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과자는 마음이다.... 윤영달, 크라운해태를 그리다
[신간] 과자는 마음이다.... 윤영달, 크라운해태를 그리다
  • 김민성 미래한국 기자
  • 승인 2018.09.03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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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에서 예술경영에 눈뜨고 마음으로 짓는 과자를 꿈꾸다 

저자 윤영달은 예술과 경영을 접목한 AQ경영 기법을 통해서 크라운해태제과를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문화 친화 기업으로 이끌고있는 경영인이다. IMF 구제 금융 시절 부도의 위기를 맞았던 크라운제과를 이끌고 해태제과를 인수해 세상을 놀라게 했던 그는 현재 크라운해태제과의 회장을 맡고 있다. 

1945년 경기도 광주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제과 업체인 영일당(크라운제과 전신)을 운영하던 윤태현 회장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연세대학교에서 물리학을 전공했으며 한때 문예지를 창간했던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이기도 하다. 크라운제과가 IMF 구제금융 이후 경영난을 겪으면서 자연스럽게 예술의 치유, 창조 능력에 눈뜨게 된 그는 AQ(예술지능: Artistic Quotient)의 개념을 전 세계 최초로 기업 경영에 도입했다. 이후 조각, 국악, 시(詩), 독서 등 다방면에 걸친 예술 분야에 공헌한 공로로 제20회 몽블랑 문화예술 후원자상, 제17회 메세나대상 메세나인상, 2017 한국음악상 메세나 대상 등을 수상했다. 아울러 서울오픈아트페어, 아트광주, 춘향제전, 서울국제조각페스타, 서울아리랑페스티벌의 조직위원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그는 대한민국이 예술과 문화 분야의 힘을 길러감으로써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새로운 번영의 시대를 열 수 있다고 믿는 경영인이다. 동시에 그런 이상을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제과기업인 크라운해태를 통해서 하나씩 현실로 만들어가고 있는 이 시대의 진정한 리더이기도 하다.
 

어릴 적 꿈이 자전거 가게 주인이었을 정도로 기계에 관심이 많았던 저자는 대학에서 물리학을 전공했지만 22세의 나이에 월간 문예지인 ‘문학’을 창간한 문학청년이기도 했다. 그런 그는 유학 시절 미국인들이 즐겨 먹던 시리얼을 보고 ‘죠리퐁’을 구상하게 된다. 시리얼을 만들 정도의 기술력과 자본이 없던 1960년대 한국의 현실에 주목했던 그는 한국의 과자인 뻥튀기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죠리퐁’ 개발에 착수한다. 옥수수부터 보리와 팥, 율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곡물로 실험을 거듭한 끝에 밀쌀이 건강에도 좋으면서 잘 튀겨진다는 사실을 알게 된 그는 튀긴 밀쌀에 고온의 설탕물을 골고루 묻히는 기계를 발명한다. 1963년 시판되어 45년째 사랑받고 있는 ‘죠리퐁’은 그렇게 윤영달 회장의 손에서 태어났다. 제작은 물론 과자 이름부터 포장 디자인에 이르기까지 저자의 손이 닿지 않은 곳이 없는 ‘죠리퐁’은 한국형 시리얼의 원조라 할 수 있다. 

크라운제과의 창업주인 백포(白浦) 윤태현 선대 회장의 맏아들로 태어난 저자는 24세의 나이에 크라운제과에 입사해 도매상에게 제품을 납품하는 것이 전부이던 제과업계의 유통 시스템을 과감히 개혁한다. 거대 도매상의 횡포에 맞서, 직접 소매상에 과자를 공급하는 ‘루트세일’ 방식을 국내 제과업체로는 최초로 도입한다. 아울러 도매상마다 불규칙하던 과자의 공급가를 일률적으로 통일해 공급가를 76원으로 일원화했다. 공급가 80원에 5%를 할인해서 76원에 과자를 공급하는 ‘76원의 법칙’은 현재까지도 제과 업체에서 통용되고 있는 불문율로 자리 잡고 있다. 

