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셀던의 중국지도...잃어버린 황해도, 향료 무역 그리고 남중국해
[신간] 셀던의 중국지도...잃어버린 황해도, 향료 무역 그리고 남중국해
  • 김민성 미래한국 기자
  • 승인 2018.11.10 07:0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저자  티모시 브룩은 1973년 캐나다 토론토대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1984년 미국 하버드대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스탠퍼드대와 토론토대 교수를 거쳐 현재는 브리티시컬럼비아대(UBC)의 중국사 교수이자 캐나다 왕립학회 회원이다.  그의 주요 관심분야는 명대의 사회·문화사, 2차 세계대전 시기 일본의 중국 침략, 세계사와 인권에 대한 역사학적 관점이다.

저서로 『쾌락의 혼돈-중국 명대의 상업과 문화』 『근대 중국의 친 일합작』 『베르메르의 모자』 『능지처참』(공저)이 있다. 『하버드 중국사 시리즈』(전6권)의 책임편집자로 편찬을 이끌었으며, 그 중 『하버드 중국사 원명: 곤경에 빠진 제국』을 썼다
 

다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이 상호작용하는 놀라운 이야기 

저자는 셀던 지도가 당시 천원지방 형의 전형적인 중국 지도답지 않다는 점이 문제의 시작이라 한다. 해안선이 아닌 해로를 먼저 그리고 이를 골격으로 육지를 채워 넣은 식으로 그려졌음에 주목한 것이다. 즉 셀던 지도는 남중국해를 중심에 놓고 육지를 주변부로 밀어내며 바다를 고찰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이 지도는 어디에서 온 것인가? 셀던은 어떻게 이 지도를 얻게 되었는가? 그리고 가장 중요한 질문으로, 이 지도는 당시의 세계에 대해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주는가? 브룩 교수는 셀던 지도를 이 책의 중심에 놓고 미궁 속을 헤매듯 지도의 여러 실타래를 풀어가며 이 지도가 만들어진 17세기와 남중국해가 얼마나 중요했는지를 밝혀나간다. 

브룩 교수는 책 전체를 지도 한 장에 얽힌 이야기로 채우면서, 정작 셀던 지도의 비밀에 대해서는 마지막 8장으로 미루고 1장에서 7장까지에는 마지막 장을 서술하기 위한 배경과 실마리를 피카레스크처럼 다양하게 배치한다. 지도를 직설적으로 설명하기보다 지도를 입수하여 읽었던 영국에서 출발하여 때로는 중국으로, 때로는 17세기 초로 왕래하면서 언제, 어디서, 왜, 어떻게 이 특별한 지도가 만들어졌는지에 관한 비밀을 풀어간다. 저자의 표현처럼 ‘거꾸로 떠나는 여행’이다. 

책의 첫 여행은 영국의 스튜어트왕조(1603~1714) 시대, 법률가 존 셀던이 지도를 수집하고 도서관 사서 토머스 하이드가 중국인 심복종(난징 출신으로 1683년부터 1691년까지 유럽에 체류했다)의 도움을 받아 주석을 달았던 시기에서 시작한다. 두 번째 여행은 명조(1368~1644)의 중국을 둘러싼 바다로, 중국과 아시아 상인들이 만든 무역로에 유럽인 항해가들이 참여하여 이 지역을 하나의 해양 교역 체제로 통합하던 남중국해를 찾는다.

영국 동인도회사 3인방 존 사리즈, 리처드 콕스, 윌 아담스 그리고 나가사키의 중국인 지도자 이단(李旦) 이야기로 이어진 뒤, 후반부에서 셀던 지도와 관련한 특별한 역사로, 셀던 지도가 만들어질 때가지 거슬러 올라가는 해도와 지도의 역사까지 짚어낸다. 저자의 이야기는 장섭과 그의 항로 연구서인 『동서양고』와 윌리엄 로드가 해독할 수 없었던 『순풍상송』까지 이른다. 이 여정은 직접적으로는 셀던 지도의 비밀을 해독하는 과정이기도 했지만 지도 자체를 넘어 독자들에게 이것이 그려진 세계를 이해하는 시야를 제공하는 방법이었다. 

이 여행에서 저자는 애초에 기대하지 못했던 엄청난 사건과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펼쳐간다. 예를 들면, 런던에서 일본의 음란물을 불태운 사건, 만력제의 교역정책, 중국 나침반의 디자인, 새뮤얼 테일러 콜리지가 일부러 잘못 쓴 ‘제너두’(상도로 추정)에 대한 일, 사람의 유해를 보들리안도서관에 기증하는 것, 성전 기사단의 선조 교회 등이다. 이 책은 이처럼 지도와 관련된 흥미로운 사건과 사람들의 이야기로 가득 차 있는데, 이는 이 시대가 얼마나 풍요롭고 복잡했으며, 얼마나 지구적으로 긴밀히 연결되어 있었는지를 보여주려는 저자의 의도에 따른 것이다. 

사라진 지도 제작자의 비밀을 해독하다 

돌고 도는 미로를 통해 드디어 저자는 셀던 지도의 비밀 6가지를 제시한다. 첫째는 앞서 언급한 것처럼 지도에서 중국 대륙이 전혀 중요하게 취급되지 않았다는 것이고 둘째는 17세기 무렵의 지도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정확한 축척을 유지한다는 점이다. 답은 간단하지만 이에 도달하기까지 저자의 해독 과정은 매우 복잡했다. 셀던 지도에는 나침도 밑에 눈금자가 있는데, 이것이 단순 장식이 아니라 실제 축척을 반영하였다는 것이다.

