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분석] 황교안 대표는 국민과 통합할 수 있을까?
[심층분석] 황교안 대표는 국민과 통합할 수 있을까?
  • 한정석 미래한국 편집위원
  • 승인 2019.05.22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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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장외투쟁을 시작할 때만 해도 정치권과 국민들은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다. 이보다 앞서 나경원 원내대표와 한국당 의원들이 조해주 선관위원 후보자 임명강행에 항의해 국회에서 벌인 5시간 30분 릴레이 단식은 ‘돌아가며 밥 먹고 와서 하는 단식’이라는 비아냥거림을 샀다. 더불어민주당은 ‘릴레이 단식이 아니라, 딜레이 식사’라고 비꼬았다. 한국당의 웰빙 성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는 참혹함 속에 이 투쟁은 그야말로 해프닝으로 끝났다.

뒤이어 황교안 대표가 문재인 대통령의 국회 동의를 무시한 인사 강행에 항의하며 야외 투쟁을 전개할 때만해도 ‘그러다 말겠지’하는 관측이 대부분이었다. 탄핵의 정당성 문제에 ‘세모’를 쳤던 황교안 대표였다. 황교안 대표의 정치적 수사는 초기에 전형적인 관료들의 모호함과 비켜가기의 특성을 보였다. 하지만 황교안 대표가 일단 투쟁을 결심하면서 그의 입에서는 예상을 뛰어 넘는 저항의 메시지가 유감없이 터져 나왔다. 이를 두고 우파 기독교계에서는 ‘황 대표의 정치 방언이 터졌다’는 소리도 나왔다.

이미지 = 미래한국

이후 그의 행동은 ‘민생투쟁 전국 투어’였다. 이 플랜은 보수 진영은 물론이고, 민주당마저 예상하지 못한 수였다. 황교안 대표가 자신의 정치적 초보성에 갇혀 관료형 정치를 하리라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부산을 시작으로 황 대표는 가는 곳마다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지지자들의 환호와 반대자들의 비난이 겹치면서 황교안 대표에 대한 주목성은 더 높아졌다.

광주를 방문해 시민들로부터 물세례를 맞았을 때, 황교안 대표의 표정은 편안하고 담담했다. 진보의 유시민은 그러한 황 대표에 대해 ‘일부러 맞으러 광주를 간 것’이라며 ‘5.18 광주 참배 시에는 모두 얼굴을 돌리자’고 주장했다. 그 만큼 진보 진영으로서는 당혹스러운 사건이었다는 이야기도 된다. 그런 황교안 대표의 민생투어는 보수의 심장이라는 대구와 안동에서 최고조를 기록했다. 안동을 방문했을 때, 전통 유림들로부터는 ‘100년에 한번 나오는 분’, ‘우리 시대의 구세주’라는 황비어천가(?)를 들을 정도였다.

황 대표가 영남 인물이 아니라는 점에서 대구와 안동이 보여준 황 대표에 대한 기대는 그 만큼 보수의 정치적 상황이 절망스러웠다는 것이고, 그 만큼 황교안 대표에 대해 거는 보수의 기대가 크다는 것을 의미했다. 실제로 황교안 대표의 민생투쟁과 더불어 한국당의 지지도는 연일 상승해서 민주당과 30%대 선에서 5%차로 각축을 벌이는 상황도 벌어졌다. 이해찬 민주당 대표는 그러한 상황이 마음에 걸렸던 듯, ‘여론조사가 이상하다’는 말로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기도 했다.
 

절반의 승리, 그러나 아직도 가야 할 길

민생투어 과정에서 황교안 대표가 문재인 정권을 향해 외친 비판의 소리 가운데 새로울 것은 없었다. 그는 문재인 정권을 ‘독재’라고 호명했고, ‘민생파탄’을 주장했으며 ‘북한의 미사일은 대구에 떨어질 것’이라는 다소 과장 섞인 주장도 했다. 어떻게 보면 식상한 발언들이었지만 분열되어 있던 보수에게 중요한 것은 황교안을 중심으로 구심력이 작동하고 있다는 점이고 그 구심력의 본질은 황교안 대표의 메시지가 아니라 황교안이라는 인물 그 자체의 에토스(Ethos)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황교안 대표는 보수의 정치적 인물난 속에서 스스로를 차기 대권주자로 포지션하면서 당의 통합과 함께 대선을 향한 확고한 정치적 리더십을 확보하겠다는 포석을 둔 것이라 할 수 있다. 일단 이러한 전략은 유효한 것으로 평가된다. 그 이유는 전통적인 한국당 지지자들의 경우, 이념과 가치보다 일단 인물에 많은 점수를 부여하기 때문에 그렇다. 이러한 해석은 왜 같은 내용의 주장을 과거 홍준표 전 대표가 했을 때는 소통력이 없었던가를 회고해 보면 설득력이 있다.

