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조선에서 백수로 살기 ....청년 연암에게 배우는 잉여 시대를 사는 법
[신간] 조선에서 백수로 살기 ....청년 연암에게 배우는 잉여 시대를 사는 법
  • 김민성 미래한국 기자
  • 승인 2018.08.30 0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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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고미숙은 고전평론가. 본 투 비 백수. 20대에는 청년 백수, 30대 중반엔 박사학위를 받고도 중년 백수가 되었다. 그래서 아예 ‘고전평론가’라는 직업을 만들어버렸다. 혼자는 너무 심심하고 외로워서 공부공동체를 꾸렸다. 우여곡절을 거쳐 현재는 ‘감이당(&남산강학원)’이 본거지다. 2080세대가 함께 꾸려가는 대중지성 네트워크라 생각하면 된다. 주요 활동은 ‘읽고, 쓰고, 말하기’. 그것으로 밥벌이도 하고 수많은 벗들을 만나고 계속 무언가를 배울 수 있다는 사실이 놀랍고 신기하다. 이 행운을 많은 이들과 나누고 싶다.
 

고전평론가 고미숙이 이번에는 ‘백수로 살기’를 제안한다. 취업난에 내몰린 청년들과 함께 자립 공동체를 꾸리면서 얻은 노하우를 고전의 지혜와 버무려 청년을 위한 자기계발서로 엮었다. ‘나머지, 쓸모없음, 버려짐’의 의미로서의 ‘백수’를 ‘자신의 삶을 능동적으로 매니지먼트하는 프리랜서’로 보는 시각을 제안한다. 

《조선에서 백수로 살기》는 고전평론가 고미숙이 연암의 청년 시기와 요즘의 청년들을 서로 오버랩하며, 독자들에게 연암의 발자취로부터 배울 수 있는 행복한 백수의 삶을 일깨운다. ‘일, 관계, 여행, 공부’의 키워드로 청년의 삶을 구분한 뒤 연암이 어떤 방식으로 살았는지 따라가며 그의 당당한 자신감을 배우라 말한다. 

취업난에 맞닥뜨린 청년들만이 백수는 아니다. 은퇴한 베이비부머 세대를 포함해서 중년 백수, 장년 백수도 수없이 많다. 어떤 청년들은 자신의 때만이 가장 힘든 것처럼 방황하기도 하지만, 중장년의 방황은 생각보다 큰 파고를 지녔다. ‘안정된 생활’을 구축하기 위해 앞만 보고 달려왔던 세대들도 삶의 허무함을 마주하며 결국엔 백수가 되는 것이다. 이렇듯 모든 세대에서 백수가 양산된다면, 모든 인간의 종착지가 곧 백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때는 바야흐로 ‘잉여 시대’다. 4차 산업혁명은 ‘노동의 종말’을 고하고 있고, 당장 실현되는 52시간 근무제는 우리에게 ‘남는 시간’을 어떻게 보낼 것인지 묻고 있다. 경제상황이 어렵다고 하지만 국민소득은 3만 불 시대에 진입했고 ‘저녁이 있는 삶’을 말하고 있다. 우리가 맞이해야 할 잉여 시대는 벌써 코앞에 왔지만 그것을 활용하며, 더욱이 행복하게 누릴 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다. 

어디서든 당당하며 적절한 무게감과 끝없는 위트를 지녔던 ‘조선 백수’ 연암에게 헬조선에 생존하는 지혜로운 방법을 배워보자. 

‘백수의 삶’에는 롤 모델이 없을까? 그렇지 않다. 생각해보면 공자, 부처, 노자 등 사상가로부터 소설 속 그리스인 조르바까지 자유의 삶을 희구했던 많은 이들이 바로 백수의 삶을 제안했다. 특히 조선에는 ‘연암’이 있었다. 호사스러운 삶을 누리기에 충분한 배경과 능력을 가졌음에도 청빈한 삶을 택했던 연암. 그에게는 어떤 다른 점이 있을까? 고전평론가 고미숙은 기본적으로 남다른 자존감으로 무장했던 연암의 태도를 본 받으라 말한다. 돈이 없으면서도 호탕한 태도를 유지하며 제도 속 권력, 부의 유혹으로부터 스스로 해방될 줄 알았던 연암의 삶은 어떻게 가능한 것일까? 