하지만 그는 ‘경영자 2세’라는 한계에 안주하지 않기 위해서 크라운제과에서 독립해 포장기계회사인 ‘한국자동기’를 설립한다. 과자 포장재를 주력 업종으로 하던 ‘한국포장기’를 자동차 미션의 중요 부품인 포크를 생산하는 자동차 부품회사로 탈바꿈시킨 그는 1980년대 풍력 발전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논문을 발표하는 한편 풍력 발전소 부지를 매입하는 등 사업을 구체화 시킨다. 그러나 이를 ‘부동산 투기’로 몬 국세청의 세무조사로 경영난을 겪으며 어려운 시기를 겪기도 했다. 

경영 위기를 이겨내고 크라운제과를 살려내고 해태를 인수하다 

1997년 저자는 크라운제과의 CEO로 복귀하면서 ‘크라운산도’ ‘죠리퐁’ 등의 몇몇 브랜드에 의존하던 회사의 체질을 바꾸기 위해 경영 혁신에 나선다. 크라운제과를 제과 시장 1위로 만들겠다는 목표를 설정하고 홍삼 드링크를 포함한 음료와 아이스크림에 이르기까지 제품군을 확대해 200개까지 확대한 그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1998년 말 한국을 강타한 금융위기였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IMF 구제금융 사태를 맞으며 크라운제과가 부도 위기에 처하자 그는 50년 역사를 자랑하는 회사를 살리기 위해 경영권 포기 각서를 쓰면서 ‘법정화의’를 신청한다. 이후 채권자들과 거래처들의 압박 속에서 크라운제과의 서울 묵동 공장을 매각하는 등 자산을 정리하고 200여 개에 달하던 품목을 70개로 선별함으로써 경영 효율화를 추진한다. 그러나 이 같은 위기 속에서도 저자는 5억 원의 비용을 투자해 크라운제과 영업용 차량을 도색하고 본사 사옥을 강남으로 이전하는 등 미래를 위한 투자를 감행한다. 또 크로스마케팅 경영 기법을 도입해 5년 만에 회사를 정상화시킨다. 저자가 직접 명명한 경영 기법인 ‘크로스 마케팅’은 크라운제과가 신제품을 양산할 수 없는 경영 환경에서 탄생한 혁신적인 전략이다. 전략적인 제휴를 통해 대만의 제과 업체들의 인기 상품을 크라운제과의 브랜드로 한국에 출시하고 반대로 크라운제과의 인기 제품을 대만 시장에 소개하는 방식으로 추진된 크로스마케팅을 통해 크라운제과는 절체절명의 위기를 이겨낸다. 

그렇게 힘을 축적하며 법정화의 졸업을 준비하던 그는 2005년 해태제과 인수를 성사시킨다. 매출액 규모가 크라운제과의 3배에 이르렀던 ‘고래’를 삼킬 수 있었던 배경에는 “이제는 큰 회사가 작은 회사를 인수 합병하는 것이 아니라 빠른 조직이 느린 조직을 흡수하는 시대”라는 그의 철학이 주효했다. 크로스마케팅을 통해 축적한 자본과 군인공제회를 투자자로 참여시켜 조달한 재원으로 해태제과를 인수한 그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생각지 못했던 또 다른 위기였다. 부도 이후 외국계 자본에 인수되어 노사 갈등이 극한에 달했던 해태제과의 구성원들이 크라운제과의 해태제과 인수를 반대하며 파업에 돌입한 것이다. 저자는 이런 위기를 크라운제과와 해태제과의 직원들이 버려지는 과자 상자로 예술품을 만드는 ‘박스 아트’ 프로그램을 통해 돌파한다. 아울러 양사 직원들이 매주 한자리에 모여서 마케팅, 디자인, 인사경영, 리더십 등의 실무는 물론 미술, 음악, 문학, 등산 등 다양한 분야를 동문수학(同門修學)하는 모닝아카데미를 개설해 두 회사의 화학적 결합을 추구한다. 

