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대한민국 軍을 패배자로 만들다
정치, 대한민국 軍을 패배자로 만들다
  • 고성혁 역사안보포럼 대표
  • 승인 2018.07.11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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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9일 오전 5시 57분, 국방부 대변인실로부터 문자메시지가 왔다. ‘국방부 대변인실에서 알려드립니다’로 시작하는 문자메시지 내용은 새벽잠을 깨우기에 충분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쪾한미는 긴밀한 공조를 거쳐 8월에 실시하려고 했던 방어적 성격의 프리덤가디언 군사연습의 모든 계획 활동을 유예(suspend)하기로 결정하였음.
쪾 추가적인 조치에 대해서는 한미간 계속 협의할 예정임.
쪾후속하는 다른 연습에 대한 결정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음.
쪾 앞으로도 한미 국방부는 연합방위에 빈틈없이 없도록 긴밀히 협조해 나갈 것임. //끝//

한마디로 한미동맹 파기를 알리는 신호탄과 같은 내용이다. ‘드디어 문재인 정부가 건드려서는 안 될 것도 건드리기 시작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서둘러 국방부로 달려갔다. 국방부 브리핑실에는 평소보다 많은 기자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어느 정도 짐작은 했지만 정부의 발표는 예상보다 빨랐다.

10시 30분 최현수 국방부 대변인이 브리핑을 시작했다. ‘아침 일찍부터 메시지를 보내 죄송하다’는 인사말과 함께 최현수 대변인은 한미 연합훈련을 유예(suspend)한 정부의 방침을 설명했다. 이어서 기자들의 질문이 이어졌다.

“유예(suspend)라는 단어를 사용했는데 그렇다면 언젠가는 다시 재개할 수도 있다는 말인가?” “그동안 국방부는 한미 연합훈련은 방어적 성격의 훈련이라고 말했는데 굳이 유예할 필요가 있는가?”

“그렇다면 군이 아닌 민간 차원의 을지연습은 계속 하는 것인가?”

“여타 한미 연합훈련도 유예되는 것인가?”

여러 질문이 있었지만 국방부 대변인의 답변은 발표 문구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국방부 대변인인들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 오후 정부는 한국 단독 민간 차원의 을지연습도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UFG 연습은 정부 차원의 을지연습과, 한·미 양국군 차원의 프리덤가디언 연습으로 구분돼 약 2주간 실시한다. 을지연습(훈련)은 전시(戰時)를 가정해 정부 행정기관과 군 그리고 민간의 유기적인 연결성과 절차를 숙달하는 훈련이다. 민방공 대피 훈련, 주요 시설 방호 및 피해시설 긴급 복구, 인명 방호 훈련을 실시한다. 을지연습은 민·관·군 합동 대응 훈련이다. 명확한 방어 훈련이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는 을지연습까지 중단했다. FG(Focus Guardian) 훈련은 병력의 실기동이 없이 매년 8월경에 열리는 ‘워게임(war game)’ 형식의 한미 연합군의 지휘소훈련(CPX)이다. 키 리졸브 훈련과 함께 한반도 전면전을 가정한 대표적인 한미 연합훈련 중 하나다. 국방부는 유예(suspend)라고 했지만 사실상 중단이다.

UFG(을지 포커스 가디언) 훈련만이 아니다. 23일 국방부는 “한미는 23일 긴밀한 협의 하에 3개월 이내 실시될 예정인 2개의 한미 해병대 연합훈련(KMEP)을 무기한 유예키로 했다”고 밝혔다. KMEP (Korea Marine Exercise Program) 훈련은 전시를 가정해 일본 오키나와에 주둔하는 미 해병대 대대급 이하 부대가 포항으로 긴급 전개해 한국 해병대와 함께 하는 한미 해병대 연합훈련이다. 지금 상태로 간다면 내년의 키 리졸브.독수리 훈련도 중단될 가능성이 높다.

이외에 남아 있는 한미 간 정례적인 훈련은 공군 연합훈련인 비질런트 에이스(Vigilant ACE)와 전투 탐색 구조훈련인 ‘퍼시픽 선더’(Pacific Thunder)가 있고, 연합 해군훈련에는 해상 탐색구조훈련(SAREX)가 있다. 이들 훈련은 아직은 중단 여부가 결정되지 않았다. 이 뿐만이 아니다. 최근 한미 연합훈련 계획이 연달아 취소되면서, 하반기에 계획된 ‘K-9 자주포’ 실사격 훈련도 중단될 것으로 보인다. 북한의 연평도 포격도발과 비무장지대 목함지뢰 도달 이후 한국군은 K-9 실사격 훈련을 강화했다. 북한의 도발에 대한 대응력을 높이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25일 다수의 정부 당국자들은 “올해 하반기 계획된 서북도서 실사격 훈련을 일시 중단한다고 알고 있다”고 밝혔다. 4.27 판문점 선언에 명시된 ‘적대행위 전면중지’에 저촉되기 때문이라고 당국자들은 말했다. 