1장  ‘조선’에서 ‘백수’로 살기 - 밥벌이와 자존감 : 틀에 박힌 노동의 일과로부터 과감히 탈주할 용기를 가져야 한다. 백수는 경제활동을 ‘안 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조직할 수 있는 것’이다. ‘미니잡’을 예로들 수 있다. 짧은 기간 일하는 비정규직을 수차례 옮기며 자신의 리듬에 맞는 노동을 꾸릴 수 있다. 쉬고 싶을 때 쉬어도 되고, 운신의 폭이 넓으니 시간을 내 바이오리듬에 맞게 활용할 수 있다. 이렇게 보면 규칙적이고 일관된 노동, 한마디로 ‘정규직’이란 진정한 자신으로부터의 소외다. 

그렇다면 자존감은 어디로부터 나오는가? 바로 소비와 부채로부터 해방될 때 나온다. 자본주의사회에서 ‘소비’란 미덕이다. 하지만 소비가 가져다주는 행복은 그리 길지 않다. 명품과 차, 집을 소유하는 것이 인생의 목표가 되었던 이전 세대를 돌이켜보면, 어느 정도의 부를 얻는 대신, 자신을 잃어버린 경우가 많다. 요즘은 청년 백수만 있는 게 아니라, 은퇴한 이전 세대의 중년 백수, 장년 백수도 많다. 노동과 축재에 삶을 소진한 나머지 자신을 읽어버리고 뒤늦게 방황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다. 이 또한 가슴 아픈 노릇이다. 고로 ‘공부 - 취업 - 주식?부동산’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날 때 진정한 자신을 찾아 나설 수 있다. 즉, ‘소비’와 ‘부채’의 강력한 자장에서 탈출할 줄 알아야 자존감을 확립할 수 있다. 

2장  우정, 백수의 최고 자산-친구는 제2의 ‘나’다! : ‘혼밥’, ‘혼술’이 진정으로 위험한 이유는 바로 ‘유머’를 상실하게 하기 때문이다. 관계가 상실되면 동시에 유머가 상실된다. 혼자만의 생각에 갇히면 자의식이 팽배한다. 그러다 보면 한껏 확대된 자아와 비루한 현실 간의 경계에서 좌절을 마주하게 된다. ‘외로움’은 그 자체로 사람을 힘들게 하지만, 관계의 행복을 앗아간다는 점에서 더욱 위험하다. 

연암은 정말 ‘허물없이’ 사귀는 것이 무엇인지 가르쳐준다. 출신 성분과 직업, 성별을 뛰어넘어 나이조차 장애가 되지 못했다. 심지어 길에서 만나는 이들, 여행에서 만나는 타국인들에게도 서슴없이 말을 건넸다. 특히 백탑청연으로 유명한 친구들은 모두 연암의 성정을 아꼈고 서로의 생각을 허물없이 나누며 실사구시(實事求是)의 꿈을 나누었다. 
많은 부를 획득한다고 인생이 행복해지지 않는다. 행복은 기본적으로 ‘관계’에 있다. 

3장  ‘집의 시대’에서 ‘길의 시대’로-청춘은 유동한다! : ‘집’의 시대에서 ‘길’의 시대를 살아야 한다. 모든 사람들이 갈구하는 삶은 결국 ‘자유인’의 삶이다. ‘공부를 하고, 취업을 하고, 가정을 이룬다’는 정해진 절차를 밟아온 사람들이 결국에 추구하는 가치는 ‘자유’다. 그렇게 가정을 이루고자 노력을 했으면서도 종국에는 그로부터 벗어난 자유의 삶을 원한다. ‘황혼이혼’, ‘졸혼’ 등의 단어가 유행하는 것도 우연은 아니다. 이제는 단지 노동에 대한 보상으로서의 단기적인 여행만 말할 것이 아니라 생애 자체가 ‘정주’에서 ‘이동’으로 그 가치관이 이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필요가 있다. 인생이 한 편의 여행인 거다. 

