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명수 서울신학대 현대기독교역사연구소장 “3·1운동은 자유우파 이념의 근대적 시민 운동”
박명수 서울신학대 현대기독교역사연구소장 “3·1운동은 자유우파 이념의 근대적 시민 운동”
  • 인터뷰·사진 고성혁 미래한국 전문기자
  • 승인 2019.02.28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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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북한의 위협에서 해방하는 정신으로 계승해야”

기미년 3·1운동이 100주년을 맞았다. 그 날의 함성은 대한민국 건국 독립의 정신이 되었다.이러한 3·1운동의 의미와 정신을 좌파에 빼앗겨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는 학자가 있다. 서울신학대 현대기독교역사연구소장인 박명수 교수가 그 주인공이다.

북한과 3·1운동 100주년을 기념하겠다는 문재인 정부의 생각은 이 점에서 무언가 박자가 맞지 않는다. 100년 전 3·1운동을 기획한 이들의 생각은 무엇이었고, 3·1운동은 이후 해방공간에서 대한민국 건국에 어떤 토양을 제공했는가. <미래한국>이 박명수 교수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박명수 교수는 오늘날 3.1운동은 중국과 북한의 위협에서 해방하는 정신으로 계승해야한다고 말했다.
박명수 교수는 오늘날 3.1운동은 중국과 북한의 위협에서 해방하는 정신으로 계승해야한다고 말했다.

- 3·1운동을 보도했던 당시 외신 보도에 따르면 비폭력(unarmed) 저항운동에 그 초점을 맞추고 있는 듯합니다.

아마 비폭력 저항운동으로는 처음인 듯합니다. 그런데 2.8 독립선언에는 끝까지 싸운다는 구절이 있어요. 그런데 기미독립선언서에는 그런 말이 없거든요. 그것은 아마도 그 당시 선택의 여지가 없기 때문 아닌가 합니다.

우리에게 무기가 있는 것도 아니고 말이죠. 또 무기를 가지고 무장 폭동을 한다고 해도 저쪽(일본)은 어마어마한 폭력을 가지고 있는데 이럴 경우엔 비폭력 저항밖엔 없지요. 그런 점에서 비폭력 저항이라는 선택은 잘 했고 기독교인들 가운데 해외에서 국제사회에 우리는 비폭력으로 평화적으로 했는데 일본이 폭력적으로 우리를 억압한 것을 증명해 보였다는 점에서 일본의 실상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고 봅니다.

우리 3·1운동은 국제사회에 평화운동이라는 것을 호소했다는 것이 당시 아시아 각국의 피지배 민족에 영향을 준 것이죠.

- 흔히 3·1운동을 미국의 우드로 윌슨 대통령의 민족자결주의에 영향을 받았다고 말하는데 사실입니까?

어느 정도 영향을 받은 것은 사실이죠. 그런데 윌슨 대통령이 말한 민족자결주의 영향으로 극동의 한반도에서 3·1운동이 일어났다는 것은 당시 우리 민족지도자들이 그만큼 세계 정세의 흐름을 파악하고 있었다는 반증이기도 합니다.

사실 윌슨 대통령의 민족자결주의는 유럽의 오스트리아 헝가리제국에 속해있던 발칸반도 등 유럽을 향한 말이었습니다. 그리고 윌슨 대통령이 민족자결주의라고 하지만 핵심은 소위 ‘민족’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민족’이 아니라 민주적이니 세계질서를 만들자는 말이 윌슨 대통령이 말하고자 한 핵심입니다.

강대국에 의해 억압받는 것이 아니라 자주민에 의한 민주적 국가 건설을 하면 세계평화가 올 것이라는 말입니다. 매우 이상적인 말이죠. 그러다 보니까 세계 각처 피지배 민족 지도자들에서 엄청난 독립 청원서가 윌슨 대통령한테 왔다는 것 아닙니까?

