다는 점에서 비단 정치뿐만 아니라 홍보, 마케팅, 커뮤니케이션 분야에서도 기본서가 되었다. 

원서 기준으로 초판은 144페이지였으나 전면개정판은 192페이지로 분량이 대폭 늘어났으며 10장으로 구성된 초판에서 두 장이 삭제되고 개정판에 여덟 장이 추가됨으로써, 총 16장으로 구성된 개정판에서 절반이 완전히 새로운 내용이다. 기존의 여덟 장도 현 시점의 새로운 자료와 새로운 분석으로 업데이트했다. 

이 외에도 한국어판에는 초판의 번역자가 감수자와 논의하여 더 정확한 용어와 문맥으로, 추가된 내용은 물론 초판에 있던 내용도 완전히 새롭게 번역했다. 가령 초판에서 ‘liberal’은 최근 미국에서 민주당 성향의 진보 인사를 일컫는 경향이 있어 ‘리버럴’로 표기했으나, 개정판에서는 있는 그대로의 의미를 살려 ‘자유주의자’로 번역하였다. 해제 원고에서는 미국의 ‘세금 구제’와 한국의 ‘세금 폭탄’, 유기적 인과관계를 인정한 미국의 ‘담배 소송’과 그렇지 못한 한국의 상황 등 미국적 맥락을 한국의 상황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는지 상세하게 다루었다. 

국내와는 달리 영미권에서는 개정판 출간이 흔하지만, 이번처럼 완전히 새로 쓰다시피 하는 경우는 매우 이례적이다. 조지 레이코프는 머리말에서 이렇게 밝힌다. 민주당의 오바마는 우월한 프레임 구성으로 2008년 대선에서 승리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공화당은 금세 프레임 전쟁에서 주도권을 되찾았다. 레이코프는 이 개정판의 목표가 선거 이후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왜 민주당이 다시 프레임 전쟁에서 지게 되었는지, 그래서 무엇을 해야 할지를 밝히는 것이라고 썼다. 

우리나라에서도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가 널리 읽혔음에도 진보를 표방하는 사람들이 ‘세금폭탄’, ‘무상급식’처럼 보수의 프레임을 활성화하는 언어를 사용하며 막상 자신의 가치를 정확한 프레임에 담아내지 못하고 있다. 조국 교수는 분량과 내용에서 대대적으로 보강된 전면개정판 출간을 환영하며 “자기주도 프레임 없이 보수의 프레임을 비판하고 반대하는 데만 급급한, 자족적이고 따라서 무능한 진보에게 승리는 오지 않는다. 유권자는 자기의 이익보다 정체성과 가치관에 따라 투표한다는 점을 망각하고 ‘탈이념’, ‘중도’ 운운하는 진보는 신기루를 찾는 격이다. 보수 집권 10년을 경험하며 답답함을 느끼는 많은 분들이 이번 10주년 전면개정판을 읽고 새로운 10년을 준비할 수 있기를 강력히 희망한다”고 밝혔고, 황광우 고전연구원장은 “세금 폭탄? 이 한마디의 은유가 대통령의 얼굴을 바꾸다니…. ‘프레임이 정책에 앞선다’며 프레임의 음모를 폭로한 언어학자가 있다”라고 이 책을 추천했다. 

프레임이란 무엇인가? 왜 모든 정치는 도덕적인가? 

코미디언 지미 킴멜은 쇼의 제작진을 시켜 로스앤젤레스 거리에서 행인들에게 ‘오바마케어’와 ‘저렴한 건강보험법’ 중 어느 쪽을 더 선호하는지 물어보았다. 압도적 다수가 오바마케어는 싫지만 저렴한 건강보험법은 좋은 아이디어라 생각한다고 답했다. 그들 대부분은 이 두 개가 같은 법안임을 몰랐다. 극우 세력은 ‘오바마케어’라는 새로운 이름을 건강보험법안에 붙이고 정부가 (보험 산업을) 장악하고, 노인들의 연명 치료 중단 여부를 마음대로 결정하는 ‘사망선고위원회’를 만든다는 부정적인 프레임을 대중에게 주입했다. 

