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김경집의 통찰력 강의....질문하는 습관이 만드는 생각의 힘
[신간] 김경집의 통찰력 강의....질문하는 습관이 만드는 생각의 힘
  • 김민성 미래한국 기자
  • 승인 2018.09.10 07: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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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김경집은 작고 따뜻한 것들에 대한 애틋함을 기리고 품는 걸 함함하게 좋아하는 중년의 사내. 문학과 철학을 공부했고 그 밖의 모든 분야에 대한 관심 거두지 못하고 살아간다. 아날로그적 따뜻함과 디지털적 생산성을 동시에 누리려 애는 쓰지만 번번이 미끄러지고 말 뿐이다. 그래도 그 바람을 깨거나 놓치지 않으려 버둥대며 산다. 르네상스맨적인 자유로운 개인의 실현이 삶의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여기며 열심히 기웃댄다. 이른 아침 자작나무 숲길을 함께 걸으며 한마디 이야기 나누지 않아도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느끼며 살고 싶다는 꿈을 벌써 스무 해 넘게 꾸고 있는 미련한 이상주의자이기도 하다. 

가톨릭대학교 인간학교육원에서 인간학과 영성을 가르치며 스무 살 안팎의 젊은이들과 함께 지내다 보니 주제 모르고 제 나이가 서른네댓쯤 되는 줄 착각하며 사는 청맹과니다. 『나이듦의 즐거움』, 『생각의 프레임』, 『생각의 인프라』 등의 책을 썼다. 힘들고 어려울 때면 산에 오르거나 음악 듣고 그림 구경 다니는 걸로 겨우 달래지만, 그것만으로도 고마워할 줄 아는 소박함을 품고 산다. 조금만 더 따뜻해질 수 있기를 꿈꾸며.
 

우리는 ‘햄릿’을 우유부단한 인물의 전형으로 알고 있다. “죽느냐 사느냐”라는 말 때문에 그렇다. 자신의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기에도 바쁜 시기에, 한가하게 “죽느냐 사느냐”로 고민한 햄릿은 결단하지 못하고 망설이는 지식인의 전형으로 자리 잡았다. 

햄릿을 우유부단한 인물의 전형으로 처음 지목한 것은 러시아 소설가 이반 투르게네프였다. 투르게네프는 햄릿형 인간과 돈키호테형 인간을 비교하며, 우유부단한 햄릿형 인간보다는 저돌적으로 행동하는 돈키호테형 인간이 되자고 촉구한다. 

그런데 과연 그런가? 햄릿은 선택해야 하는 순간에 우유부단하기만 했을까? 이 책에서는 햄릿이 우유부단하고 유약한 왕자가 아니라 복수의 화신으로서 끊임없이 행동하고 도전했음을 지적한다. 그러한 해석에서 “죽느냐 사느냐”라는 대사는 우유부단한 망설임이 아니라, 처절하게 복수를 다짐하는 선언이 된다. 여기서 ‘산다’는 ‘복수한다’의 압축된 표현이다. 한마디로 ‘복수하지 못하느니 죽고 말겠다’라는 말이다. 이는 ‘죽느냐 사느냐’ 다음에 이어지는 대사에서 확인할 수 있다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가혹한 운명의 화살이 꽂힌 고통을 죽은 듯 참는 것이 과연 장한 일인가. … 죽는 건 그저 잠자는 것일 뿐, 그뿐 아닌가. … 글쎄 이런 주저 때문에 인생은 평생 불행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그런 주저가 없다면 누가 이 세상의 채찍과 모욕을 참겠는가. … 

투르게네프도 이런 사실을 모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투르게네프가 햄릿을 부정적으로 평가한 데는 당시 시대적 상황이라는 특수한 맥락이 있었다. 그는 문학 작가와 작품이 타락한 사회를 비판해야 한다고 강조하기 위해, ‘행동하는’ 돈키호테를 부각하기 위해 그런 작위적 대립을 만든 것이다. 

이런 맥락을 이해하지 못하면, ‘햄릿은 우유부단한 인물’이라는 도식에 갇혀 햄릿이 지녔던 결의나 복수심을 제대로 파악할 수가 없게 된다. 주어진 정답에 순응하면서 나만의 해석을 할 수 없는 것이다. 

우리는 주어진 권위에 순응해 판에 박힌 정답만을 외우는 경우가 많다. 그러한 습관이 들다 보면 진정으로 보아야 할 것들을 보지 못한다. 이 책에서는 우리에게 익숙한 다양한 사례를 들여다보며, 그런 정답이 ‘허튼소리’일 수도 있다고 재차 강조한다. 

혹은 그 당시에 그게 정답이었더라도, 이제 와서는 별 의미 없는 소리가 아니냐고 묻는다. 이렇게 정답에 질문을 던지는 습관이 우리에게 정답보다 훨씬 중요한 무언가를 던져줄 수도 있다고 말한다. 

한동안 인문학 열풍이 불어서 인문학은 교양인의 필수 덕목이 되었다. 스티브 잡스의 사례를 들어가며 인문학이 창의성의 원천이라는 이야기도 여기저기서 들린다. 그런데 도대체 인문학이 무엇인가? 

인문학을 알아두면 고상해 보이는 교양쯤으로 알고 있는 사람도 많다. 우리는 어떤 지식을 인문학적이라고 평가하지만, 사실 인문학은 지식 자체보다는 지식을 추구하는 방식에 가깝다. 김경집 교수가 썼던 글을 인용하면, “내가 물었던 것”에서 “물었던 나”로 돌아오는 것이 인문학이다. 

수십 년간 대중과 소통해온 인문학자 김경집은 이 책에서 ‘질문하는 태도’를 통해 진짜 인문학을 소개한다. 이 책을 보다 보면 재미있는 이야기나 지식도 많이 얻을 수 있다. ‘어 이런 거였어?’ 할 만한, 역사와 문화, 가치에 관련된 우리가 미처 몰랐던 ‘인문학적인 이야기’가 많다. 

하지만 이 책이 진정으로 가치 있는 것은 스스로 질문하고 생각하는 법을 훈련하게 만든다는 점이다. 유명 인사들이 인문학을 강조하면서, 인문학을 공부하면 창의성을 기를 수 있다는 이야기가 많이 퍼졌다. 그런데 정작 인문학이 어떻게 창의성으로 연결되는지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이 책은 인문학적 태도와 방식이, 끊임없이 의심하고 질문하고 탐구하는 습관이 통찰력과 창의성으로 연결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정답에 길들여졌지만 처음 보는 문제 앞에서 정답을 찾지 못해 고민하는 독자, 전에 없던 발상으로 돌파구를 마련해야 하는 독자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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