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심야의 철학도서관... 인간의 의식, 영혼도 뇌도 아닌 세계를 찾아서
[신간] 심야의 철학도서관... 인간의 의식, 영혼도 뇌도 아닌 세계를 찾아서
  • 김민성 미래한국 기자
  • 승인 2018.09.12 0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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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이 없다’ ‘의식이 깨어 있다’고 말할 때 의식이란 무엇일까? 의식이 없는 사람을 바라볼 때의 막막함과 인간 의식의 무한한 가능성을 이야기할 때의 경이로움 사이에는 분명한 간극이 존재한다. 우리가 꿈을 꿀 때, 깨어서 이런저런 감각과 생각에 사로잡혀 있을 때…… 어느 때에나 우리 머릿속에는 ‘말 없는 회색 물질’인 뇌가 들어 있을 뿐이다.

이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너무도 생생한 우리 자신의 의식 경험과 우리가 결코 알 수 없고 가늠할 수조차 없는 타인의 의식 경험, 심지어는 동물과 식물의 ‘의식’까지도 과학은 물리적으로 완벽히 설명 가능한 대상이라고 여긴다. 또 그에 관한 과학적(물리적) 증거들도 날로 쌓여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물리적으로 구현될 수만 있다면 과학이 인간 의식을 만들어낼 수 있으리라는 가능성, 알파고가 우리와 같은 의식을 지닌 존재가 될 수 있으리라는 전망에 대해 의심의 여지없는 명징함보다는 신비감을, 때로는 회의감을 더 느낀다. 의식의 정체正體는 사실, 의식을 두뇌활동의 산물로 설명하고 그것을 인공지능이라는 기계적 의식으로 구현한 과학의 시대인 지금보다 더 오래전부터 인간의, 특히 철학의 주된 관심사였다. 이 책은 의식에 대한 우리의 그 오랜 관심이 철학이라는 학문 속에서 어떻게 탐구되고 논의되어왔는가를 다룬다. 

이야기의 시작은 깊은 밤 도서관. 대학원생 톨렌스와 포넨스는 지하실에서 ‘어떤’ 냄새를 맡는다. 두 사람이 숨 막혀 죽을 뻔한 냄새가 ‘알싸한 단내’라는 법대생 톨렌스와 ‘쉰내’라는 철학과 학생 포넨스. 둘은 동일한 화학물질로 구성된 공기를 두고 서로 다른 경험을 한다. ‘냄새’라는 객관적 사실에 대해 이견이 있을 수 없다고 말하는 톨렌스에게 답하며, 포넨스는 (이 책의 원제인) ‘의식에 관한 대화A Dialogue on Consciousness’의 포문을 연다. “공기 중에 어떤 화학물질이 있느냐는 객관적 사실의 문제이지만, 그 화학물질의 냄새는 우리 마음이 그 물질을 어떻게 지각하느냐에 달려 있다는 거야. 네 마음은 이렇게 지각하고, 내 마음은 저렇게 지각할 수 있다는 말이지. 네가 냄새 분자를 말하는 거라면, 냄새 자체는 같아. 하지만 우리가 냄새 맡을 때의 느낌을 말하는 거라면, 다르지.” 톨렌스의 생각은 다르다. “우리가 냄새를 어떻게 지각하느냐는 객관적인 문제여야 한다고 봐. 그저 뇌가 정보를 처리하는 방식의 문제일 뿐이니까. … 해답은 전부 뇌 안에 있어.” 

책에는 두 주인공 톨렌스와 포넨스 외에, 의식에 관해 각기 다른 이슈를 들고 대화에 참여하는 등장인물들이 등장한다. 그 첫 인물은 “누가 뭐래도 영원한 영혼의 존재를 믿”는다고 말하는 ‘누스’. 그는 몸과 마음을 영혼과 구분 지으면서, 몸이 썩으면서 생각하고, 느끼고, 개성을 나타내고, 감정을 품는 뇌(마음)도 함께 썩었을 때, 그래서 영혼이 텅 비게 되었을 때조차 그 영혼은 자신이라고 주장한다. 누스와의 대화는 의식 문제를 본격적인 철학 논의로 끌어오며 그 유명한 17세기 데카르트의 상상가능성 논증을 소환한다. 

