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영화가 우리를 데려다 주겠지... 삶을 은유하는 영화 그리고 여행
[시간] 영화가 우리를 데려다 주겠지... 삶을 은유하는 영화 그리고 여행
  • 김민성 미래한국 기자
  • 승인 2018.08.13 07: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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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박준은 네 개의 여권에 5백여 개가 넘는 스탬프를 찍었지만 그는 여전히 다른 세상이 궁금하다. 책, 그림, 영화 그리고 여행은 그가 지나온 세월의 증인이다. 전작을 통해 ‘책여행(『떠나고 싶을 때, 나는 읽는다』)’과 ‘그림여행(『여행자의 미술관』)’을 마친 그는 다시 ‘영화여행’을 떠나 영화에 찍힌 바람의 흔적을 좇는다. 영화가 바람처럼 데려간 곳에서 그는 인생을 탐험하고 길 위의 시간을 돌아본다. 

그는 일본 북알프스 너머 어딘가에 있는 작은 커피집에서 탄자니아 커피를 홀짝이다 세상의 끝을 찾아 나선 지난날을 떠올렸고, 뉴욕이란 신세계를 찾아갔지만 이방인에 불과했던 여행자의 슬픔을 영화 <천국보다 낯선>에 오버랩 시켰으며, 바이크로 캐나다를 횡단하는 <원 위크>의 주인공에게선 ‘지금 이 순간을 사는 법’을 배웠다. 낯선 세상은 언제나 그를 설레게 했지만 그의 눈에 비친 세상은 종종 아름답지 않았다. 열두 살 소녀를 노인과 강제로 결혼시키고 정의가 실현됐다고 선포하는 탈레반 같은 얼굴을 세상 곳곳에서 목격했고, 껍데기만 남은 마카오의 세인트 폴 성당에서는 위태로운 ‘돈의 세계’를 보았다. 그는 여전히 길 위에 서 있다. 

동국대학교 연극영화학과 대학원에서 영화를 공부했다. 1994년부터 전 세계를 여행하며 글을 쓰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여행자의 미술관』 『떠나고 싶을 때 나는 읽는다』(『책여행책』의 개정판) 『On the Road-카오산 로드에서 만난 사람들』 『뉴욕, 뉴요커』(『네 멋대로 행복하라』의 개정판) 『방콕여행자』 『언제나 써바이 써바이』 등이 있다. 틈틈이 ‘예술가를 위한 글쓰기 워크숍’을 진행한다.

독일 사상가 짐멜(G. Simmel)의 말을 빌리면, 인간은 ‘방랑’과 ‘고향’이라는 모순된 대상을 동경하는 존재다. 우리는 종종 여기 아닌 다른 세계를 꿈꾼다. 이곳 아닌 저곳에서라면 꿈꾸던 삶을 살 수 있을 것만 같다. 세상에 더 견고한 뿌리를 내리고자 아등바등 살아가면서도 누구나 ‘여행’에 대한 동경을 품고 사는 이유다. 

영화라면 내가 사는 이곳과 전혀 다른 세상을 단 두어 시간 만에, 단숨에 보여줄 수 있다. 영화만 있으면 어디로든 갈 수 있다. 좁고 거미줄처럼 얽힌 리스본의 골목길, 날마다 기막히게 아름다운 풍광을 선물하는 토스카나, 얼음과 화산이 공존하는 아이슬란드, 뜨거운 태양이 춤추는 고스트 랜치, 긴 밤 내내 바람의 통곡 소리가 들리는 북극해……. 영화라는 융단을 타고 중앙아시아로, 남유럽으로, 북아메리카로, 오세아니아로 떠난다. 이 책은 스물일곱 편의 영화에 찍힌 바람의 지문을 좇는 여정이다. 