그러나 저자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또 다른 위기였다. 해태제과의 노사 갈등이 해결되고 경영정상화의 기틀이 마련되던 시점에 터진 멜라닌 파동은 저자와 크라운해태제과를 시험대에 서게 했다. 정부 당국의 무리한 발표 등으로 인해서 오도된 측면이 컸던 멜라민 파동을 이겨 낼 수 있었던 것은 빠른 진상 조사와 제품 회수 조치와 더불어 저자가 고안한 ‘사죄 공연’의 효과가 컸다. 저자는 전국을 돌며 해태제과 임직원들이 언론에 보도된 ‘멜라민 사태’에 대해 소비자들에게 직접 사과를 하고 국악 공연을 선물하는 행사를 기획했다. 

예술경영에 눈떠 AQ로 무장한 새로운 크라운해태 제과를 만들다 

이처럼 크라운제과의 경영 위기와 해태제과 인수의 갈등을 헤쳐 가면서 저자가 발견한 것은 예술이 가진 치유의 힘이었다. 크라운제과가 법정 화의에 들어가면서 경영자로서 받는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 북한산등반에 나섰던 저자는 산자락에서 대금 소리를 듣고 억울함과 분노로 타오르던 자신의 내면이 정화되는 체험을 하게 된다. 이를 계기로 대금을 배우기 시작한 저자는 국악의 매력에 빠지게 되고 조각과 시 분야에 걸쳐서 두루 관심을 넓히게 된다. 그는 이를 CEO 개인의 취미로 국한 시키지 않고 크라운해태제과 전 직원들의 창조적 본능을 일깨우는 방법으로 예술경영을 본격적으로 시도한다. 

해태제과의 멜라민 파동을 계기로 국악 공연에 대한 점주들과 고객들의 호응을 받게 된 그는 국내 최초의 민간 국악단인 ‘락음국악단’을 창단하고 한국 최고의 국악 명인들로 구성된 ‘양주 풍류악회’를 결성한다. 또 근무시간 중 직원들의 국악 연습을 정례화시켜서 2004년부터 크라운해태제과가 매년 주최하고 있는 ‘창신제’의 무대에서 공연을 직접 할 수 있게 된다. 이 같은 크라운해태제과의 전통은 2012년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무대에서 저자를 비롯한 100여 명의 크라운해태 직원들이 선보인 ‘사철가’를 시작으로 판소리 심청가(2013년), 시조 ‘동창이 밝았느냐’와 ‘태산에 올라앉아’(2015), 종묘제례일무와 판소리 수궁가(2016년), 방아타령 창극 공연(2017년)으로 이어지고 있다. 

크라운해태 직원들에게 도움이 되면서도 메세나로서 기왕이면 예술 각 분야에서 소외 받고 있는 예술 장르를 지원하려고 마음먹은 그가 미술 분야에서 선택한 것은 ‘조각’이었다. “과자 역시도 조형 예술의 결과물”이라고 생각한 저자는 조각가들이 마음 놓고 작품 활동을 할 수 있는 아틀리에를 경기도 양주 아트밸리에 설치하고 직원들이 장승 깎기와 눈 조각, 병 공예 등을 통해서 조각의 기본 원리를 터득할 수 있는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그 결과 크라운해태 직원들은 2014년 1월 경기도 양주 아트밸리 일원에서 개최된 ‘양주눈꽃축제’에서 1,000여 개에 달하는 눈조각을 선보일 수 있게 되었다. 또 2017년과 2018년 1~2회에 걸쳐서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한여름밤의 눈조각전’을 개최해 폭염이 기승을 부리는 8월, 서울 한복판에서 크라운해태제과 직원들이 직접 만든 눈조각을 감상하는 사회 공헌 활동에 나섰다. 또 찾아가는 조각 전시회인 ‘견생·보면 산다’는 전시회를 연세대학교 세브란스병원과 서울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 등 전국의 공공기관 및 공원과 병원 등에서 순회 개최함으로써 조각에 대한 일반인들의 감상 기회를 넓히고 조각가들에게는 자신의 작품을 선보일 수 있는 다양한 기회도 제공하고 있다. 