그 당시 미국 입장에서는 감당할 수 없는 것이었죠. 미국은 사실 민족이라는 말을 강조하지 않습니다. 다민족 국가 아닙니까? 미국이 갖고 있는 자유민주적인 세계질서를 확산하고자 하는 것이죠. Liberal Democratic World Order를 구현하려는 것이 그 본질입니다.

윌슨 대통령 당시에는 실현되지 않았지만 결국 2차 세계대전 후 대부분의 식민지는 국가로 독립하고 현재는 미국 주도의 자유세계질서가 기반이 되고 있으니 윌슨의 민족자결주의는 훗날 달성되었다고 보는 것이 합당합니다. 그리고 이런 측면에서 우리 3·1운동 역시 자유민주적 세계질서에 눈을 뜨고 실제 행동으로 옮긴 측면에서 그 가치가 있다고 봐야겠죠.

일본이야말로 미국이 자유민주적 세계 질서를 이끌어가려는 데 어긋나는 행동을 하고 있다고 당시 민족지도자들은 똑바로 봤던 겁니다. 독일이 1차 세계대전으로 국제질서를 어지럽히듯이 아시아에서는 일본이 질서를 무너트리고 있다고 본 겁니다. 한마디로 일본은 아시아의 독일이라고 본 것이죠.
 

중국과 북한에서 해방되자는 3·1절 정신이 필요

- 3·1독립운동 100주년을 맞이해서 현 정부에서는 반일감정을 더 높이려 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있습니다. 맹목적 반일감정이 아니라 오늘날 3·1정신을 다시 살리는 것은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하겠습니까?

과거 100년 전 아시아의 평화질서를 누가 해쳤느냐 하면 그 때는 일본이었죠. 청일전쟁, 러일전쟁을 통해서 만주와 한반도 그리고 대만을 식민지로 만들었습니다. 일본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태평양전쟁을 일으켜 동남아시아까지 먹으려고 했던 것이 과거의 역사적 사실이지요.

전쟁을 통해 일본은 아시아, 더 나아가 세계질서를 위협한 것입니다. 우리는 일본의 압제에서 벗어나기 위한 독립운동이기도 하지만 우리의 자유를 속박하는 위협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의 표현이 바로 3·1독립운동이었다고 봐야겠죠.

그렇다면 현재 아시아의 평화질서는 누가 해치고 있습니까? 우리의 안전을 위협하는 나라는 어디인지 봐야죠. 바로 중국과 북한입니다. 여기에 초점을 둬야 하는 것입니다. 100년 전 우리 민족지도자들이 아시아의 평화질서를 해치고 우리 민족을 억압하던 일본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3·1운동을 한 것처럼 이제 우리는 중국(북한)의 위협으로부터 해방시키는 것이야말로 3·1운동 정신을 계승하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는 김정은 공산 폭압정치에 억압받는 북한동포를 해방시키는 것이야말로 3·1운동 정신을 진정으로 구현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중국이 힘이 세졌다고 과거 청나라처럼 중화제국주의로 나가려고 하는 것은 우리 민족이 경계해야 하는 핵심입니다.
 

- 북한은 3·1독립운동을 기념하지 않습니까?

북한은 3·1운동을 기념하지 않습니다. 1946년에 딱 한번 기념식을 한 것이 전부입니다. 그 때 기념식장에서 김일성 암살 시도가 있었어요. 소련군 장교가 수류탄을 막는 바람에 김일성이 구사일생 살았죠. 소련 장교는 팔이 날아갔지만요.

그래서 그 이후로는 3·1절 기념식은 한 번도 없었어요. 그러니까 유관순도 모르는 것이구요. 북한에서는 3·1절보다 김일성을 구한 소련을 더 기념하는 듯합니다. 북한에서는 기본적으로 김일성 부자와 관련된 것, 공산주의와 관련된 것만 기념하죠. 5.1 may-day 노동절은 공산국가에서 가장 큰 기념일인 것처럼 말입니다.
 

3·1운동의 정신은 사회주의가 아닌, 자유민주주의 세계질서로 가려는 희망

- 그렇다면 공산주의자들은 3·1운동을 어떻게 해석하고 있습니까?