프레임이란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형성하는 정신적 구조물이다. 우리가 어떤 단어를 들으면 우리 뇌 안에서 그와 관련된 프레임이 활성화된다.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라고 말하면 사람들은 코끼리를 생각하게 된다. 어떤 프레임을 부정하면 그 프레임이 활성화된다. 그리고 프레임은 자주 활성화될수록 더 강해진다. 그러므로 정치 담론에서 상대편의 언어를 써서 그의 의견을 반박할 때, 그 말을 듣는 사람들의 머릿속에서는 상대편의 프레임이 더 활성화되고 강해지는 한편 나의 관점은 약화된다. 그래서 진보는 보수의 언어가 아닌 진보의 언어를 써서 진보의 신념을 말해야 한다. 

모든 정치적 방안은 옳다는 가정 하에 제시한다. 그래서 모든 정치는 도덕적이지만, 도덕적 관점은 각각 다르며 도덕적 신념의 상당 부분은 무의식적이다. 미국의 정치 진영을 둘로 가르는 것은 곧 도덕의 차이다. 보수는 엄격한 아버지의 도덕이, 진보는 자상한 부모의 도덕이 토대가 된다. 미국 정치에서 동성 결혼과 낙태가 그토록 중요한 쟁점이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프레임을 재구성하는 것이 왜 사회 변화인가? ‘정치적 중도’란 존재하는가? 

공적 담론의 프레임을 재구성하는 데 성공하면, 대중이 세상을 보는 방식을 바꾸게 된다. 프레임 재구성은 우리와 생각이 비슷한 이들이 이미 무의식적으로 믿고 있는 것에 접근하여 이를 의식의 수준으로 끌어올리고, 그것이 대중의 담론 속으로 들어올 때까지 반복하는 일에 가깝다. 이 일은 하루아침에 일어나지 않는다. 이것은 부단한 과정이며, 반복과 집중과 헌신이 필요한 일이다. 

미국이나 우리나라에는 보수도 진보도 아닌 이른바 ‘중간층’이 광범위하게 존재한다. 레이코프는 이들을 ‘이중개념주의(biconceptualism)’ 소유자들로 정의한다. 중간층에 해당하는 도덕 체계나 정치적 입장은 없다. 스스로를 중도라 생각하는 이중개념 소유자들도 특정 사안에 대해서는 뚜렷하게 보수적이거나 진보적인 의견을 갖고 있다. 그래서 조지 레이코프는 ‘중간층’에게 호소하기 위해 오른편으로 이동하지 말라고 조언한다. 오른편으로 이동하면 두 가지 측면에서 해롭다. 우선 진보적 지지층을 소외시키고, 이중개념을 소유한 유권자들 머릿속의 보수주의 프레임을 활성화한다. 보수적 프레임과 진보적 프레임을 모두 갖고 있는 이중개념 소유자들의 머릿속에서 어느 쪽 프레임을 더 활성화하는가가 선거에서 결정적 변수가 된다. 

자상한 부모 유형의 도덕, 즉 보살핌과 배려의 도덕을 갖고 있는 진보로서는 이중개념 소유자들에게 타인에게 느끼는 감정이입과 책임에 대해 더 많이 이야기하면 할수록,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 그들에게 가장 마음을 쓰고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마음 쓰는 대상에 대해 어떤 책임감을 느끼고 있는지, 그러한 책임을 어떻게 실천하는지 물어볼 수 있다. 이렇게 해서 그들의 마음속에서 ‘보살핌의 모형’을 최대한 활성화한다. 상대방을 존중하고 예의바르게 대하는 것도 의사소통 차원에서 ‘보살핌 모형’을 활성화한다. 

아직 프레임으로 구성되지 않은 최신 쟁점들 

개정판에서 저자는 아직 프레임으로 구성되지 않은 최신 쟁점들을 어떻게 프레임에 넣어야 할지 논의한다. 