많은 커뮤니케이션 학자들은 정치인의 소통에 ‘그가 무엇을 말하는가’보다 ‘그가 어떤 자격과 권위를 가지고 말하는가’가 더 중요하다는 점에 동의한다. 소통이론에서 메시지보다 메신저가 중요하다고 이야기되는 것은 바로 정치 커뮤니케이션에서 ‘팬덤’이 작동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황교안 대표는 탄핵의 정당성과 부당성을 놓고 갈라진 보수에 그것을 초월할 인물로 스스로를 토템(Totem)화 하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정치적 토템’ 전략은 일종의 포퓰리즘이다. 가장 성공했던 정치적 토템전략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박근혜 전 대통령이었다. 2002년 대선 당시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 측근인 서정우 변호사가 대기업에 대선자금 지원을 요청함에 따라 수백억 원 현금을 실은 트럭을 통째로 한나라당에 전달하는 등 모두 840억 원이 넘은 불법 정치자금 수수 사건이 터졌다. 이어서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이 헌재에서 기각된 2004년 총선 역풍으로 한나라당은 거의 해체될 지경에 이르렀다.

그때 박근혜 전 대통령은 비대위원장을 맡아 당을 혁신으로 이끌어 구해냈다. 당사를 팔아 추징금을 내고 스스로 천막 당사에서 당무를 봤다. 2006년에는 커터 칼로 테러를 당했다. 이후 박근혜 전 대통령은 확실하게 보수진영에 정치적 토템이 됐다.

하지만 2007년 한나라당의 대선 후보 경선 과정에서 박근혜 후보는 대선 티켓을 따지 못했다. 그녀가 한나라당과 보수 세력을 위기에서 구출하고 단단한 구심점을 만들어 내는 데 성공했지만, 그 구심점은 보수의 가치나 이념이었다기보다는 ‘인물’이라는 토템전략이었고, 결국 시간이 지나면서 인물보다는 보수의 이념적 우월성에 갈증을 느꼈던 사람들은 전향한 운동권 인물들이 주축이 됐던 ‘뉴라이트’라는 새로운 정치세력의 등장에 전폭적인 지지를 보냈다.

그 결과 박근혜를 지지하는 이들은 ‘낡은 보수’로 포지션 됐고 이명박 후보는 ‘새로운 보수’의 후광을 입어 박근혜 후보를 대선 경선에서 누르고 대통령에 당선됐다. 난세에는 영웅이 메시아로 떠오르지만, 그 메시아는 결국 시간이 지나 안정화 단계에 돌입하게 되면 식상함을 주고 사람들은 새로운 인물을 찾게 된다는 것은 동서고금의 정치 원리상 비켜가는 법이 없었다.

정치라는 장(場)에서 고통이 지나가면 찾아오는 것은 행복이 아니라 권태(倦怠)다. 특히 그 정치 세력과 지지자들이 인물에 모든 것을 걸었을 때, 그 인물이 갖는 토템적 유효성은 그 정치세력이 안정화되면 될수록 감소하기 마련이다. 그런 점에서 황교안 대표는 어쩌면 박근혜나 이회창의 길을 다시 걷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보게 되는 것이다.
 

탄핵에 대한 정반대의 입장인 애국당과 바른미래당 모두를 통합한다는 구상이 과연 성공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탄핵에 대한 정반대의 입장인 애국당과 바른미래당 모두를 통합한다는 구상이 과연 성공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2020 총선승리의 조건, 외연확장

황교안 대표의 투쟁이 한국당의 부활로 연결되고 그 모멘텀이 2020년 총선과 2022년 대선에서 보수 정권 교체라는 승리로 귀결되려면 어떤 것이 필요할까. 일단 이 조건을 분석하려면 무엇보다 경험적 현상을 이론으로 설명해 내는 정치 이론에 입각해야 한다. 그러려면 먼저 유권자들은 어떤 이유로 지지하던 정당을 선거에서 바꾸게 되는지, 그리고 ‘무당파’나 ‘중도’로 분류되는 유권자들의 속성이 무엇인지 이해할 필요가 있다.정치학계에 보고된 다수의 경험적 연구들에 의하면, 유권자는 총선에서 ‘정당일체감’이라는 것을 갖는다.

이 정당일체감은 선거 시, 특정 정당에 대해 유권자들이 느끼는 선호감이다. 이때 문제가 되는 것이 지지 정당이 없는 무당파(無黨派)들인데, 이제까지 학계에 보고된 다수의 연구들에 의하면, 무당층은 우리가 쉽게 생각하는 ‘정치적 무관심 층’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정치에 관심이 높고 주변에 여론 영향력을 가진 이들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즉 정치에 관심이 높은 이들일수록, 집권 여당이나 야당 모두 만족스럽지 않을 경우 무당파가 되지만, 그렇다고 해서 주변에 정치적 메시지를 포기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이와 함께 중도(中道) 성향이라고 여론조사에서 응답하는 유권자들이라도 사실 대부분은 선호하는 정당은 있으며, 따라서 지지하는 정당이 없다고 해도 선호하는 정당에 대해 ‘정당편향성’을 갖는다는 사실이다.