요즘 청년들의 여행은 거의 ‘맛집 탐험’과 ‘인생샷 건지기’로 요약될 수 있다. 하지만 여행의 본질은 그 지역을 살아보는 것이다. 연암이 그러했다. 《열하일기》에는 외출이 통제된 밤에 월담을 하여, 지역 원주민과 함께 필담을 나누는 장면이 나온다. 말이 통하지 않는 외국인들과 필담을 나누며, 그들은 어떻게 사는지에 대해 청취했다. 새로운 문명에 대한 무한한 호기심이 바로 ‘실학’의 바탕이 되었음은 물론이다. 이렇듯 여행은 자신 만의 스토리를 만들어내는 과정이다. 여행 과정에서 타자와 자신을 만나고 스스로에게 질문하는 시간을 가지면 된다. ‘길’ 위에서 ‘길’을 찾으라. 그리고 ‘삶’이라는 여행을 채비하라. 

4장 배움에는 끝이 없다-네버엔딩 쿵푸! : 한국의 ‘공부’는 ‘뒤처지지 않기 위한 공부’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공부에 흥미를 붙이지 못한다. 어떤 자격을 갖추기 위한 경쟁과 시험을 준비하는 과정으로서의 공부는 진정한 공부라고 보기 힘들다. 사실 공부는 나이와 상관없이 생애 전반을 관통하는 주제다. 물론 자신의 주도로, 자신이 원하는 공부를 하며 세상과 나의 관계를 배우는 공부가 되어야 한다. 하지만 우리의 교육 시스템으로는 배우기 힘들다. 시험문제만 주구장창 푸는 공부로 세상을 바라보는 식견이 깊어지지 않는다. 

연암은 그 어렵다는 과거 시험에 두 번이나 합격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심지어는 소과에 장원급제. 그런데 그는 대과에서 백지를 내고 나온다. 이후 여러 차례에 응시했지만 기암괴석이 있는 산수화를 그리거나 답안에 이름을 기재하지 않는 등 기이한 행동을 하며 자리를 박차고 나온다. 백지 답안을 던지고 나오는 누군가는 한 번쯤 꿈꾸는 로망을 실제로 실천한 배포도 멋지거니와, 연암의 공부는 시험지를 뛰어넘을 줄 아는 진짜 공부였다. 

공부의 근간은 기본적으로 말하기, 읽기, 쓰기다. 헌데 우리나라 교육에서는 이런 것들을 배우기가 쉽지 않다. 모든 지식은 먼저 텍스트로 기록돼 있고 그것을 해독하는 데서부터 시작한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고 새로운 이야기를 하는 것도 결국 ‘읽고 쓰는’ 데서 비롯된다. 

‘1인 미디어 시대’와 ‘4차산업혁명’은 ‘이야기’가 상품인 미래를 예고한다. 이야기를 만드는 데는 ‘읽고, 말하고, 쓰는’ 것이 바탕이 돼야 함은 물론이다. 

고미숙은 논의를 전개하며 ‘백수’라는 단어를 새롭게 정의한다. 대체로 ‘백수’는 ‘쓸모없는’, ‘무가치한’의 의미와 더해져 부정적인 이미지를 담고 있다. 먼저 이에 벗어나서 백수는 ‘자신의 삶을 보다 주도적으로 디자인하는 프리랜서’로 다시 정의하기를 제안한다. 그리고 읽고, 말하고, 쓰며 새로운 스토리를 창조하는 ‘크리에이터’가 될 것을 주문한다. 

자신의 생애 리듬을 알고 스스로 삶의 과제를 조정하며, 세상을 자유로이 탐구하고 규칙적인 노동에서 벗어난 경제활동을 시도하라고 말한다. 화폐에 얽매인 삶을 살지 말고 관계가 바탕이 된 행복한 삶을 살라고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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