민족지도자 33인이 주축이 된 초기 3·1운동이 확산되는 과정에서 후기로 가면 노동자 농민이 가담을 하면서 폭력적으로 변하게 됩니다. 이것을 가지고 박헌영은 초기 부르주아가 주동이 된 3·1운동은 가짜라고 말하면서 비폭력적 평화운동은 혁명의 본질이 아니라고 혹평을 합니다.

그래서 박헌영은 노동자 농민이 가담해 폭력적으로 변한 것을 진짜 혁명이라고까지 말합니다. 이것은 공산주의자들의 시각이죠. 박헌영을 비롯한 공산주의자들은 3·1운동이 실패한 것에 대해 진정한 지도자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합니다. 그 지도자는 누구겠어요? 바로 김일성입니다. 즉, 김일성 같은 공산지도자가 혁명을 이끌지 못했기 때문에 3·1운동은 실패한 것이라면서 김일성과 연결합니다.
 

- 1919년은 일본에선 대정(大政) 데모크라시 시대라는 점에서 사회주의 영향이 강하게 투영된 시기 아닙니까? 그래서 2.8독립선언서의 경우 사회주의 영향을 좀 받았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물론 그 당시 일본에 사회주의 물결이 들어오긴 했지만 3·1운동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줬다고 보지는 않습니다. 2·8독립선언서에 일부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이는 구절이 있기는 합니다. 소련에 대해서 두 가지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과거의 소련은 아시아의 위협이었다.
 

소련이라는 나라는 힘으로 세상을 지배하려고 한다. 그런데 그런 나라까지 볼셰비키혁명으로 황제가 사라지고 새로운 국제질서를 추구한다고 설명합니다. 그런데 이제 시대가 바뀌었다. 청일전쟁 이후 일본은 조선을 청나라로부터 독립시켜준다고 하면서 러시아와도 전쟁을 하고 했지만 이제(1919년 당시) 일본이 아시아와 국제질서를 위협한다고 2·8독립선언서에 설명합니다.

그만큼 국제 정세의 흐름을 파악하고 일본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죠. 소비에트 볼셰비키혁명을 거론한 측면에서는 사회주의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인식은 하고 있었다고 봐야겠지만 3·1운동이 사회주의에 영향을 받았다고는 볼 수 없습니다.
 

- 교수님은 3·1독립운동을 우파의 운동이었다고 주장하시는데 그 근거는 무엇입니까?

2·8독립선언서 마지막 부분을 보면 비록 지금 우리나라가 부족한 부분이 많지만 선진 서양의 민주주의국가를 배워 앞으로 아시아의 평화를 위해 일할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민주적 세계질서에 이바지하겠다는 것입니다. 좌파적 계급적, 공산사회질서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만 봐도 3·1운동 정신은 좌파적인 것이 아니라 우파적 운동인 것이죠. 조소앙의 임시정부 헌법초안을 보면 ‘조선공화국은 북미합중국의 헌법을 모방한다’고까지 말하고 있습니다. 즉, 김규식 선생이 파리회담에 가려고 한 것도 앞으로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질서의 핵심을 제대로 파악한 결과라고 봐야죠.

우리는 독립선언서를 말할 때 그저 일본으로부터 독립에만 초점을 두고 말해 왔는데 이제는 오히려 국제질서 속에서 우리가 어떤 국가를 건설하려 했는지를 더 자세히 볼 시점에 왔다고 생각합니다.

- 3·1독립운동이 오늘날 우리의 자유민주 건국정신과 연결되었다고 말씀하시는데요,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십시오.

기미년 3·1독립선언서를 자세히 보면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자주국임과 자주민임을 선포한다’라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자주민’이라고 하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이것은 개인의 자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권리를 가진 일종의 주권(主權)을 가진 시민(citizen)입니다.

독립선언서를 말할 때 일본의 속박에서 벗어나는 것만을 강조해 왔지만 사실은 그보다 더 크고 높은 이상이 있었습니다.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주인이 되는 민주주의 국가를 만들겠다는 의지와 인류 평화에 기여한다는 숭고한 뜻이 담겨 있습니다. 이런 의미가 그대로 현재 우리 헌법에 투영되었으니 3·1독립정신은 대한민국 건국정신에 그대로 연결된다고 말하는 겁니다.
 