간략히 소개하면 이 지도의 축척은 475만 분의 1인데, 자의 1촌(3.75센티미터)이 4노트 속도로 하루를 항해한 거리로 계산하면 이 축척과 일치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4노트라는 선박 속도는 명대의 항해노트인 『순풍상송』을 영국까지 찾아가 분석했던 20세기 중국 역사학자 향달이 밝힌 것이다. 기존에 알려진 6.25노트보다 느린 수치였다. 향달이란 사학자 덕분에 브룩 교수는 지도 제작자가 항로를 그릴 때 실제 사용한 축척을 그대로 반영한 것임을 밝힐 수 있었던 것이다. 

세 번째 비밀은 지도에 자기장의 특징이 반영되어 있다는 것이고, 네 번째는 남중국해 가운데 부분이 축소되었다는 것이다. 둘 다 일종의 속임수였다. 특히 왜 남중국해를 축소하여 그렸을까? 당시의 지도 제작 기법에서는 제작자가 곡선을 평면에 옮기는 과정에서 왜곡은 피할 수 없었다고 한다. 그 피할 수 없는 왜곡을 한 지역이 바로 남중국해의 난사군도, 시사군도 지역으로 셀던 지도의 정중앙이다.

저자는 그 바다 지역은 여러 가지로 쓸모가 없었고, 그러므로 선주들의 거래지역인 그 주변의 도서 지역이나 대륙을 더 정확하게 강조했다는 것을 증명해낸다. 흥미로운 사실은 셀던 지도 제작자가 얼버무렸던 지역이 오늘날 중국이 주변국들과 해상 영토 분쟁을 벌이는 핵심지역이라는 사실이다. 이 대목에서 브룩 교수는 과거의 현재 사이의 연관성에 대한 관심을 환기하는 한편 동시에 역사적 맥락과 현재의 정치적 의도 사이의 간극 또는 강조한다. 이 지도는 상인들이 어디로 가야 할지 보여주는 순수한 해도였다는 것이다. 
이 책은 지도제작자가 누구인지는 미제로 남긴 채 나머지 두 가지 비밀, 즉 셀던 지도가 ‘언제’, ‘어디서’ 제작되었는가 하는 문제에 대한 저자의 추론으로 대미를 장식한다. 

17세기 남중국해 네트워크, 세계화의 첫 시작 

원서와는 달리『셀던의 중국 지도_잃어버린 고지도, 향료 무역 그리고 남중국해』의 한국어판 겉표지의 안쪽 면에는 셀던 지도를 넣었고, 표지에는 남중국해를 중심으로 한 항해도를 선명하게 표기하였다. 지도에 등장하는 모든 항로는 중국 동남부 푸젠성(장저우와 취안저우)에서 사방으로 뻗어나간다. 동양(東洋)노선 즉 동쪽 바다 노선은 동쪽으로 필리핀에 도달한 후 다시 남쪽 방향의 향료제도까지 이르는 일련의 경로다.

서양노선은 베트남과 남쪽 방향으로 베트남과 인도네시아를 거쳐 인도양으로 향하는 경로인데, 실질적으로 동양과 서양노선은 남중국해에 둘러 그려진 큰 원의 가장 아래 끝에 위치한 인도네시아의 자바에서 만난다. 북양노선은 중국 해안을 따라 북향하여 류큐와 일본의 나가사키, 고베로 연결된다. 그리고 그 간선들 사이는 훨씬 더 많은 지선들로 연결된다. 한 폭의 표지를 통해 17세기 남중국해 네크워크를 보여주려 한 것이다. 

“만약 17세기 세계무역에 중심이 있었다면 유럽도 아니고 은이 흘러나온 페루도 아니며 중국도 아니었다. 남중국해가 아니었을까 생각한”다는 브룩 교수의 새로운 시각처럼 당시 남중국해는 동아시아 모든 항구와 국가들의 공동무역지대였으며, 향신료 무역이 유럽을 휩쓸자 멀게는 고아, 아카풀코, 암스테르담의 항구와 국가들도 참여하던 무역지대였다. 

이 책을 옮긴 중국사학자 조영헌 교수(고려대 역사교육과)는 명 말기 조공체제와 해금 정책이 강고하게 시행되는 것 같은 이 시대를 이해할 때 셀던 지도는 분명 기존 관념과는 사뭇 다른 이미지를 강렬하게 준다고 한다. 밀무역과 묵인된 사무역이 점차 증가하는 모순적인 해양 인식을 이 지도처럼 가시적으로 명료하게 보여주는 자료는 지금까지 없었기 때문이다. 17세기 중국과 동아시아는 결코 바다로부터 고립된 사회가 아니며, 세계가 본격적으로 연결되기 시작하는 드라마틱한 상황 속으로 빠져들고 있었음을 셀던 지도와 이 책은 웅변하고 있다는 것이다. 

본 기사는 시사주간지 <미래한국>의 고유 콘텐츠입니다.
외부게재시 개인은 출처와 링크를 밝혀주시고, 언론사는 전문게재의 경우 본사와 협의 바랍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