데카르트의 상상가능성conceivability 논증 

1. 나는 내 마음이 내 몸 없이 존재하는 것과 내 몸이 내 마음 없이 존재하는 것을 맑고 또렷하게 상상할 수 있다. 
2. X가 Y 없이 존재하는 것과 Y가 X 없이 존재하는 것을 맑고 또렷하게 상상할 수 있으면, X는 Y 없이 존재할 수 있고 Y는 X 없이 존재할 수 있다. 
3. 그러므로, 내 마음과 몸은 제각기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있다. 
4. 그러므로, 내 마음과 몸은 다르다. 

세 사람은 데카르트의 논증, 우리가 상상할 수 있다는 사실(자연적/법칙적 가능성과 대비되는 형이상학적 가능성)을 죽어서 마음 없이 관에 놓인 몸, 스키 타기, 슈퍼맨이 된 클라크 켄트 등의 상상 가능한 사례를 들어 알기 쉽게 설명한다. 그러나 상상가능성이 존재 여부를 결정하는가는 또 다른 문제다. 영혼이 존재한다는 누스의 주장, 데카르트의 상상가능성 논증은 신학자 앙투안 아르노의 반론과 데이비드 흄의 명저로 꼽히는 『인간 본성에 관한 논고』, 보헤미아의 엘리자베스 공주가 지적한 공간관계에 의해 재차 반박되면서 그 모순을 드러낸다. 

누스에 이어 등장한 인물은 과학도서관에서 온 벨라. 그녀는 신경과학, 인지과학에서 기술공학까지 광범위한 영역에서 의식에 관한 과학의 설명을 대변한다. 벨라에 따르면 과학자들은 이미 ‘생각하는 기계’, 즉 컴퓨터를 만들었다. 알파고가 등장하기 한참 전인 1997년에 이미 컴퓨터 디프블루는 인류 역사상 최고의 체스 선수인 가리 카스파로프를 이긴 바 있다. 20세기 중반 이후 마음은 줄곧 과학적으로 탐구될 수 있는 대상이라고 여겨져왔다. 심지어 마음은 물리적으로 기술하는 세계의 일부에 불과하며, 우리의 모든 감각과 우리가 경험하는 모든 현상은 과학적으로 증명되고 설명될 수 있다는 사실도 어떤 이들에게는 당연하게 받아들여진다. 


과학이 마음이 작동하는 방식 혹은 의식과정, 나아가 의식 자체를 남김없이 설명하는 것은 과연 시간문제일 뿐일까? 의식을 인식과 동일시하는 벨라에게 포넨스는 또 다른 의식 개념이 있음을 상기시킨다. “마이크로프로세서가 과열될 때, 컴퓨터가 일자리를 못 구하는 실직자처럼 느낄까? 컴퓨터가 뭐라도 느끼긴 할까? 자기 점검을 포함한 컴퓨터의 활동에 느낌이 따라다닐까? 난 의심스러운걸.” 이것이 단지 복잡함의 문제일 뿐, 현상이 추가된 것은 아니라는 벨라에게 포넨스는 다시 신경과학의 ‘맹시blind-sight’와 토머스 네이글이 자신의 유명한 논문 「박쥐가 된다는 건 어떤 느낌일까?」에서 제시한 반향정위 개념 등을 들어 ‘물리적인 것’이 전부가 아닐 가능성을 제기한다. 

네이글의 논증 

1. 어떻게 주관적으로 보이는 현상적 속성이 사실은 객관적이며 물리적인 속성일 수 있는지를 설명하는 이론적 틀이 있을 경우에만, 물리주의가 어떻게 참일 수 있는지를 이해할 수 있다. 
2. 우리에겐 그런 틀이 없다. 
3. 그러므로, 우리는 물리주의가 어떻게 참일 수 있는지 알 수 없다. 

