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분석] 연동형 비례, 정치 실험이 위험한 이유
[심층분석] 연동형 비례, 정치 실험이 위험한 이유
  • 이옥남 바른사회시민회의 정치실장
  • 승인 2019.05.14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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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유래 없는 한국 연동형 비례 방식, 유권자 선택 왜곡
소수정당 난립으로 이합집산식 의회민주주의 위기 초래

미국의 정치학자 헌팅턴(Samuel Huntington)은 저서 <제3물결(The Third Wave)>에서 전 세계 민주주의는 18세기 프랑스 혁명과 미국 혁명으로 공화정과 의회정치가 성립된 제1물결, 1945년 2차 세계대전에서 패전한 독일, 이탈리아, 일본 등 전체주의국가들의 민주화와 제국주의 몰락으로 서구 식민지들의 독립이 이뤄진 제2물결에 그리고 1974년 포르투갈을 시작으로 1990년까지 유럽과 아시아, 라틴아메리카 30여 개 국가가 민주정치체제로 이행한 ‘제3의 물결’로 이어졌다고 설명했다.

물론 제1, 2, 3 물결 사이 오도넬(Guillermo O'Donnell)이 역설한 민주주의가 정착하지 못하고 급사(sudden death)하거나 고사(slow death)하여 역물결(reverse)을 일으킨 사례도 있었다. 한국은 민주주의의 제2물결(1948년 자유민주주의 근대국가 설립)과 제3물결의 흐름 속에서 1987년 민주적 이행(democratic transition)을 이뤘다. 이후 여야가 각각 2번의 평화적 정권교체(two times turnover)를 했고 세계 10위 규모의 경제, 중산층의 성장 등을 통해 민주주의 공고화(consolidation) 조건도 갖췄다.

‘독재’라는 말은 이제 국민들의 정서와 기억 속에서 사라지는 듯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에서 독재는 또 다른 버전으로 부활되고 있다. 미국의 싱크탱크인 AEI는 작년 12월 세미나를 통해 한국의 자유민주주의, 남북관계 및 한미동맹에 대한 현 정부의 여러 정책과 통치행위를 진단한 후 문재인 정부를 ‘좌파 독재(left authoritarian)’라고 명명했다.

2019년 현재 좌파 독재는 문재인 정부의 성격을 보편적으로 규정하는 말이 되었다.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뒷받침하고 있는 자유시장경제는 경제자유를 속박하는 비주류 경제이론인 소득주도성장과 경제실정을 외면한 최저임금 인상 정책 등으로 취약해졌다. 경제파탄으로 국민들이 도탄에 빠져도 ‘소주성’의 효과는 시간이 걸린다며 희망고문으로 일관한다. 실패한 경제실험에 이어 이번에는 ‘연동형 비례대표제’라는 정치실험으로 문 대통령이 말한 이제껏 경험해보지 못한 전혀 새로운 세계, 그리고 극도로 불안한 세계로 국민을 내몰고 있다.
 

아무도 이해하지 못하는 의석수 계산

그동안 소수정당을 중심으로 연동형 비례대표는 꾸준히 논의되었다. 제도에 대한 적실성도 문제지만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에 따른 국회의원 정수의 불가피한 증가로 인해 선뜻 밀어붙이지 못했다. 그래서 택한 전략은 국회의원 정수 300명을 유지하되 지역구를 225명으로 줄이고 비례를 75명으로 늘리는 것이다.

여당과 야 3당이 합의한 것처럼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사표(死票) 방지, 표의 등가성과 비례성을 높이는 등 장점을 다분히 지닌 안정적 제도라고 한다. 여당과 소수야당이 주장하는 것처럼 그렇게 좋은 제도라면 현 의석수 3분의 1을 차지하고 있는 제1야당의 반대에 대해서도 적극적으로 설득하고 합의하는 과정을 충분히 거쳐야 한다.

선거제도는 게임의 룰에 관한 것이고 권력구조를 결정하여 통치행태까지도 영향을 미치는 중대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민주화 이후 공직선거법 개정은 항상 여야 합의를 통해 이뤄졌다.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작년 12월에 사인한 여야 5당 ‘합의사항’에서도 선거제도 개편에 대한 사항을 ‘적극적으로 검토한다’고 되어 있지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을 합의한다’라고 되어 있지 않다. 합의와 타협을 실종시킨 정치 실험 세력들은 폭력이 사라진 선진 국회로의 노력을 하루아침에 원점으로 돌렸다.

