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지독하게 인간적인 하루들.... 미리 알아 좋을 것 없지만 늦게 알면 후회스러운 거의 모든 불행의 역사
[서평] 지독하게 인간적인 하루들.... 미리 알아 좋을 것 없지만 늦게 알면 후회스러운 거의 모든 불행의 역사
  • 김민성 미래한국 기자
  • 승인 2018.12.20 0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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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마이클 파쿼은 논픽션 작가. 《워싱턴포스트》의 칼럼니스트이자 편집자로 일했다. 역사의 한 장면을 끄집어내어 생동감 넘치면서도 유쾌하게 써내려가는 필체로 유명하다. 교과서에 수록되는 공식적인 역사보다 그 뒤에서 펼쳐지는 인간 군상의 욕망과 실체를 가감 없이 드러내는 이야기를 쓰는 데 주력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왕실 스캔들A Treasury of Royal Scandals》, 《위대한 미국인의 스캔들A Treasury of Great American Scandals》, 《궁전의 문 뒤에서Behind the Palace Doors》, 《차르의 비밀스러운 삶Secret Lives of the Tsars》 등의 베스트셀러가 있다.
 

인생이 참 풀리지 않는 한 남자가 있었다. 또래보다 한 10년은 늙어 보였던 그는 바늘구멍보다 좁은 취업의 문을 겨우 뚫고 힘겹게 직장 생활을 시작했지만 매일 실수를 연발하여 호되게 야단을 맞고 동료들에게까지 왕따 취급을 당했다. 

어느 날이었다. 슬슬 머리가 빠지고 배가 나오기 시작한 그를 견디지 못한 애인에게서 한마디 문자가 날라 왔다. “헤어져.” 한동안 침울에 빠져 아무 일도 할 수 없었던 그를 토닥이며 사장이 자연스럽게 말을 걸었다. “You’re fired.”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오던 그는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은 마음에 분식집에서 목구멍에 허겁지겁 떡볶이를 쑤셔 넣다 체해 정말로 죽을 뻔했다. “나보다 더 망가진 인생 있음 나와 봐!” 쓰레기더미로 악취를 풍기는 골목길에서 그는 허공에 대고 주먹을 휘두르며 술 취한 목소리로 질러댔다. 그러자 어디선가 이런 대답이 선명하게 들려왔다. “그래? 그럼 진짜 지옥을 보여줄게.” 

애인한테 차이고, 회사에서 잘리고, 떡볶이를 먹다가 죽을 뻔하고……. 우리가 일상에서 겪을 수 있는 가장 ‘지옥 같은’ 경험일 것이다. 하지만 정말로 ‘지옥’을 맛본 사람들은 따로 있고, 그들은 차원이 다른 이야기를 들려준다. 3월 10일, 총으로 협박하고 다이아몬드를 사다 줘도 에디 피셔는 아내 엘리자베스 테일러의 마음을 되돌릴 수 없었고 결국 그날 바람난 아내의 기사가 났다. 4월 21일, 신인 뉴스앵커 A. J. 클레멘트는 방송에 데뷔한 그날 뉴스가 시작한 줄도 모르고 욕을 지껄였다가 해고당했다. 1월 8일, 조지 H. W. 부시 대통령은 이날 공개적인 국빈 만찬 자리에서 구토를 했고 텔레비전에서 이 모습이 수도 없이 재생되는 굴욕을 겪었다. 

이처럼 인생 최악의 불행을 겪었을 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라는 달콤한 사탕보다 ‘지옥행’이라는 달콤씁쓸한 초콜릿이다. 물론 여기서 ‘지옥’이란 가까이에서 본 비극이 아니라 멀리서 본 희극이다. 오늘 우리가 겪은 우여곡절이 아무리 크고 대단해 보일지라도, 세계사적인 관점에서 넓게 조망하면 지극히 뻔하고 사소한 일이거나, 어쩌면 웃겨 보일 수 있다. 《지독하게 인간적인 하루들》은 그러한 역사 속 실수와 불운의 에피소드를 매일매일 넘겨볼 수 있는 365일의 일력으로 블랙코미디처럼 유쾌하게 펼쳐낸다. 하루하루 나에게 일어난 불행을 1월 1일에서 12월 31일까지 역사 속 가장 끔찍한 이야기와 견주어 읽다 보면 인생에서 어떠한 절망을 만나더라도 웃으면서 건널 수 있을 것이다. 