판문점 1차 남북 정상회담에서 합의된 판문점 선언에는 ‘남북은 지상·해상·공중을 비롯한 모든 공간에서 군사적 긴장과 충돌 근원이 되는 일체의 적대행위를 전면 중지하기로 했다’는 내용이 실렸다. 그렇다 하더라도 현재 문재인 정부의 안보정책은 우려스럽기 그지없다. 북한의 말만 믿고 우리 군의 훈련과 방어태세를 너무 허무는 듯해 보인다. 한미연합훈련 중단(suspend)은 사실상 한미 군사동맹의 축을 허무는 것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브레이크가 없는 한미동맹 해체 수순
     
한미 연합훈련 중단은 지난 50여 년간 북한과 한국내 운동권이 바라고 바라던 소원이었다. 그것을 문재인 정부는 너무도 쉽게, 너무도 빠르게 진행하고 있다. 그것도 미국과 긴밀한 협조(?)하에서 추진한다고 말한다. 문재인 정부는 북핵 위협이 제거되는 것에 상응하는 조치로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은 큰 오판이다. 북핵이 없다 하더라도 북한의 재래식 군사 위협은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북한에 대해서는 모든 적대적 행위를 중단한다면서 6월 18일 독도인근해상에서 독도방어훈련을 실시했다. 현 정부의 대적관(對敵觀)이 어디에 있는지 극명하게 보여준다 하겠다.

한미동맹은 군사동맹이다. 군사동맹의 핵심은 연합지휘체계와 훈련이다. 한미연합사(ROK/US Combined Forces Command)는 별개의 조직이 아니라 하나로 결합된(Combined) 지휘체계다. 전시에는 한미연합사의 지휘가 지휘한다. 과연 한미연합사 없이 한국군 단독으로 전쟁 수행이 가능할지 의문이다. 현재 한미 연합훈련이 거의 중단되고 있다. 연합훈련 중단은 주한미군 철수로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주한미군 철수는 곧 한미동맹 파기를 의미한다. 그런데도 군 수뇌부에선 그 누구 하나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한마디로 브레이크가 없는 한미동맹 해체 작업이다.

1970년대 후반 박정희 대통령과 카터 대통령의 관계는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다. 주한미군 철수를 공약으로 당선된 카터는 박정희 대통령과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없었다. 그러나 양국 대통령 사이만 좋지 않았을 뿐, 보좌관을 비롯한 실무진의 관계는 굳건했다. 카터의 주한미군 철수 정책에 대해선 美 정가(政街) 및 미국 내 오피니언 리더그룹은 오히려 카터를 비판하고 한국편을 들 정도였다. 심지어 주한미군사령관 베시 대장과 미8군 참모장 싱글러브 소장도 카터 대통령에 비판적이었다.

그중 싱글러브 소장은 공개적으로 카터의 주한미군 철수에 반기(反旗)를 들었다. 그는 워싱턴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5년 이내 주한미군을 철수시키겠다는 카터 대통령의 계획은 곧 한국을 전쟁의 길로 유도하는 오판”이라고 주장했다. 결국 그는 대통령에 대한 항명으로 참모장에서 해임된 후 전역했다. 군인으로서 그의 소신 있는 행동은 결과적으로는 카터의 주한미군 철수 정책을 포기하도록 만들었다.

현재 상황은 70년대 후반 카터 대통령 때보다 더 최악이다. 카터 혼자만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했다면 지금은 오히려 문재인 정부의 핵심인사들이 한 발짝 더 나가고 있다. 판문점 남북 정상회담 직후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 특보는 주한미군 철수 논쟁을 촉발시켰다. 그러고 나서 5월 17일 미국 시사지 애틀랜틱과의 인터뷰에서는 한미동맹을 파기하는 듯한 발언을 해서 논란을 일으켰다. 그는 “동맹은 일반적으로 국제관계에서 매우 부자연스러운 상태(very unnatural state)”라며 “내게 있어 최선의 것은 실제로 동맹을 없애는 것(get rid of)”이라고 주장했다. 지금까지 문정인 특보의 이 같은 발언들은 모두 현실화 되고 있다. 이에 화답이라도 하듯 싱가포르 회담에서 트럼프는 언젠가는 주한미군은 철수해야 한다고 말해 충격을 줬다.

어쩌다가 미국 대통령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오게 되었을까? 기업가 출신인 트럼프 대통령이 한미동맹의 가치를 손익 관점에서 보는 것이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그러나 한국을 보는 미국 오피니언의 시각이 많이 변했음을 알아야 한다. 사드 배치 과정에서 미군 차량에 물병을 던지는 모습이 미국에 그대로 반영되기도 했다. 특히 한국의 친중(親中) 경향은 미국 워싱턴 정가에 나쁜 신호를 보냈다. 이미 2015년 7월29일字 월드 포스트에는 한국의 친중 외교정책을 비판하는 칼럼이 실린 바 있다. 한국에 비판적인 밴도우 케이토 연구소 수석 연구원의 칼럼이다.