자유

보수주의의 메시지가 일상을 지배하고 있으며 급기야 보수주의가 '자유'라는 단어를 소유하게 되었다. 민주주의에서 자유라는 단어는 무척 중요하며, 선거에서든 일상적인 의사결정에서든 대부분의 정치적 담론의 주제는 자유에 관한 문제로 귀결된다. 저자는 진보의 가치를 적극적으로 자유와 연결시켜 사고를 당하거나 질병에 걸려도 인간답게 살 자유, 빈곤한 가정의 아이들도 동등한 교육의 기회를 누릴 자유, 인종·성별·성적 지향성에 관계없이 동등한 권리를 누릴 자유 등을 진보의 프레임으로 구성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부의 양극화에 대한 피케티의 통찰

전 세계를 강타한 토마 피케티의 연구는 아직 진보의 프레임으로 구성되지 않았다. 노동에 의한 생산적 부와 투자 수익을 통한 재투자 부의 비율로 양극화의 심화 정도를 알 수 있는데, 피케티의 연구에 따르면 20세기 초반까지 극심하던 부의 편중은 1,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재투자 부가 상당 부분 사라지면서 급속히 완화되었다. 그러나 80년대 이후 다시 재투자 부가 생산적 부를 초과하며 부의 양극화가 심화되는 양상이다. 1976년 미국에서는 상위 1퍼센트가 부의 19.9퍼센트를 소유하고 있었으나 2010년 35.4퍼센트로 늘어났다. 피케티는 재산세(부유세)를 통한 정치적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부의 편중은 정치적 영향력도 편중되게 만들어 변화를 더욱 어렵게 만든다. 또한 더욱 강력해진 투자자들의 영향력에 의해 기업의 경영자들이 꼭 필요한 최고급 인재만 회사의 자산으로, 나머지 노동자들을 써먹고 버리는 자원으로 대우함으로써 노동의 질과 만족도를 떨어뜨리고 있다. 급속한 양극화는 불평등뿐만 아니라 공적 자원의 감소, 교양 교육의 쇠퇴, 노동의 질 악화 등 여러 유기적 효과를 낳는다는 점을 감안하여 프레임에 넣어야 한다. 

기업의 지배

2010년 미국 법원은 기업이나 단체의 정치 자금 지출을 제한한 법률이 위헌이라고 판결했다. 기업을 규제하던 법률들이 하나둘씩 위헌 판결을 받게 됨에 따라 기업이 초법적인 권리를 누리게 되면서 기업의 사회 지배가 가속화되고 있다. 피케티는 정치적 해법이 필요하다고 지적하지만, 정치가 대중이 아니라 상당 부분 기업의 로비에 의해 좌우되는 지금 이 해법의 실행 가능성은 크게 줄어들었다. 보수주의자들은 ‘정부’가 자신들의 자유를 빼앗는다며 비난하곤 한다. 하지만 기업의 지배는 ‘자유’를 훨씬 더 많이 빼앗아갈 것이다. 기업의 지배는 중대한 쟁점이지만 아직 대중의 머릿속에 프레임으로 구성되지 않았다. 

프레임에 대한 오해와 궁금증에 명쾌하게 답한다 

조지 레이코프는 새로 추가된 2부에서 프레임에 대한 각종 오해와 궁금증들에 대해 명쾌하게 설명하며 상세한 근거와 전제들을 제시한다. 그는 어떤 단체에서 지구 온난화 관련 법안에 대한 프레임을 ‘다음 주 화요일까지’ 짜달라는 요청을 받았다는 사례를 제시하며 프레임은 대중에게 호소력 있는 슬로건을 만들어 내는 게 아니라고 강변한다. 먼저 구호가 의미하는 개념이 대중의 머릿속에 프레임으로 구성되어 있어야 한다. 특히 직접적 인과관계가 아닌 유기적 인과관계(systemic causation)에 의한 지구 온난화, 양극화 같은 복잡한 현상을 대중이 이해하려면 우선 ‘유기적 인과관계’라는 프레임이 필요하다. 

이 외에도 세계는 우리의 이해를 반영하며, 우리의 이해는 세계를 반영한다는 반사성(reflexivity) 개념, 진보의 도덕의 바탕이 되는 감정이입과 공감을 신경과학적 증거로 뒷받침하는, 거울신경체계(mirror neuron system)의 발견, 개인의 자유가 공적 자원에 의존한다는 ‘사적인 것은 공적인 것에 의존한다’는 프레임 등을 제시하여 프레임 밖에 있는 것을 어떻게 프레임에 넣을 것인지 기초부터 설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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