영화를 보며 우리의 세계는 끝없이 확장된다. ‘영화여행’의 매력은 시공간을 자유롭게 누비는데 만 있지 않다. 수만 갈래의 삶을 은유하는 것이 영화 그리고 여행이다. 영화 속 시공간으로 들어가 낯선 이들과 대화하고 주변을 거닌다. 영화가 바람처럼 데려간 곳에서 우리는 인생을 탐험한다. 

“연기란 영혼을 탐험하는 체험이며 연기를 통해 많은 지식을 얻으며 또 많은 지식을 포기한다”는 쥘리에트 비노슈(Juliette Binoche)의 연기론에, 저자는 자신의 여행론을 포갠다. “여행도 비슷하다. 세상을 탐험하며 지식을 얻는 동시에 지식을 포기하는 게 여행이다. 몸과 마음으로 전력을 다하는 탐험이다. 길 위에 서면 여행하기 전에 내가 알았던 세상이 얼마나 작았는지, 때로는 얼마나 허구인지 알게 된다.”

저자는 영화가 촬영된 장소를 찾아가 영화의 감동을 재생, 증폭하려 하지 않는다. 줄거리를 좇지도 않는다. 대신 영화 속 그곳에 자신의 지난 여행을 살포시 겹쳐 놓는다. 일본 북알프스 너머 어딘가에 있는 작은 커피집 주인이 내려준 탄자니아 커피 위로 세상의 끝을 찾아 나섰던 지난날의 여정이 아스라하게 피어올랐고, 뉴욕이라는 신세계를 찾아갔지만 이방인에 불과했던 여행자의 슬픔을 영화 <천국보다 낯선>에 오버랩시켰다. 바이크로 캐나다를 횡단하는 <원 위크>의 주인공에게선 ‘지금 이 순간’을 사는 법을 배웠다. ‘별꽃’이라는 이름의 치앙마이 작은 게스트하우스에서는 오랜 방랑을 끝내고 정착하고 싶어지는 풍경을 만나기도 했다. 

여행을 의미하는 ‘travel’의 어원은 고통을 뜻하는 라틴어 ‘travail’이다. 여행에는 자신의 세계가 확장되는 기쁨만 있지 않고, 부조리와 차별 등 세상의 어두운 그림자를 목격하는 과정이 뒤따른다. 저자의 눈에 비친 세상 역시 종종 아름답지 않았다. 

철근이 뒤를 받치지 않으면 제힘으로 설 수조차 없는 마카오 세인트 폴 성당에서 ‘돈의 세계’의 위태로움을 보았다. 영화 <천상의 소녀>에서 열두 살 소녀를 노인과 강제 결혼시키고 정의가 실현됐다고 선포하는 탈레반의 얼굴을 세상 곳곳에서 목격했다. 

베트남사회주의공화국의 심장과 같은 호찌민에서는 쉴 새 없이 성매매를 권하는 호객 행위에 시달려야 했다. 그리스에서 어린 난민을 만난 후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여행자의 처지에 무력감을 느꼈다. 

‘정착’과 ‘방랑’이라는 상반된 이상과 갈등하며 왜 우리는 길 위에 서야 하는 걸까? 네 개의 여권에 5백여 개가 넘는 스탬프를 찍었지만, 여전히 다른 세상이 궁금해 길 위에 서는 저자는 대답 대신 한 편의 영화를 건넨다. <원 위크>의 주인공 벤은 결혼을 3개월 앞두고 느닷없이 말기 암으로 시한부 선고를 받는다. 

벤은 토론토에서 밴쿠버까지 바이크를 타고 달리기로 했다. 치료는 다녀와서 받기로 하고. 30년쯤 된 구닥다리 바이크를 살까 말까 망설이는 그에게 차고 주인이 말한다. “눈 깜짝할 새 흐르는 게 인생이네. 타볼 텐가?” 우리는 모두 벤처럼 시한부 인생을 산다. 영화가 끝나듯 언젠가 여행도 끝난다. 우리가 좀 더 길 위에 서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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