그는 ‘세계적인 복지천국인 한국을 미국의 방어영역에서 제외(kick off)시켜라’라는 칼럼을 통해, ‘한반도에서 북한이 승리한다고 해도 미국에는 위협이 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또한 일부 미국 정책입안자들은 ‘한국은 중국 범주 포함될 것(the ROK as part of an iron ring containing the People’s Republic of China)으로 예상한다’고 칼럼을 통해 언급했다. 또 ‘미국은 더 이상 다 큰 성인인 한국을 보호하는 관대한 부모 역할을 하지 말라’, ‘한국이 진짜 세상의 맛을 보게 해주어야 한다’라고도 썼다. 현재 트럼프의 정책은 밴도우의 칼럼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트럼프는 선거 당시에도 주한미군의 한국 방어비용이 너무 많이 든다고 말한 적도 있다.

군은 적과 싸워 이길 수 있는 명령에 복종해야

대통령은 군의 통수권자다. 따라서 군인은 대통령의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 그러나 여기에는 딜레마가 있다. 과연 대통령의 명령이라고 해서 무조건 따라야 할까? 대통령이 오늘부로 군대 해산하라고 하면 그것도 따라야 할까? 당연히 아니다. 대한민국 헌법에 맞는 명령이어야 한다. 헌법의 최고 목적과 가치는 국민과 국가 수호다. 국민과 국가 수호에 어긋나는 명령은 명령으로서의 정당성을 상실한다. 현재의 한미 연합훈련 중단과 같은 일련의 과정이 과연 대한민국과 국민을 보호하고 수호하는 데 적합한 것인지 강한 의문이 든다.

임진왜란 당시 선조 임금은 이순신 장군에게 부산포로 출동해 왜군을 무찌르라고 명령을 내렸다. 그러나 이순신 장군은 따르지 않았다. 왜군의 거짓정보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결국 이순신 장군은 파직 당했다. 반면 수군통제사가 된 원균은 선조 임금의 명령에 따라 출전했다가 칠천량해전에서 참패를 당했다. 이것을 두고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군의 지휘체계로 볼 때 이순신 장군은 분명히 명령 불복종이다. 원균은 군인으로서 명령을 충실히 수행한 장군이다. 그러나 우리 역사는 이순신 장군을 성웅(聖雄)으로 추앙한다.

어찌 보면 현재 대한민국 상황은 선조 임금 때와 비슷한 측면이 많다. 김대중 정부 때인 2002년 6월 29일, 참수리 357정은 NLL을 넘어온 북한 경비정의 선제공격에 6명이 전사하고 결국 침몰했다. 선제발포 금지라는 당시 김대중 정부의 교전수칙 때문이었다. 문재인 정부인 현재도 마찬가지다. 오히려 더 악화되었다. 잘못된 것을 알면서도 군인은 입 다물고 가만히 있어야 하는 형국이다. 적(敵)은 변하지 않는데 우리만 무장 해제하는 모습이다. 이대로 가다가는 어느 날 갑자기 ‘국군 해산’이라는 명령이 내려지면 그대로 따라갈 것 같은 느낌마저 든다. 훈련 없는 군대, 지휘 체계가 무너진 군대, 적을 적이라고 말하지 못하는 군대는 사실상 해산된 것과 다를 바 없다. 실제로 우리 군에서는 북한을 더 이상 주적이라고 말하지 못한다.

오사카 성은 도요토미가 세운 난공불락의 성이었다. 깊이 10여 미터의 해자가 성 전체를 둘러싸고 있다. 1600년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승리한 도쿠가와는 사실상 실권을 잡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오사카 성에는 도요토미의 아들 히데요리가 있었다. 1614년 도쿠가와는 오사카 성을 포위했다. 20만 가까운 병력을 동원했다. 그러나 오사카 성 함락에 실패했다. 도쿠가와는 화의를 제안했다. 일부 해자를 메우는 조건으로 철수하는 것이었다. 히데요리 측은 그것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도쿠가와는 해자 전체를 단숨에 메워버렸다. 그 이듬해 오사카 성은 결국 도쿠가와 손에 들어갔다. 적(敵)의 말을 믿은 대가로 결국 히데요리는 자결로 생을 마감했다.

현재 대한민국의 상황은 마치 1615년 오사카 성과 흡사하다. 국보법은 이미 사문화된 지 오래다. 한미 연합훈련은 중단되고 있다. 주한미군 철수론도 언급되고 있다. 대한민국을 지키는 해자와 같은 한미동맹이 파기된다면 그것은 해자를 스스로 메우는 꼴이 된다. 1614년 오사카 성의 비극이 오늘날 대한민국에 재현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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