아침이나 저녁에 텔레비전에서 줄곧 방영되는 이른바 ‘막장 드라마’는 모든 사람들이 욕을 하는 프로그램이면서도 동시에 시청률은 ‘대박’을 찍곤 한다. 이 책은 역사 속에서 그러한 통속 드라마를 골라내 가감 없이 보여준다. 정치인, 연예인, 유명 인사들의 남편이나 아내가 바람을 피우고, 이혼을 하고, 뒤통수를 때리는 사기와 배신이 펼쳐지며, 갈등이 표출되어 결투와 살인이 벌어진다. 가장 날 것의 감정이 폭발하고 극적인 갈등이 빚어지는 순간 우리가 일상에서 억누르고 숨겨왔던 감정이 해소되고 카타르시스를 자극한다. 텔레비전 드라마보다 더한 막장을 보고 싶다면 2월 27일, 유명 정치인이 애국자의 아들을 죽이면서 드러난 낯 뜨거운 불륜과 치정, 속임수와 살인극의 총집합을 즐겨보자. 직장 상사가 지속적으로 당신을 닦달한다면 7월 22일, 국가적 영웅이 된 정부 요원을 시기하여 죽을 때까지 괴롭힌 치졸한 FBI 국장의 이야기를 참고하자.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다”라는 말이 있다. 역사는 지체 높고 권위 있는 사람들이 이끌어간 것처럼 쓰이는 경우가 많다. 난세에 뛰어난 영웅이 등장하여 분투 끝에 고결한 승리를 얻는 위대한 서사는 언제나 우리 주변에 넘쳐난다. 그런데 그런 영웅들이 숨겨왔던 일말의 진실이 있으니, 바로 그들도 먹고, 자고, 싸고, 늙고, 병들어 죽는다는 것이다. 이 책은 그런 아주 단순한 사실을 재치 있게 상기시키며 우리와 하등 다를 바 없는 왕, 귀족, 교황, 대통령 등의 지극히 ‘인간적인’ 굴욕과 망신의 순간들을 보여준다. 훌륭한 임무 수행에도 불구하고 칭찬받기는커녕 창피를 당한 적이 있다면 1월 30일, 청교도 혁명을 일으켜 찰스 1세를 교수대로 보낸 올리버 크롬웰이 어떻게 똑같은 방식으로 부관참시 당했는지 살펴보자. 새똥을 맞거나 길거리에서 넘어져 망신을 당했다면 2월 4일, 난데없이 크림 파이를 얻어맞고 굴욕적인 사진이 찍혀 전 세계로 송출된 컴퓨터 황제이자 대부호 빌 게이츠의 사례를 참고하자. 

세계사를 보면 참 끔찍한 사건들이 많다. 세계대전과 같은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대통령 암살, 인종차별, 대량학살 등 무시무시한 일들은 오늘날에도 어김없이 벌어진다. 그런데 이런 사건들이 일어난 경위나 여파에 대해 우리는 잘 기억하지 못한다. 그래서 인간은 끊임없이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 책은 단순히 끔찍하고 유명한 사건들을 모아놓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이 일으킨 파괴적인 결과와 잘 알려지지 않은 후일담에 주목한다. 교과서에서 한줄로 언급되는 데 그쳤던 수많은 사건들이 이후 어떻게 처리되었고 또 새로운 문제를 일으켰는지 흥미진진하게 서술된다. 이를테면 4월 16일, 링컨이 암살된 이후 시민들의 애도가 격해지면서 곳곳에서 구타가 일어나고 전직 대통령들의 집이 파손되었던 일을 살펴보자. 또는 제1차 세계대전에서 혁혁한(끔찍한) 공을 세운 독가스 무기를 개발한 장본인이 12월 10일 노벨화학상을 받은 프리츠 하버였다는 이야기를 참고하자. 

1년 365일 매순간이 즐겁고 신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역사도 그러하다. 역사는 투쟁과 승리, 결단과 발견, 용기와 혁명으로 가득하지만, 정말로 불행한 날들도 그에 못지않고, 어쩌면 그러한 날들이 더욱 ‘인간적’이다. 베스트셀러 작가 마이클 파쿼는 유려하고 재기 넘치는 글 솜씨로 불행하다 못해 지독한 동물 ‘인간’의 역사를 고통스럽기에 짜릿하고 위험천만하기에 스릴 넘치는 우리네 ‘일생’에 빗대어 서술한다. “여기서 더 떨어질 바닥이 있을까?” 하며 비관에 빠진 사람들에게 이 책은 이렇게 말한다. “오늘 하루가 아무리 엉망이었어도, 역사 속 누군가는 훨씬 더 끔찍한 일을 겪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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