네이글의 논증에 따르면 과학은 물리주의가 참인지 여부를 결정할 틀을 제공하지 못한다. 포넨스는 과학의 객관적 정보로부터 현상적 성질의 주관성을 뒷받침하는 틀을 어떻게 만들지, 만들 수 있기나 한지조차 알기 힘들다고 말한다. 프랭크 잭슨은 물리주의의 문제점을 드러낼 사례로서 가상의 인물 ‘메리’를 끌어온다. 평생 흑백 방에 갇혀 흑백 강의로 색시각에 관한 ‘모든 물리적 사실’을 배운 메리가 자신이 살던 방에서 나와 난생처음 빨간 장미를 본다면, 물리적 진리 외에 새로운 무언가를 알게 될까? 메리가 방을 나가 빨간색을 보는 순간, 모든 것이 달라진다고 말할 수 있을까? 지식 논증은 이를 그럴듯하게 설명한다. 

지식 논증 

1. 물리적 진리로부터 연역할 수 없는 진리가 있다. 즉, 메리가 흑백 방을 나갈 때 새로 알게 되는 진리가 있다. 
2. 물리적 진리로부터 연역할 수 없는 진리가 있다면, 물리적 진리가 함축하지 않는 진리가 있고, 따라서 물리주의는 거짓이다. 

지식 논증에서 본격화된 물리적 사실 및 물리적 속성과 의식에 관한 세 사람의 대화는 메리 사례에서 현존하는 심리철학자들의 주요 개념을 아우르며 잭슨의 지식 논증, 차머스의 좀비 논증 등 구체적인 반물리주의 논증으로 나아간다. 마음이 세계를 표상하는 방식, 경험의 투명성, 설명 간극, 인식론적 간극, (과학의 객관적 용어로 기술할 수 없는) 경험의 주관성 등은 물리주의를 주장하는 벨라의 예리한 반박들에 의해서도 쉽게 격파되지 않고, 심지어 우리가 아직 무지無知하다는 사실로도 속 시원히 반박되지 않는다. 이 책의 묘미는 바로 이 치열한 논증과정에서 확연히 드러난다. 

‘한 철학자의 긍정식은 다른 철학자의 부정식이다.’ 책의 시작에 붙은 이 철학 격언은 포넨스와 톨렌스, 누스, 벨라, 아니무스, 에피스타인 등 여러 등장인물이 나누는 대화를 따라가며 그 논증의 엄격함을 들여다보다 보면 좀더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이들은 각자 뚜렷한 입장과 그것을 드러내는 말하기 방식을 갖고 있다. 누군가 무엇을 주장하면, 다른 사람이 이를 반박하고, 그 반박은 또다시 반박된다. 포넨스와 톨렌스를 중심으로 한 이들의 대화는 매일 밤 의식의 세계를 집요하게 파고든다. 

책은 현상적 의식의 주관성을 완벽하게 설명해내지 못하는 물리주의의 문제에 대해 다루면서도, 조건부로 물리주의 입장을 취하는 톨렌스와 끝까지 다른 가능성을 열어둔 채 반물리주의 논증을 펼치는 포넨스를 화해시키지 않는다. 독자가 과학을 절대적으로 신뢰하는 벨라의 편에 있든, 그보다는 회의적인 물리주의에 다가서 있는 톨렌스의 편에 있든, 반물리주의 쪽에서 다른 주장들을 두루 이해하는 포넨스의 입장에 가까이 있든, 이 책의 엄격한 논증 방식은 ‘의식’이라는 까다롭고 신비로운 주제에 관해 저마다의 자리에서 생각해봄직한 논의를 제공한다.

『심야의 철학도서관』은 의식이라는 심오한 주제를 젊은 대학원생들의 농담, 심지어 인간이 아닌 트롤의 입까지 빌려 대화 형식으로 알기 쉽게 풀어내지만, 의식을 다루는 심리철학에서 중대한 기여를 한 저자들이 쓴 책인 만큼 그 논의가 결코 가볍게 다루어지지는 않는다. 의식 문제에 오랫동안 깊이 천착해온 두 심리철학자 토린 얼터와 로버트 J. 하월이 대화체로 써내려간 심야 철학 토론은 ‘의식이란 무엇인가’라는 단순해 보이는 질문이 우리 자신에 관해 얼마나 많은 물음을 던질 수 있는지를 일목요연하게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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