이때 중도 유권자들이 지지정당을 바꿔 투표하거나 최종 결정을 하는 데 있어 가장 영향을 많이 끼치는 요인은 ‘교차압력’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교차압력은 한 유권자가 자신과 가까운 지인들 혹은 소속 집단의 사람들로부터 자신과 반대되는 정치적 입장을 듣게 되어 갈등하게 되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언론과 미디어가 선거에 미치는 영향력도 크지만 무엇보다 SNS와 같은 소셜미디어와 직장, 교회와 같은 커뮤니티에서 사람들 사이에 회자되는 정당 평가가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흔히 이때 집권 여당의 경제적 실패가 총선에 큰 영향을 준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의외로 경험적 연구들에 의하면 대선과 달리, 총선은 경제 이슈보다 ‘정당일체감’이 더 중요하다는 결론들이 많다. 그런 이유는 자신이 지지하는 정당이나 선호하는 정당이 경제 문제를 더 잘 해결할 것이라는 기대가 작동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 2016년 20대 총선의 경우가 이러한 현상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4월 20일 한국당의 광화문 집회에서 문재인 STOP 슬로건을 내걸고 황교안 당대표는 정부여당을 강하게 비판했다.
4월 20일 한국당의 광화문 집회에서 문재인 STOP 슬로건을 내걸고 황교안 당대표는 정부여당을 강하게 비판했다.

경제 이슈가 아니라 정당일체감이 총선 전략되어야

여론조사기관인 한국리서치가 2016년 총선 후 실시한 설문 조사에 의하면 20대 총선에서 새누리당 지지자들의 20%가 한 달 사이에 지지하는 정당을 변경한 것으로 집계되었다. 지지하는 정당을 바꾼 응답자들은 ‘이전에 지지한 정당에 실망하여서’라는 응답이 46%로 가장 많았고 ‘새로 마음에 드는 정당이 생겨서’라는 응답은 21%였다. 지지하는 정당에 대한 실망감이 생긴 가장 큰 이유는 ‘공천 과정에서의 문제’가 56%로 가장 많았고 ‘정당의 리더십’에 실망하였다는 응답이 24%, ‘정책공약’이 지지정당을 변경하게 된 이유라는 응답이 11%를 차지하였다.

한 가지 특이한 점은 설문 조사에서 전체 응답자의 97%가 ‘소득의 양극화’를 심각하거나 대단히 심각하다고 응답했으며 ‘경제민주화’에 대해서는 76%가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났지만, 실제로 이 문제로 지지 정당을 바꾼 경우는 드물었다는 사실이다.

패널조사의 응답을 종합하면 경제적 양극화가 ‘매우 심각하다’라고 인식하는 유권자의 26%가 더민주당에, 30%가 국민의당을, 16%가 정의당을 선택하였고 경제적 양극화가 심각한 편이라는 응답자 중에서 38%는 정당투표에서 새누리당을 선택했다. 결국 이러한 현상은 총선에서 경제 이슈는 정당이 갖는 통치적 정당성과 도덕성, 민주성이라는 정당일체감을 넘어 서지 않는다는 것을 말해 준다.

실제로도 1948년 제헌의회 이후, 경제적 이슈 문제로 제1당이 교체된 사례는 없었다. 경제 이슈가 문제가 되는 것은 미국과 유럽 같은 국가에서 국가주의나 공동체주의를 넘어서는 개인주의 성향과 탈 근대적 흐름과 관계가 깊다. 국가보다는 ‘나와 내 가족’이라는 자유주의적이고 개인주의적인 정치 성향으로 유권자가 ‘합리적 선택’을 하게 된다는 것이 소위 말하는 선거에서 ‘경제투표’의 본질이다. 돌이켜 보면 2007년 대선에서 이명박 후보의 당선이 경제 이슈 투표의 결과라고 해석하는 것도 사실은 무리가 있다.

당시 민주당 정동영 후보,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 그리고 나머지 문국현, 이회창 후보들 간에 크게 차이가 나는 경제공약은 없었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386 세대가 이명박 후보 지지로 돌아선 배경에는 역시 2006년 북핵위기가 심리적으로 크게 작동했던 점을 간과할 수 없다. 이후 2012년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를 찍은 유권자들의 경우, 박근혜 후보가 경제 문제를 문재인 후보보다 잘 해낼 것이라 기대해서 투표했다는 해석이 어색한 이유가 바로, 한국에서는 아직 유권자의 합리적 선택에 의한 자유주의, 개인주의 투표 성향이 거의 없음을 반증한다.

그런 점에서 앞으로 황교안 대표가 총선에서 승리할 수 있는 전략은 경제 이슈가 아니라, 자유한국당과 국민의 ‘정당일체감’이라 할 수 있다. 한국당을 대표하는 리더들의 도덕성과 당의 민주성, 그리고 무엇보다 통치 정당성이 얼마나 확보되느냐는 것이 관건이 된다.

이 문제는 결국 당의 인사 혁신의 문제가 된다. 그리고 정체성의 문제가 된다. 박근혜 대통령은 죄가 없으니 구출하자는 애국당 세력도 통합하고, 박근혜 대통령과 결별하고 탄핵을 주도한 바른당과도 통합한다는 구상은 국민들로서는 정당일체감을 도저히 느끼기 어려울 것임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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