3·1운동의 임시정부를 끊임없이 공격했던 공산세력

- 혹자는 상해 임시정부라고 하면 이승만 대통령은 무시하고 김구 선생만 강조하거나 또는 이승만 대 김구라는 대립 구도로 해석하는데 이 점은 어떻게 보십니까?

정말 잘못된 것이죠. 이승만과 김구는 절대로 대립 구도가 아닙니다. 오히려 상호 보완적 관계였어요. 현재 문재인 정부가 김구 선생을 띄우면서 이승만 대통령을 상해임시정부에서 지우려고 하지만 그럴수록 더 이승만 대통령의 존재가 부각되는 역설이 생깁니다.

가만 보세요. 상해임시정부 초대 대통령도 이승만 대통령이었어요. 김구 선생은 나중에 임시정부 주석이 되죠. 그럼 왜 민족지도자들이 상해임시정부 초대 대통령에 이승만을 추대했겠습니까? 바로 미국의 윌슨 대통령과 연결되기 때문이에요. 임시정부가 국제사회로부터 인정을 받기 위해서는 먼저 미국으로부터 인정을 받아야 하는데 그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적임자는 바로 이승만이었다고 모두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 현재 우리 사회의 이데올로기 투쟁은 근본적으로 남북 간 민족의 정통성 싸움, 그러니까 일종의 법통 싸움으로 연결된다고 봅니다. 그렇다면 임시정부의 법통은 대한민국으로 연결된다는 것을 어떻게 설명하실 수 있습니까?

공산세력은 끊임없이 임시정부를 와해시키고 무너트리려고 했어요. 임시정부내 공산주의자 김원봉세력이 바로 그들입니다. 상해에서 중경으로 옮겨간 임시정부에서 김원봉세력은 아예 임시정부를 해산시키자고 선동을 했어요. 그래야 공산주의 정부로 만들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김구 선생이 결사 반대했죠. 이때 김규식 선생이 김구 주석 편을 들어서 김원봉 공산주의자들의 의도가 꺾여버리게 되죠. 그러면 김원봉이 왜 임시정부를 해산하자고 했는지 아십니까? 이유는 국내에서 여운형세력이 인민위원회를 만들어 해방공간에서 정권을 잡으려고 한 겁니다.

그런데 임시정부가 들어오면 정통성이 없어지잖아요. 그러니까 김원봉이 임시정부를 해산시키려고 한 겁니다. 그런데 현 정부에서는 임시정부를 좌우합작정부인 것처럼 왜곡시키려 한다는 겁니다. 그 이면에는 임시정부도 좌우합작정부라고 하면서 남북 고려연방하고 연결시키려는 의도인 겁니다.

공산주의자들이 임시정부를 해산시키려고 획책했다는 말을 쏙 빼고 말이죠. 그러니 임시정부의 법통은 당연히 자유대한민국에 연결되는 것은 거론의 여지가 없는 말이 됩니다.

- 임시정부하면 이승만 대통령을 빼놓고 생각할 수 없는데요, 상해임시정부와 이승만 그리고 대한민국의 연결고리를 한마디로 설명하신다면?

한성감옥에 수감 당시 이승만은 ‘독립정신’에서 이런 이야기를 했어요. 뭐냐 하면 ‘한 나라의 흥망은 나라의 크기나 인구의 많음에 있지 아니하고 어떤 정치체제를 택하느냐에 있다‘고 말했습니다. 시스템 즉, 체제를 중요하게 생각했어요. 민주공화제를 택해야 한다고 잘된다고 정확하게 본 겁니다.

그리고 통상을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민생이 잘되려면 통상은 생명과 같죠. 즉 이 말은 자유민주 경제시스템이 됩니다. 그것이 그대로 현재 우리 헌법과 대한민국 체제에 녹아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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