음악 분야에서 국악을 미술 분야에서 조각을 집중적으로 후원하고 크라운해태제과 임직원들이 배우는 장르로 선정한 저자는 문학에서는 ‘시’(詩)를 선택했다. 시가 모든 예술 장르의 기본이 될 뿐만 아니라 직접 써보는 연습이 가능하고, 점주들을 대상으로 하는 영업활동에도 도움이 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한국을 대표하는 시인들로부터 수년에 걸쳐서 습작 수업을 받은 크라운해태 임직원들의 시는 선별 과정을 거쳐 3권의 시집으로도 출간되었다. 

저자는 서울 인근의 골프장 부지로 손꼽히던 서울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 일대에 100만평에 달하는 크라운제과 연수원 부지를 예술이 살아 숨 쉬는 ‘아트밸리’로 조성해 모든 사람들이 마음 편하게 찾을 수 있는 복합 문화공간으로 조성하기도 했다. 아울러 한국을 대표하는 전통 축제 복원과, 민족의 노래인 아리랑의 유네스코 문화유산 등재를 기념해 2013년부터 광화문 광장에서 ‘서울아리랑페스티벌’을 개최하고 있다. 한편, 2017년에는 서울시가 운영하는 남산 국악당 10주년 리뉴얼 공사와 운영에 30억원의 기금을 기부하고 2018년 2월 재개장 이후부터는 어린이 국악 영재 발굴과 한국 전통 문화 콘텐츠 활성화를 위한 ‘영재국악회’ 행사를 매주 일요일에 개최하고 있다. 

과자는 마음이다 

저자가 국악과 조각, 시 등 문화 각 분야에 걸쳐서 활발하게 기업의 메세나 활동을 펼치는 수준을 뛰어넘어 직접 문화 행사를 기획하고 주최하며 예술 교육과 체험 프로그램을 통해 크라운해태를 예술경영의 모범 사례로 가꾸어가고 있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저자는 “과자는 사람과 사람의 마음을 이어주는 매개체”라고 규정한다. 저자는 50년 가까이 크라운해태제과를 이끌면서 과자를 통해 사람들에게 잃어버린 동심을 다시 찾아주고 꿈과 상상력을 불어넣기를 소망해왔다. 저자는 이를 위해서는 자신을 포함해 과자를 만드는 크라운해태 임직원들이 ‘꿈을 만드는 예술가 혹은 창조자’가 되어야 한다고 판단했다. “직원이 아티스트가 되면 그들이 만드는 제품이 바로 예술이 된다”는 판단 아래 저자가 10년 넘게 추구해온 AQ경영의 길은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그럼에도 그가 일희일비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예술은 수많은 훈련과 연습을 통해서만 이해되고 익숙하게 삶에 녹아든다”는 철학 때문이었다. 또 중진국(中進國) 병으로 신음하고 있는 대한민국 사회에서 예술을 삶에서 항상 즐기고 향유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이를 통해서 문화력이 향상 될 때만 선진국으로 가는 다양한 길이 열릴 수 있다는 비전을 크라운해태 제과의 경영 사례를 통해서 알리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크라운해태제과가 예술을 통해 사회에 공헌함으로써 고객들에게 받은 사랑에 보답하고 나아가 상상력과 창조력이 결합 된, 건강하고 올바른 ‘꿈의 과자’를 만들겠다는 그의 일념 속에서 ‘AQ(Artistic Quotient) 경영’은 꽃피고 있다. 저자는 자신의 이런 경영 사례와 체험을 보다 많은 이들과 나누고 공유함으로써 한국 사회가 문화를 통해 한단계 도약하는 ‘동락의 시대’를 열어가기를 꿈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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