선거법 개정의 절차적 문제와 더불어 지적되는 문제점은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작동원리다. 연동형 비례대표의 기본적 취지는 정당의 의석수를 정당의 득표율과 맞추자는 것이다. 심상정 의원이 대표발의한 공직선거법 개정안(일명 연동형 비례대표제)은 연동형 비례대표 선출방식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국회의원 정수를 300명으로 유지하되 국회의원수와 의석비율을 3:1로 하고 국회의원 전체 의석을 각 정당의 득표율을 기준으로 배분하고 각 정당에 배분된 의석수에서 해당 정당이 지역구국회의원선거에서 획득한 당선자수를 공제한 의석수의 절반을 우선 배분하고 나머지 비례대표 의석은 정당득표율에 따라 배분하는 방식으로 비례대표 국회의원을 배분하도록 비례대표 의석배분방식을 개선하며, 비례대표 명부를 권역별로 작성하고 정당별 열세지역에서 근소한 차이로 낙선한 지역구 후보자를 비례대표 의원으로 선출하는 석패률제를 도입함으로써 국회의 의석 배분에 있어 국민의 의사의 왜곡을 최소함과 동시에 지역주의를 개선하여 다양한 정책과 이념에 기반한 정당의 의회 진출을 촉진하려는 것(이다)”
 

이를 위해 다음의 6단계 수식을 풀어야 한다.

이 법안을 대표 발의한 의원의 말대로 이 수식은 다행인지 불행인지 국민이 몰라도 투표하는 데는 지장이 없다. 그러나 유권자가 행사한 소중한 한 표가 6단계의 수식을 통과하면 유권자의 의도와는 다른 결과를 도출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연동형 비례대표는 지역구 의석과 비례대표 의석을 특정 정당이 가져갈 수 있는 의석의 비중을 정당에 대한 투표 비율과 연계시키기 때문에 투표권을 행사하는 유권자는 자기표가 누구를 당선시키는지 정확히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후보가 아닌 정당에 투표함으로써 당선자를 결정짓는 것은 대의제 민주주의의 근본적 취지를 훼손하는 것이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주장하는 정치 실험 세력들은 당선자를 위한 표 외에는 사표이기 때문에 의미가 없는 치부하지만, 당선자가 선거를 통해 공직자로 임명되는 그 순간부터는 더 이상 지지자들만의 대표가 아니라 사표를 행사한 국민들까지도 대표하는 국민의 대표라는 사실을 헌법에서 적시하고 있다. 즉, 국회의원은 국민의 대리인(Delegate)이 아니라 국민 전체의 이익을 대변하는 대표자(Representative)인 것이다.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으로 국회는 격랑 속에 휘말렸다. 문제는 아무도 이해하지 못하는 의석수 계산이다.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으로 국회는 격랑 속에 휘말렸다. 문제는 아무도 이해하지 못하는 의석수 계산이다.

소수정당 난립이 초래할 민주주의 위기

연동형 비례대표를 주장하는 세력들은 또한 거대 정당이 아닌 군소정당의 진입이 용이하기 때문에 다양한 정책들이 경쟁하므로 정책의 질이 향상된다고 한다. 그러나 정치적 현실에서 이러한 이상은 달리 구현될 가능성이 높다. 영국의 이코노미스트지 인터넷판(2018. 9. 20.)은 ‘A Scary Election in Brazil(브라질에서 행해진 무서운 선거)’이라는 제하의 기사에서 브라질의 다당제에 따른 정치적 혼란과 금권선거에 대해 다뤘다.

작년 선거에서 브라질은 소수정당 난립으로 유권자들이 정당 간 정책을 구분하기 어렵기 때문에 후보자는 정책으로 호소하기 보다는 손쉬운 포퓰리즘적 정책을 쏟아내고, 급기야 금권선거로 전락했다는 것이다. 실제 브라질의 사탕수수 지역으로 유명한 Murici 마을의 선거운동을 소개했는데, 후보가 등장하자 유권자들(constituents)들이 약처방전(priscriptions), 전기세(electricity bills) 영수증을 내밀며 대납해 줄 것을 요구했다. 인터뷰에 응한 후보는 “우리가 유권자들의 청구서를 대납하지 않으면 다른 후보들이 그렇게 할(if we don’t, the other guys will) 것”이라며 어쩔 수 없다는 부패선거의 악순환을 그대로 보여줬다.

2019년 4월 29일 현재 우리나라 선관위에 등록된 정당은 32개다. 이들은 연동형 비례대표에 희망을 걸고 있을지도 모른다. 민주주의에서 제도와 사람의 문제는 오랜 논란거리다. 최소한 한국에서는 제도보다 제도를 운용하는 사람, 즉 정치인의 문제가 더 빈번히 지적되었다.

현행 비례대표제도도 전문직이나, 장애인, 여성 등 소수 약자들의 이익을 대변하기 위해 도입되었지만 그 원래 취지가 상당히 훼손되고 왜곡되어 운영되고 있다. 제도만 바꾸는 것이 만능이 아니라 사람이 먼저 바뀌어야 한다는 것은 경험으로 입증되었다. 이러한 사회적 경험을 무시하고 무모한 정치실험으로 또 다시 국민들을 내몬다면 실험에 따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들 몫이다.

지적해야 할 부분은 이번 공직선거법 개정안에 그동안 사회적으로 논란이 되고 찬반이 확실히 나뉘는 뜨거운 감자인 선거 연령 18세 조정 조항도 들어가 있다는 것이다. 민법의 성인 연령에 못 미치는 고등학교 3학년 신분의 18세 국민을 선거의 장으로 끌어들이는 것이 과연 타당한 것인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는 도출되지 않았다. 이는 미성년자인 청소년까지 또 다른 정치실험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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